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모여라, 일 욕망 우리가 풀어준다

희망가게 프로젝트 '여인행차'

 
  • 문혜원|조회수 : 2,141|입력 : 2011.04.1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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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완연한 서울시청 부근의 작은 사무실. 이곳에서 여자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게 김태희가 했던 머리띠래", "가격은 얼마로 하면 좋을까", "자기도 해봐. 잘 어울리겠다"  

4월14일에 문을 여는 '희망가게'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모임이다. 희망가게는 경력단절여성을 돕기 위한 '여인행차'의 첫번째 공식 행사다. 잡화, 헤어 액세서리 등을 판매해 얻은 행사 수익금의 절반을 경력단절 여성을 지원하는데 사용한다.
'경단녀' 모여라, 일 욕망 우리가 풀어준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혜정, 최현섭, 안해정, 황문주, 손수미, 조관순, 조기순 씨.  
사진 / 선승표 기자


◆ '경단녀' 지원하는 '여인행차' 

'여인행차'는 '여성인재 행복한 일자리 찾기'의 줄임말이다. '경단녀' 즉 결혼, 임신,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새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모임이다. 이 주체 역시 여성들이다. 30대부터 60대의 현직 여성들이 이곳에서 멘토로 활동한다. 이들은 컨설팅회사 대표, 회계사, 연구원, 일반 창업자까지 하는 일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인 건 한가지 생각이었다. 뛰어난 여성인재가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여인행차'를 접하고 자발적으로 수소문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주위에 경력과 스펙이 좋은 여성들이 가정일로 일을 놓은 후에 고민하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사회의 시스템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인행차 스텝으로 자원한 회계사 안해정 씨의 말이다. 안씨는 이곳에서 사업계획서 작성요령을 알려주거나 제안서 쓰기를 돕는다. 회계사로서 일했던 업무를 활용하는 것이다.

바이오기업 ㈜화이젠에서 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황문주 씨 역시 우수 인력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스텝을 자청했다. 황씨는 "사내에서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여성 임원이 극히 드물어진다"며 "육아에 매달리다 보면 복귀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인행차'는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는 조기선 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조씨는 "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 재능이 사장되고 있다"며 "여인행차가 이들을 끌어올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 자신도 경력을 살려 마케팅 컨설팅을 돕는다.

'여인행차'는 희망가게의 단발성 행사로 그치지 않는다. 5월 중에 주부 창업·취업을 위한 잡지를 창간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단녀를 지원할 방침이다. 또 마케팅 컨설팅을 주도하고, 문화예술 공연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등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여인행차'는 소속된 멘토그룹이 경영하는 사업장에서 인턴으로 참여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조 대표는 "주부들의 경력을 적극 활용한다면 우리가 벌일 사업이 어렵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이번 희망가게 역시 각지에서 도움과 자원이 끊이지 않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경단녀' 모여라, 일 욕망 우리가 풀어준다


◆경단녀가 다시 멘토로 활동하기까지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한규순 씨는 여인행차의 조언으로 사업 판도를 바꿨다. 원래는 '사진촌'이라는 평범한 사진관이었다. 대학가에 위치했기 때문에 지리적인 요건도 적절했다. 하지만 매출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주변의 수요가 모두 강남지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한씨는 결국 사진관을 접고 보험 판매원을 하려고 교육까지 받았다. 그러던 중 여인행차를 알게 됐다. 여인행차는 주부의 시각에 따른 조언을 해줬고 '사진촌'에 먹혀들어갔다. '사진촌'이란 이름부터 바꿔야했다. '사진촌 베이비스튜디오'란 아기사진 전문 스튜디오로 변신했다. 블로그로 철저한 회원관리도 나섰다. 이런 노력 끝에 지금은 매출이 2배나 신장했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해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바인스엔틱'이라는 엔틱가구점을 운영하는 이바인 씨 역시 '여인행차'의 덕을 톡톡히 봤다. 처음에는 대규모로 엔틱가구점을 차렸다가 5000만원이라는 큰 손실을 봤다. 주부로 아이 셋을 키우면서 가구점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이때 손을 뻗친 게 여인행차다. 이씨는 여인행차의 조언에 따라 '창고형 엔틱가구점'으로 판매 형태를 바꿨다. 매장도 외곽으로 옮기고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서 마케팅에 나섰다.

그렇게 바꾼 지 1년. 그 사이 바인스엔틱은 매출이 300% 뛰었다. 이제는 종업원을 둘 정도로 형편도 넉넉해 졌다.

이씨는 "소규모 기업에 꼭 맞춘 마케팅을 배울 수 있었다"며 "명함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것 등 실무적인 능력까지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씨와 이 씨는 현재 자신의 경험을 살려 '여인행차'의 멘토로 활동하며 창업을 돕고 있다.

◆모태는 여성CEO 연극모임

'여인행차'가 처음부터 사회적 기업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허스토리'라는 연극모임에서 출발했다. '일도 잘하고 잘 놀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그러던 것이 "의미있는 활동을 해보자"는 지금의 '여인행차'로 발전했다.

'허스토리'는 지난해 말 홍대 앞의 작은 소극장을 빌려 무대에 서기도 했다. 여성 CEO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연극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다. 일하는 여성의 고민들이 담긴 연극이었다. 육아에 몰입하느라 고정직을 할 수 없었던 이야기, 일에 매진하느라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등이다.

조 대표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학부모 노릇을 해보고도 싶었다"며 "하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제 길을 꿋꿋이 가야겠죠"라고 연극 당시를 회상했다. 

여인행차와 함께 CEO연극모임은 앞으로도 계속 꾸려질 예정이다. 올 하반기부터 연습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탈춤으로 무대에 오른다. 여인행차에는 여성 일자리 찾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여성의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계기도 마련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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