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이여 안녕"…위르띠제 사장의 화려한 귀향

[CEO In & Out]장 마리 위르띠제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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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반 동안 한국에서 르노삼성을 이끌었던 장 마리 위르띠제(59) 사장(겸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이 성공적인 한국생활을 마치고 귀향한다. 르노삼성은 2006년 2월 부임했던 위르띠제 사장이 8월 SM7 론칭을 끝으로 프랑스 파리에 있는 르노 본사로 돌아가게 된다고 밝혔다.

위르띠제 사장은 부임 이후 르노삼성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끌었다. 재임기간 동안 소형에서 SUV까지 르노삼성의 풀 라인업을 완성시키며 12만대(2005년)에 그쳤던 판매대수를 27만대(2010년)까지 늘렸다.

특히 수출 비중이 급격하게 늘었다. 제롬 스톰 전임사장이 부임했던 2005년까지 수출비중은 3%대였다. 하지만 위르띠제 사장 부임 첫해인 2006년부터 26%로 수출비중이 급상승하더니 지난해 43%까지 늘렸다. 올해 상반기 수출비중(57%)은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취임 초기 내수 대 수출 비중을 50대50으로 맞추겠다는 공약을 지킨 셈이다.

내수와 수출을 합한 판매대수도 크게 늘었다. 2005년 11만9035대에서 2006년 16만408대, 2007년 17만2175대로 점차 규모를 늘리더니 지난해에는 27만1479대를 팔아치웠다. 부도난 기업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뒤 10년 만에 올린 성과다.
"SM이여 안녕"…위르띠제 사장의 화려한 귀향

◆품질 고집했던 엔지니어링 전문가

르노삼성의 성장은 품질경영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고객만족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은 위르띠제 사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지니어링 출신의 자부심이다. 과거 르노그룹의 루마니아에 있는 자회사 다시아에서 저가자동차인 로간을 개발해 회사에 수익성을 끌어올렸을 때도 품질을 고집했던 그다.

위르띠제 사장은 ‘미스터 퀄러티’라 불릴 정도로 품질을 강조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매주 월요일 부산공장에서 열리는 본부장급 임원 회의에서 제일 먼저 보고받는 부분도 품질본부 보고였을 정도다.

실제로 그가 부임한 이후 엔지니어링 분야는 힘이 실렸다. 취임 전 직원 규모가 400명에서 현재 2000명으로 5배나 늘었다. 어느새 르노삼성은 독자적으로 자동차 개발이 가능할 만큼 역량이 커졌다. 그는 최근 간담회에서 “부임 초기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이제 자동차 직접 개발이 가능해졌다. 이는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자평했다. 엔지니어링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 르노그룹에서 르노삼성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본사를 제외하고 그룹 내 가장 큰 디자인 연구소(기흥 디자인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럭셔리 세단 등 핵심프로젝트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그룹 내 명실상부한 아시아 허브다. 더불어 2009년 르노그룹에서 프랑스와 독일에 이어 세 번째 생산 및 매출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브라질에 이어 네번째 규모를 이어갔다.

르노삼성의 성장에는 르노 본사의 전략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재무 전문가인 제롬 스톨을 초대 사장으로 임명해 삼성자동차 인수와 재무안정화를 꾀했으며 2대 사장에는 엔지니어 전문가를 임명해 품질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위르띠제 사장이 한국에 오게 된 이유였다.

르노의 전략은 적중했다. 꾸준한 품질향상으로 르노삼성 하면 ‘만족’을 떠올리는 차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지난해까지 자동차전문 리서치회사인 ‘마케팅 인사이트’에서 조사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9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0만명 이상의 표본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신뢰성 높은 조사로 알려져 있다.

"SM이여 안녕"…위르띠제 사장의 화려한 귀향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 법’ 따랐다

장 마리 위르띠제 사장의 별명은 ‘장 사장’이다. 보통 성 다음에 직위를 붙이는 관례를 보면 ‘위르띠제 사장’이라는 표현이 맞지만 친근하게 이름을 성처럼 부르는 별명이다. 그만큼 위르띠제 사장은 한국과 조화롭게 융화한 인물로 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장 완공식에서 한국식 제사를 지낸 일이다. 그는 취임하던 해인 2006년 부산공장 차세대 생산라인 완공행사에서 공장의 안전과 안정적인 생산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 화제가 됐다. 머리에 갓을 쓰고 한복 두루마기까지 차려입은 채 돼지머리에 잔을 올리는 외국계 CEO의 모습을 보고 직원들이 감동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CEO과정에 열성적으로 참가하기도 했고, 한국어를 짬나는 대로 배우기도 했다. 직원들과는 종종 소주를 같이 즐기기도 하고 폭탄주를 마시기도 했다.

현지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대표이사의 현지화 노력은 당연해 보이지만 그의 한국사랑은 유별나다. 그의 집무실 한쪽을 차지하는 한국 지도가 바로 그것. 한반도 전체가 그려진 고지도는 그가 한국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었는지 알려준다.

알프스산 인근에서 출생한 탓인지 한국의 산 역시 특별히 좋아했다. 설악산, 지리산 등 아름답고 경치 좋은 산은 물론이거니와 청계산이나 관악산 등 근교 산도 빠짐없이 즐겼다. 올해 1월 임원과의 단합회도 아차산에서 가졌다.

그는 유독 직원들의 복지와 믿음을 경영의 최우선으로 손꼽는다. 그는 직원에게 명확한 업무지시와 비전을 제시해야 보다 나은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그 결과 그가 부임한 지난 5년6개월간 노조와의 갈등은 한건도 없었다. 임단협을 통한 임금협상은 항상 순조로웠고 단 한건의 파업이나 사고 없이 평화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했다. 그가 르노삼성의 CEO로 있으면서 자랑스럽게 느끼는 부분이다.

그는 퇴임을 알리는 간담회에서 “한국에 조금 더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부인도 한국에 있는 시간을 워낙 좋아했고,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 변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르노삼성자동차의 남아있는 분들이 해주리라 믿는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프로필
1951년 프랑스 투르 출생 / 1973년 프랑스 국립 교량-도로 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 1980년 프랑스 에쏘석유주식회사 입사 / 1988년 르노그룹 산업기획팀 책임자 / 1996년 르노그룹 발트해 연안국 및 독립국가연합 영업 총책 부사장 / 1999년 르노그룹 루마니아 자회사 다시아의 ‘로간’ 프로젝트 디렉터 / 2006년 르노삼성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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