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벌에 우뚝 솟은 돌불꽃

민병준의 길 따라 멋 따라/영암 월출산

 
  • 민병준|조회수 : 2,077|입력 : 2011.03.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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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비야(非山非野)의 남도는 매양 비슷한 풍경만 펼쳐져 눈 밝지 않은 이들에겐 모두 엇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영암벌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눈이 번쩍 뜨인다. 월출산 때문이다. 벌판에 솟은 산답지 않게 거친 암봉들로 이루어진 월출산은 조물주가 빚은 돌불꽃이다. 옅은 봄안개라도 피어오른 날이면 아무리 무심한 나그네라도 가던 길 멈추고 감탄사를 풀어놓는다.

전라남도 나주평야의 한쪽을 차지한 영암벌. 그곳에 홀로 우뚝한 월출산(809m)은 조물주가 빚은 예술품이다. 흙이 아닌 바위로 온갖 솜씨를 다 부렸다. 암봉들은 모두 '돌불꽃'으로 피어오른다. 바위들은 각각 무엇인가를 닮았다. 구정봉 아래엔 여성을 닮은 베틀굴, 천황봉에서 구정봉에 이르는 능선엔 이와 어울리는 남근바위가 있다. 또 돼지바위 오리바위 말바위 코뿔소바위 올빼미바위 등등 산 전체가 만물상이다.

월출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영암벌에서 풀치재 넘어 강진벌로 들어서면 돌불꽃은 어느새 천불(千佛)로 변한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산줄기엔 월출의 웬만한 봉우리들이 모두 명함을 내민다. 월남사지삼층석탑(보물 제298호) 너머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천불의 모습은 언제나 눈부시다.
영암벌에 우뚝 솟은 돌불꽃

그런 수많은 바위들 중에도 가장 신령스러운 바위, 영암(靈岩)이 존재한다. <영암군 향토지>엔 그 내력이 자세히 나온다.

월출산에는 세개의 움직이는 큰 바위가 있다. 그 하나는 운무봉에 있고, 나머지 두개는 각각 도갑과 용암 아래에 있다. 높이는 1m쯤 되고 둘레는 열아름쯤 되는 큰 바위인데, 서쪽은 석골 뿐인 산머리에 붙어있고, 동쪽은 끝없는 절벽에 붙어있다. 이 세 동석(動石)은 한사람이 흔들어보거나 열사람이 흔들어보거나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이 세 동석 때문에 영암에 큰 인물이 난다는 것으로, 이를 시기한 중국사람들이 바위 세개를 전부 산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스스로 다시 옛자리를 찾아 올라갔다. 사람들이 이 바위를 신령스러운 바위라 하여 영암이라는 고을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렇듯 신기한 동석은 월출산의 핵심이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영암 사람들은 동석이 '구정봉 아래에 있다'고 기록된 <동국여지승람> 등의 옛 문헌을 근거로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허탕만 쳤다. 어쩌면 기암괴석 덩어리의 이 바위산 자체가 바로 '영암'이 아닐까.

영암의 달은 월출산에서 솟는다

월출산은 달 뜨는 산이다. 영암의 달은 월출산에서 솟는다. 백제사람들은 월출산을 '달이 뜨는 산'이라고 해서 달나산(達拏山, 月奈山)이라고 불렀다. 신라 때에는 달나악(月奈岳)이라 했다. 고려 때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불렀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현재의 이름인 월출산(月出山)으로 굳어졌다.
영암벌에 우뚝 솟은 돌불꽃

월출산 달을 볼 수 있는 곳은 산 서쪽에 터 잡은 2200년 전통의 구림마을. '달 뜨는 산'이라는 월출산 이름도 이 마을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월출산을 가장 월출산답게 우러를 수 있는 이 마을은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일본 고대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백제의 왕인박사, 풍수지리의 시조인 신라 도선국사, 왕건의 책사로 활동한 고려 초기 문신 최지몽이 이 마을에 태를 묻었다. 개성 출신 명필 한석봉은 스승을 따라 구림마을에 내려와 머물며 글씨를 배웠다는 전설도 전한다. 또 시나위가락에 판소리가락을 도입해 산조의 틀을 만든 가야금산조의 명인 김창조도 이 마을 출신이다. 그는 월출산의 변화무쌍한 산세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월출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시인묵객도 많다.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조선시대 팔도를 떠돌던 매월당 김시습은 월출산에 와서는 '남도에 그림 같은 산이 있다더니, 달은 하늘 아닌 돌 사이에서 솟더라'하며 월출산의 가장 큰 특징인 달과 돌을 노래했다. 조선의 최고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렇게 적었다. '월출산은 지극히 수려하여 화성(火星)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다', '월출산은 도봉산이나 삼각산처럼 뾰족한 돌들이 날아 움직이는 것 같으며, 바다가 매우 가깝고 골이 적다'.
 
안개는 월출산을 더욱 신비롭게 해준다. 고산 윤선도는 <산중신곡>에서 '월출산이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노라'하고 비경을 가린 안개를 원망했다.
영암벌에 우뚝 솟은 돌불꽃

이렇듯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이 월출산을 가슴에 품었으려니와 어쩔 수 없이 유배길에 올랐던 이들도 마음을 빼앗겼다. '해남길' 따라 귀양 가던 추사 김정희와 명필 이광사도 그랬을 것이다. 월출산 남동쪽 고을인 강진으로 유배가던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다. 다산은 이 월출산을 올려다보고는 한양 도성과 고향 남양주 사이의 노원 들판을 지나면서 보았던 도봉산을 떠올렸다.
 
'누리령 잿마루에 바위가 우뚝우뚝 樓犁嶺上石漸漸 /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長得行人淚灑沾 / 월남마을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마소 / 봉우리 봉우리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아 峯峯都似道峯尖'

월출산 감상 포인트는 어디일까. 남쪽 월남의 금릉경포대계곡에서 올려다보는 월출산도 좋고, 동쪽의 월출목장에서 바라다보는 월출산도 가슴 설렌다. 그래도 최고의 감상 포인트는 월출의 우두머리인 천황을 알현해야 만날 수 있다. 이 권좌에 서면 모든 암봉들을 발 아래 둘 수 있다.
 
월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월출산 '바위잔치'의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천황봉과 장군봉 사이에 있는 광암터를 으뜸으로 친다. 그 다음 불 같은 월출산의 강한 기운에 부드러움을 가미해 월출산을 더욱 돋보이게끔 하는 천황봉 남서쪽의 미왕재 억새밭이다. 하지만 굳이 따질 필요가 있을까. 산 안에서든 밖에서든 안팎 어디서 바라봐도 좋은 산, 바로 월출산인데.

영암벌에 우뚝 솟은 돌불꽃


여행수첩

●산행정보 월출산은 해발 809m에 불과하지만 나주평야 벌판에 솟구쳐 있어 해수면에서 시작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여느 1000m급 산과 맞먹는다. 따라서 800m급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월출산 산행 들머리는 천황봉 북동쪽의 천황사, 서쪽의 도갑사, 남쪽의 금릉경포대계곡이 전부다. 이 코스들은 봄철 산불경방기간에도 폐쇄하지 않는다.

월출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미왕재~도갑사 종주 코스로 총 5~6시간 정도 걸린다. 주능선 종주가 부담이 된다면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까지만 다녀오는 주차장~천황사~구름다리~바람골~주차장 회귀코스(2시간30분)를 선택해도 괜찮다. 정상까지 다녀오는 주차장~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바람골~주차장 원점 회귀 코스는 4시간 소요. 동백꽃이 좋은 월남리통제소~금릉경포대계곡~바람재 코스 1시간30분 소요. 도갑사~미왕재 코스도 1시간30분 소요. 도갑사는 문화재관람료 2000원을 받는다.

●교통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산월 나들목→제2순환도로→유덕 나들목→무안광주고속도로→나주 나들목(좌회전)→831번 지방도(나주 방면)→13번 국도→나주→영암 / 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2번 국도(강진 방면)→학산면→819번 지방도→영암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숙박 천황사가 있는 월출산 북동쪽 천황탐방지원센터 주변에 산장식당(061-473-4900), 월출산민박집(061-473-8780), 월출산산악인의집(061-473-3778), 바우식당(061-473-3784), 감나무집민박(061-473-3782), 월출산천황사민박(061-471-3313), 대나무민박(061-473-3971), 남도민박(061-473-5353) 등이 있다.

구림마을 주변에 아래사위민박(061-473-6122), 왕실민박(061-472-0456), 벽오동민박(061-472-0151), 아침민박(061-472-0242), 죽정기와집민박(061-472-0211), 영래민박(061-472-7540), 고향민박(061-472-0155), 대동계사민박(061-472-0174) 등이 있다.

●별미 호남한우갈비와 갯벌에서 잡은 낙지를 함께 넣어 끓인 갈낙탕은 영암의 별미. 영암군청 맞은편에 있는 중원회관(061-473-6700)이 유명하다. 갈낙탕·낙지연포탕 1만7000원.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팔았다는 학산면 독천시장에 세발낙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다. 영명식당(061-472-4027), 독천식당(061-472-4222)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세발낙지 1마리 6000원, 낙지구이 한 접시(3~4인분) 4만원.

●참조 월출산국립공원 전화 061-473-5210, 영암군청 대표전화 061-47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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