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가 인터넷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강도를 당했다며 이웃의 안전을 위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올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 글을 봤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사람에게 위로의 문자를 보낼 수도 있고, 방범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댓글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더글라스 러시코프 라는 미국의 사회평론가는 실제 강도를 당하고 그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의외의 메일 두통을 받고 놀랐다고 한다.

“당신은 동네 이름을 공개하면 부동산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몰라? 안 그래도 부동산시장이 어려운데 말야! 브루클린 부동산시장에 더 이상의 악재가 필요해? 지금도 붕괴 직전이라고!”

<보이지 않는 주인>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일화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저자는 사람들이 ‘안전’보다 ‘가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논리가 어떤 것인지 파헤치기로 하고 이 책을 저술하게 됐다.

저자는 사람들이 가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인은 현대사회가 ‘코포라티즘’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코포라티즘은 강력한 기업 권력이 지배하는 체제를 말한다.

즉 인간이 기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세계경제의 중심에서 인간이 배제되고 기업이 주인공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에 우연히 탄생한 기업이 이제 태어날 때부터 죽을 대까지 인간을 지배하는 강력한 권력이 됐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고 경제 질서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

‘보이지 않는 주인’인 기업은 인간을 빚지게 만들고 있다. 왕성한 경제활동으로 현대인은 더 많은 돈을 벌지만, 더 많은 빚을 지게 된다. 기업은 또 인간을 공동체로부터 분리시켜 ‘개인’으로 만든다. 개인은 단결하기 힘들며 기업은 이처럼 뿔뿔이 흩어진 개인을 쉽게 다루고 있다. 기업은 또 동료를 협동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입한다. 종업원들이 서로 경쟁할수록 기업의 실적은 올라가고, 그들이 함부로 회사에 대들 수 있는 확률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집값에 대한 집착 같은 일상적인 에피소드부터 월마트의 상권 장악 같은 지역 경제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경제 주체’의 부상을 드러낸다. 또 르네상스 시기,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경제사적 논거들을 통해 지난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재편해 내고 있다. 저자는 특히 최근 금융위기의 본질도 ‘실물 경제’와 완전히 분리된 ‘투기 경제’의 득세로 인한 현실 경제의 왜곡으로 보고 있다. 즉 기업이 탄생한 600년 전부터 필연적으로 예고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각종 강연회와 이벤트의 뒷모습, 사회 명사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과 인간을 고독한 ‘개인’으로 만드는 텔레비전 광고 등 다양한 현실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몰랐던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보여 주고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현재 경제를 움직이는 시스템을 뒤로 하고, 기업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코포라티즘이 우리를 진짜 세계에서 떼어낸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한층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친환경으로 채소를 가꾸자고 말한다. 개인과 지역이 조금씩 변하면 전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글라스 러시코프 지음/ 오준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397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