싼 옷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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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현해탄 너머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지난 연말 만났던 일본 바이어가 우리회사와 본격적으로 거래하고 싶다며 개시 오더를 보내온 것. 상품개발에 들어갔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윤리적 컨셉트를 담은 여성용 싱글저지 티셔츠. 오가닉밤부(대나무로 만든 원사로 제직한 원단)와 오가닉코튼으로 각각 샘플을 개발해 제시했고 결국 오가닉코튼 쪽으로 결론이 났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프린트의 느낌을 살리기위해 일반적인 방식에 비해 훨씬 까다로운 투습식 나염 작염이 필요해 걱정이었는데 이 역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잘 만들어서 납품만하면 되겠다 싶던 그때 갑자기 날벼락 같은 얘길 전해들었다. 오가닉코튼을 공급하기로 했던 원단업체가 갑작스레 생산을 중단했다는 것. 상도의는 나중에 따지고 일단은 대체할 업체를 찾는 게 급했다. 알아보니 상황은 더 절망스러웠다. 국내에서 오가닉코튼을 제작하던 몇 안되는 업체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원사 자체의 수급이 아예 끊겨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게 한결같은 이유였다.

지난해부터 국제 면화 가격이 급등하면서 공급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예견이 됐지만 이렇게 급작스레 공급이 끊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오가닉코튼의 경우 일반 면화에 비해 생산규모가 워낙 미미한데다가 가격까지 급등하니 시장에서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것.

국제 면화 가격이 본격적으로 급등한 건 지난해 8월부터였으나 그 이전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지난 한해 동안만 두배 가까이 가격이 상승했고, 올해 들어서도 30%가량 급등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 여름 남아시아 일대를 휩쓴 이상기후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 면화경작지 상당수가 물에 잠겨 공급량 자체가 크게 줄었다. 여기에 인도 정부가 기름을 부었다. 자국내 의류산업의 원료공급 차질을 우려해 면화의 국외 유출을 금지해버렸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국제 면화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었다.

업계의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불황, 그에 따른 위축된  소비심리와 힘겹게 싸우고 있던 의류업체, 유통업체들은 깊은 탄식을 내뱉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GAP, JC Penny 같은 대형 리테일 업체들이 이번 면화가격 상승으로 인해  공급업체에게 지불해야 할 납품가가 30%가량 인상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최대 스포츠의류 브랜드 나이키의 마이크 파커 회장 역시 "(면화 가격, 임금, 운송비 등의 상승으로 인한) 투입 제조원가 상승으로 인해 의류업계가 엄청난 마진 압력을 겪게 될 것"이라고 최근 근심어린 전망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일시적인 이상 현상이라면 어떻게든 힘든 시기가 지나가지 않을까? 대답은 "글쎄요"다. 이번 상승국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이상기후로 인한 경작실패는 가격폭발의 도화선이었을 뿐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면화는 경작이 매우 까다로운 작물이다.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물을 필요로 한다. 석유 의존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물부족 지역이 늘어나면서 경작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경작지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다.

또 세계적으로 식량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사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기존 면화 경작지들이 경작이 쉽고 채산성이 좋은 옥수수, 밀 등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 대비 1인당 면화소비가 10%에 불과했던 중국의 생활수준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중국 정부까지 재고 관리에 나서고 있어 상황이 장기화 될 것이며, 이미 비가역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지금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 할 지도 모르겠다. 체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출시되는 의류의 원단 구매는 이미 1년 전 짧게는 6개월 전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세계 3% 상위 품질의 프리미엄 코튼으로 만들었다는 유니클로의 1만2900원짜리 브이넥셔츠를 살 기회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유니클로 등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이 상황을 시장 과점의 기회로 인식해 치킨게임을 벌인다면 한두해 정도 더 이어질까? 물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그 이후엔 과점으로 인한 비용까지 추가로 지불해야 할테지만.

면은 애초부터 우리에게 맞지 않는, 대량생산 하기엔 문제가 많은 소재였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300년간 바다(아랄해)를 마르게 하고 땅을 황무지로 만들면서 면의 지속가능성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것이 시장에서 뒤늦게 확인사살되는 과정.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내린 좀 과격한 결론이다. 그리고 범용제품이었던 면의 몰락과 함께 그것이 가능케했던 '싼 옷의 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다. 면뿐만 아니라 공임, 운송비 등 모든 원가요소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온 세계가 지속가능한 패션을 진지하게 고민할 적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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