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구룡마을은 왜 숙원사업을 마다할까?

구룡마을은 지금/ 전입신고 받는 구룡마을 찾아가보니

 
  • 지영호|조회수 : 1,639|입력 : 2011.05.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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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입신고 하시면 안 됩니다. 나중에 하세요."

지난 5월3일 오전 도선여객 버스 종점에서 만난 구룡마을 주민이라는 할머니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한 남성이 다가와 할머니에게 이렇게 귓속말을 건넸다. 다행히 기자를 할머니의 손자로 본 듯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입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강남구는 구룡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2일부터 전입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전입신고는 그동안 구룡마을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강남구는 구룡마을이 불법 무허가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주민등록 등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구룡마을 주민들은 학교 배정이나 우편물 수령 문제 등 여러 방면에서 불이익을 받아왔다.

주민등록 등재는 올 초 마을주민 A씨가 전입신고 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마을 주민들이 2000년 이후 송사를 거듭하며 요구한 사항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전입신고를 마다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르뽀]구룡마을은 왜 숙원사업을 마다할까?

◆전입신고에 숨겨진 의도 있을 것

서울시는 4월28일 강남구 개포2동 567번지 일대의 구룡마을 정비방안을 확정했다. SH공사 주도로 공영개발을 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25만2777㎡의 땅에 2793가구를 짓고 이 중 1250가구를 영구 및 공공임대로 원주민에게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구룡마을 주민자치회는 공영방식의 개발을 거부하고 있다. 개발방식이 발표되던 날 구룡마을 주민 300여명은 강남구청을 점거하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1999년부터 줄기차게 민영개발방식의 허가를 요청했지만 그동안 강남구청은 무대응으로 일관해오다 개발요건이 갖춰지자 갑자기 공영개발방식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김원심 주민자치회 부회장(64)은 "공영개발방식으로는 주민들이 모두 임대아파트를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까다로운 조건을 들어 이곳 사람들 중 몇몇만 혜택을 볼 것이다. 거주자 모두의 주거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며 "전입신고가 임대아파트를 주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실상 임대아파트를 주지 않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주민자치회는 중원을 거쳐 구모라는 개발회사와 함께 재개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강남구에서 사실상 등한시했던 거주민 관리를 생업을 포기해가며 자체적으로 운영했다.

예컨대 퇴거 지역에 새로운 투기세력이 입주하려고 할 때마다 몸으로 저지해가며 난민촌 축소에 힘썼다. 김씨를 비롯해 마을 주민 상당수가 투기세력과 싸우느라 많게는 두자릿수의 폭력전과가 있을 정도로 '희생'을 해왔다는 것이다. 마땅히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주민자치회에 따르면 구룡마을은 한때 2000여가구가 거주했으나 주민자치회 결성 이후 투기세력 축출과 공가 철거 등의 노력을 통해 현재 1240가구로 줄어들었다. 
[르뽀]구룡마을은 왜 숙원사업을 마다할까?

◆지역 주민들, 등재하고 싶지만

현재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구룡마을 주민들의 입장은 민영개발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으로 몰려가 단체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주장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마을 내부를 들여다 보면 공영개발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제법 있다.

동네 아낙 너댓명이 모여앉은 자리 틈에 비집고 앉았다. 이들의 화두는 전입신고 여부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전입신고 신청에 갈등을 보이는 이유는 '해코지가 두려워서'였다.

1987년부터 구룡마을에서 살았다는 전정숙(가명·50) 씨는 "주민자치회에 미움을 사면 괄시와 무시를 당하기 일쑤"라며 "때론 지주들을 통해 '내 땅에 전입신고를 하면 고소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고 귀뜸했다.

이들은 주민자치회를 주민을 대변하는 이들이 아닌 개발업체 직원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서울시 집회에서는 가구당 3인씩 참석하라고 해, 주민들이 용역을 동원해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주민자치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전씨는 자치회에서는 자체적으로 주민들을 등급으로 분류한다고 했다. 분류명은 정회원, 영입회원, 비회원이다. 정회원은 자치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이들이 대상이 된다. 정회원 중에는 임종을 앞둔 시아버지를 놔두고 활동할 정도로 열성적인 회원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민영개발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정회원은 분양권을 받게 되지만 다른 회원들은 잘 해야 임대아파트를 받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대화 중 종종 거론됐던 '완장 찬 사람들'이 정회원을 일컫는 말임을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면 주민자치회는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주민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현안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구에서 주민등록을 해준다고 하니 우루루 몰려가는 것"이라며 "갑자기 전입신고를 하라는 구청의 의도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강남구, 주민 문제는 자신들이 해결하라?

마을 곳곳을 다녀본 결과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는 독거노인들 몇몇은 전입신고가 가능해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보였다. 정부의 지원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할 사회적 약자가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역차별을 받는 셈이다.

힘없는 노인층 역시 주민 의사결정과정에서는 거수기 노릇이 전부다. 힘 있는 조직에 맞서 수십년 만에 찾아온 권리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강남구는 구룡마을의 특수성을 감안해 전입신고를 받을 수 있도록 TF팀을 구성해 2일부터 마을 어귀에 6명의 직원을 투입시켰다. 기존부터 마을 관리를 담당하는 강남구 직원과 강남구에서 발주한 용역직원, 경찰관 등 이번 주민등록 등재를 위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인원만 15명 가량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주민등록 등재가 절실한 주민들에게 충분히 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전입신고는 신고자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구청이 통보할 의무는 없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곳곳에 주민등록 등재 고지를 충분히 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우편발송이나 방문전달에 대해서는 "주민등록 상 제각각인 사람들을 어떻게 우편으로 고지하느냐"면서 "하찮은 일도 온 마을에 소문이 나는 구룡마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전입신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3일 정오 현재 구룡마을에 전입신고를 마친 주민은 전체 2530명 중 150여명이다. 강남구는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구룡마을은 유령마을

구룡마을은 강남구 개포2동 567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는 무허가 판자촌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강남 개발에 밀려 쫓겨난 난민들이 이곳에 모이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1970년대부터 형성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구룡마을 주민들은 '유령' 취급을 받아야 했다. 구룡마을을 강남구가 인정하지 않아서다. 때문에 주민 대다수가 친인척이나 지인들의 주소지에 세입자 형태로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20년째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주민 김미란(가명·53) 씨는 주민등록 말소로 그동안 100만원이 넘는 과태료를 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구룡마을은 전입신고가 안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강남 인근 지인의 주소지로 이름을 올려놓기를 12차례나 반복했지만 지인들이 이사를 할 때마다 곤경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다보니 자녀들의 취학이 문제였다. 주민 홍선화(가명·52) 씨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모두 송파구로 다녀야 했다"고 한다. 구에서 몇년 전부터 취학 아동을 가까운 초등학교로 일부 배정해주기 시작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구룡마을 아이들은 무허가 난민촌 출신이라는 이유로 강남 부유층 자녀들 사이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던 것.

대부분 하루살이를 하는 주민들에게 '구룡'은 족쇄가 되기도 한다. 홍씨는 "일용직으로 채용이 됐지만 내가 구룡마을에 산다는 것이 알려지자 채용담당자로부터 연락이 끊기더라"며 "이곳 사람들은 마을을 나서는 순간부터 '구룡마을'은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가족을 제외하곤 자신이 이곳에 사는 줄 아는 사람이 없다"며 한사코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구룡마을에는 서울시 추산 151가구의 기초생활수급자가 있다. 주민들은 훨씬 더 많은 대상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역시 주민등록이 등재되지 않아 정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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