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 할인 90일, 무엇이 남았나

기름값 랩소디/ 3개월 한시할인 종료

 
  • 지영호|조회수 : 1,608|입력 : 2011.07.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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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물가지표 중의 하나가 기름값이다. 가격이 오르면 저항이 크고 여론도 악화된다.
 
올 초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기름값은 물가 안정을 목표로 삼는 현 정부에서 커다란 부담이었다. 정부는 정유업계를 압박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한시적 '리터당 100원 할인'이다.
 
그런데 소비자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을 줄 알았던 100원 할인이 생각만큼 호응이 없다. 오히려 갈등만 부추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더 높다. 왜일까? 석달 동안 진행된 100원 할인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100원 할인 90일, 무엇이 남았나
 
“손실 규모가 엄청나다. 당초 약속대로 이제 기름값을 원래 상태로 내놔야 할 때다” (정유사 A관계자)

“기름값이 낮아지고 있는데 사재기라니 무슨 말이냐. 정유사의 물량제한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탓이다” (주유업계 B관계자)

“100원 할인 할 때는 주유소에서 비싸게 산 재고물량 다 팔아야 가격 내린다더니, 이번에는 싸게 산 물량 다 팔린 다음에 가격 올리는지 두고 보겠다” (자가운전자 C씨)

정유사의 기름값 100원 할인 이벤트가 종료를 앞두게 됨에 따라 유가 폭등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값 쌀 때 미리 사놓자는 사재기 심리까지 생겨나면서 전문가들은 할인 종료 후 시장 혼란을 걱정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정유업계와 주유업계는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놓고 있어 소비자의 화만 돋우는 상황이다.

정부는 비축유 346만배럴을 방출하는 동시에 주유업계의 사재기를 차단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더불어 위법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영업장 폐쇄와 형사고발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정부의 의지대로 기름값이 안정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00원 할인. 90일간의 관련업계 득과 실을 따져봤다.

◆ 정유사 영업이익 급감

“티도 안 나면서 손해는 막심합니다. 해외 수출물량에서 벌어오는 돈을 국내에서 까먹고 있는거죠.”

지난 21일 SK그룹의 석유화학산업단지인 울산CLX 부두 견학을 진행하던 정모 부장은 조심스레 화제를 국내 시장으로 돌리더니 섭섭한 듯 말문을 열었다. 수출의 핵심기지인 유류 선적부서 관계자가 내수시장의 마케팅 정책에 대해 거론한다는 것이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국내에서 기름값 인하로 발생하는 손실을 수출부서에서 메우고 있다고 했다. 국내 소비자에게 손실을 감수하며 공급하고 있는데 여전히 자기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지는 모양새가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정유업계의 리터당 영업이익은 20원가량이다. 100원 할인 이후 리터당 80원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100원 할인으로 입은 손실을 약 3000억원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2분기 실적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HMC투자증권은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실적은 1분기에 비해 40%가량의 이익 감소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다른 정유사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신한금융투자의 2분기 GS 예상실적을 보면 1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40.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핵심 자회사인 GS칼텍스의 영업손실이 미치는 바가 크다. 예상되는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48.1% 감소한 4291억원이다. 마찬가지로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은 11.5% 감소한 5276억원을 기록할 전망이고, 에쓰오일 역시 기름값 할인으로 1500억원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 얻은 것 없는 정유업계

SK이노베이션은 4월 정부의 유가 인하 압박에 가장먼저 ‘100원 할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나머지 정유3사(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역시 100원 할인에 동참했지만 방식은 달랐다. 정유3사가 주유소나 대리점에 공급하는 도매가격을 100원 내린 반면 SK이노베이션은 3500만명을 회원으로 둔 OK캐쉬백에 포인트를 적립해주겠다고 밝혔다.

방식은 달랐지만 양쪽 모두 소비자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우선 정유3사의 공급방식에 허점이 생겼다. 도매가격을 100원 낮췄지만 주유소가 낮춘 가격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실제 소비자가 100원 인하 효과를 보지 못한 업계의 이유는 다양했다. 주유소나 대리점, 판매소 측은 100원 인하 직전 정유사가 유가 인상이 예상된다며 물량 확보를 주문했다며 기만행위를 지적했다. 높은 가격에 기름을 확보했으니 판매가격에 매입가격을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정유업체는 공급가격을 인하했으니 나머지는 판매업자가 판단할 일이라는 입장이었다.

가격 문제로 주유소와 소비자의 비판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SK도 할인 방법에 대한 비난은 피하기 어려웠다. 할인 초기 카드 결제를 통한 직접할인을 기대했던 소비자의 불만이 쏟아졌다. SK이노베이션은 할인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나서야 신용카드 할인을 적용했다.

OK캐쉬백의 활용도를 높인다는 제2의 목표도 기대 이하다. SK M&C 관계자는 “공식 집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OK캐쉬백 신규 가입자 수에 두드러진 변화는 없다”며 “이미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늘어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주유소의 포인트 적립액이나 사용액 규모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포인트 활성화라는 최소한의 목적을 이루려 했던 SK의 전략은 물음표로 남았다.
100원 할인 90일, 무엇이 남았나

◆ 욕만 먹는 주유소, ‘우리는 억울하다’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사에 5% 마진만 붙여 파는데 마치 우리가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비춰지잖아요. 욕이란 욕은 모두 주유소가 먹고 있어요.”

최근 일부 정유업체의 유류 공급이 원활치 못한 상황을 주유소의 ‘남겨먹기’로 몰아세우는 구도가 여간 못마땅한 듯 인천의 한 주유소 관계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주유업계는 100원 할인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시행 초기에는 할인금액이 100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비자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고, 최근에는 기름 사재기의 주범으로 몰려 정부의 ‘감시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연일 소비자와의 마찰에 지칠 대로 지쳤던 주유업계는 최근 GS칼텍스 여수공장의 설비 고장 문제 등으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또 한번 소비자와 갈등을 빚어야 했다. 소비자들의 항의가 현장에 있는 주유소로 몰렸기 때문이다.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사재기 눈총까지 받아야 했다.

실제 일부 주유소는 공급 물량 제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GS칼텍스가 예년보다 20%가량 공급량을 줄였고 오일뱅크도 지난해 기준으로 공급량을 제한하고 있다. 반면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비교적 공급이 수월한 편이다.

◆ 사재기, 현실적으로 이득 없다

주유업계는 기름 사재기가 현실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저가에 매입해 판매를 하지 않고 있는데 따른 손실액이 더 크다”면서 “각 주유소 유류 탱크 용량이 제한적이어서 물량 확보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확보량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물량을 확보한 상태로 판매하지 않는 행동은 오히려 손실만 키우는 영업활동이라는 주장이다.  

6월30일 현재 정부와 자치단체, 소비자단체 등으로 구성된 ‘석유수급 특별단속반’이 사재기 등 이유 없는 공급 중단을 단속하고 있지만 실제 적발 건수는 한건도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주유소협회는 일부 공급부족 문제와 관련, 정유사가 악의적으로 수급을 제한했다기보다 국내 판매량과 해외 수출물량 늘었고, 공장 중단 사태 등이 겹치면서 정유사의 수요예측이 빗나간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주유소업계와 가장 갈등을 빚는 곳은 GS칼텍스다. GS칼텍스가 공급부족의 원인을 주유소의 사재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주유업계는 GS칼텍스가 적자만 보는 내수시장 물량을 해외 수출로 돌렸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최근 재고 부족을 이유로 경유 판매를 중단하고 있는 GS칼텍스 폴 주유소의 현장 취재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대기업의 횡포라는 것이 주유업계의 목소리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언론에 취재 협조를 하는 곳을 정유사 영업사원이 파악해 공급을 제한하거나 심지어 폴을 떼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 애꿎은 소비자들만 울상

“전쟁이 난 것도, 오일쇼크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주유소 세곳을 돌아서 겨우 기름을 넣었어요.”

요즘 자가 운전자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야기다. 정부가 비축유 방출과 사재기 단속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효과를 누리지 못하면서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됐다.

정부와 정유사, 주유소간의 갈등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피해로 귀결된다. 100원 할인 초기부터 기대보다 싸지 않은 가격에 실망하고, 복잡한 규정에 할인 받기를 포기했더니, 이제는 주유환경 마저 안정적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7월6일 이후 원상으로 복귀하는 기름값에 있다. 정부는 정유업계에 단계적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학계 및 소비자단체는 수입관세 인하나 유류세 인하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세수 확보에 목이 마른 정부가 이를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100원 인하 종료 이후 부담은 다시 소비자들의 몫이 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6월30일 현재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921원. 서울 지역 평균가격은 1995원이다. 일부에서는 이벤트 종료 뒤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서울에서 2100원을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곧바로 가격 인하분 만큼 가격이 급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2008년 유류세 인하조치 종료 후 이전 가격 대비 82원이 상승해야 맞지만 13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인하 이전 가격을 되찾는 데 3주 정도가 소요됐다”면서 “주유소 간 자율경쟁으로 과도한 가격 인상이 부담스러운 만큼 갑작스레 가격을 인상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마침 GS칼텍스는 유가 급등에 대한 소비자의 충격을 우려해 단계적인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이 100원 할인을 선언하면서 나머지 정유사도 동참한 것을 고려하면 결국 정유업계 전체의 기름값 연착륙에 무게가 실린다. 더불어 싱가포르 국제 제품시장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가격 급등으로 인한 혼란은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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