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엔 삽을 들자

에코라이프

 
  • 김진화|조회수 : 1,134|입력 : 2011.09.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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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혀두자면 난 천성이 게으르다. 나아가 혼자만 게으른 것을 넘어 세상이 좀 더 게을러져야 살만해질 것이라고 주장한 버트란드 러셀 옹과 더불어 게으름을 '찬양'해 마지 않는다. 그런데 농사라니? 그것도 평일에 일은 일대로 하면서 금쪽 같은 주말시간에 삽질, 호미질, 괭이질, 가래질이라니?

농사는 곧 근면이라는 컨셉, 이거 그냥 고안된 컨셉일 뿐이다. 개발독재 시절의 새마을운동으로 표상되는 '새벽 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 맞다. 느즈막히 일어나 브런치 깨작거리며 신문 펼쳐 읽다가 이제 일 좀 해볼까 하는데 이미 뙤악볕, 밭에 나가 삼십분만 일해도 그냥 더위먹는다. 고로 새벽부터 부산 떨어야 하는 거 맞다. 하지만 그때부터 늦은 밤까지 온 종일 '근로'해야 한다는 거, 새마을운동일 뿐이지 보편적 의미의 농사완 무관한 시추에이션이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되 낮엔 휴식하고 낮잠도 늘어지게 자는 것, 모던타임즈의 임노동자처럼 타임테이블에 맞춰 무작정 일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맞춰 지혜롭게 노동하는 것, 그게 농사다. 중요한 건 자연의 시간에 맞춘 노동의 '배치'이지 근면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 
 
이번 연휴엔 삽을 들자


생계를 위해 라운드에 나선 프로골퍼와 달리 주말골퍼들의 라운드에선 넉넉한 '컨시드' 인심이 에티켓인 것처럼, 생계를 농사에 의존치 않는 주말농부가 근면을 논하는 건 더더욱 미덕이 아닌 '오버'일 뿐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일종의 유희이자, 라이프스타일 차원의 농사 혹은 농부코스프레. 귀농을 꿈꾼 적도 없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도시문명에 대한 반문화 운동? 설마 내가 스콧 니어링도 아니잖은가.

시작은 염치없는 수확, 노동 없는 결실의 향유에서 시작되었다. 십년 전 결혼하던 해에 처가 어른들께서 경기도 양평, 산 좋고 물 맑은 곳으로 이주를 하셨다. 꽤 넓은 키친가든이 딸려 있는 집이었다. 장인어른께서 무슨 설계도 그리듯 밭을 구획하고 일굴 때도 그저 시간이 되면 도와드려야지 하는 정도였다. 처음 1~2년 간은 소출이 소박했다. 그 사이 큰 애가 태어나 처가엘 가도 애 보는 게 우선이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텃밭의 변화는 그 보다 더 경이로웠다. 버려지고 메말랐던 대지가 어디선가 찾아든 생명체들로 해마다 무성해지고 갈 때마다 분주해졌다. 그게 눈에 보였다. 그걸 관찰한다는 것의 힘. 말이나 글이 아니라 밟고 선 땅의 기운과 호흡 사이사이 정적의 순간에 들려오는 윙윙거림으로 직접 느낀다는 것, 실로 근사한 일이었다. 수확하고 맛보는 경험은 더 직접적이고 대단했다. 야채의 식감이 그렇게 매혹적이고 입체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이미 입맛은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3년차부터는 김장의 자급이 가능해졌다. 밭에서 배추, 무, 열무, 갓 등을 수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장독을 파묻는 것으로 일단락된 그 김장은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조금씩 농사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봄 기운이 찾아들기 시작하면 밭을 정리하고 거름을 주면서 삽으로 땅을 뒤집어 엎는다. 겨우내 꽁꽁 얼었다 풀려난 땅에 거름과 함께 공기를 넣어 주는 것. 그리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이미 고랑에는 잡초들이 먼저 자리를 틀고 있다. 말이 잡초지 냉이며 쑥, 민들레 같은 향긋한 별미들이다. 숯불에 훈연한 삼겹살과 함께 먹는 민들레 줄기의 쌉싸름한 풍미는 쌈야채 중에서도 내가 으뜸으로 꼽는 별미다.

부추를 시작으로 드디어 먹거리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상추, 케일, 샐러리, 브로콜리 같은 샐러드용 채소부터 오이, 호박, 수세미 같은 넝쿨야채들이며, 풋고추, 오이고추 등등. 크다 만 것 같은 왜소한 딸기는 무엇이 진짜 '레알(real)'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다보면 옥수수가 익어가고 감자와 고구마 알이 굵어지고 고추가 빨갛게 여물어가기 시작한다. 보라색 디테일이 들어간 가지잎이 그렇게 예쁜 줄, 부추꽃이 그토록 우아하게 아름다운 줄 하마터면 모르고 생을 마칠 뻔 했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도 아찔해지려고 한다. 도시적 삶이라는 메트릭스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수 많은 삶의 디테일들을 지나쳐가기만 하는지.

언제부턴가 밭은 우리 가족의 놀이터가 되었다. 누님들 가족까지 동참해 주말이면 어른들은 밭을 갈고 김을 매고, 도합 7명의 아이들은 밭 한구석 산수유나무 그늘 아래 돌담을 쌓고 놀이터를 만들었다. 더워지면 계곡에 가서 뼈속까지 냉기를 느끼며 망중한을 즐기다가 다시 해질녘이 되면 풀을 뽑고 분주히 저녁 먹거리를 수확하고 손질한다. 주말농사의 여운은 식탁을 통해 주중까지 전이된다. 심지어는 겨울에도 잘 말려둔 가지며 호박이 식탁에 등장하면 이내 그 뜨거웠던 한여름의 추억을 떠올려 더 야무지게 씹고 삼키게 된다. 프로 농부님들이 들으시면 웃겠지만 어느새 내 삶은 먹거리를 탯줄삼아 다시 어머니 자연과 유착되었다. 

맛있는 것을 탐하며 입이 호사를 누리는 탓에 관심을 갖게 된 농사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면 가장 큰 수확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다 싶다. 30년 간 아무 것도 모른채 시장에 나온 결과물을 섭취하는데만 급급했다면, 지금은 직접 기르지 않은 작물, 육류 등을 마주하면 그 이면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누가 이렇게 탐스렇게 키웠을까. 이 등심은 호주의 대평원에서 살찌워지느라 이렇게 마블링이 있는둥 없는둥이겠지?

급기야 우리 가족은 바다에도 진출했다. 안면도 어느 해안에 가면 야삽과 소금 한봉지 만으로 열댓명이 한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맛조개며 개불 등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게다. 자연의 다이내믹스를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1박2일'은 참 지루한 재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재현조차 보는 것에 만족하는 삶은 얼마나 우울한가. 자 삽을 들자. 무엇이라도 심자. 옥상이든 어디든 좋다. 욕심은 버리자. 스며들자, 관찰하고 이해하자. 당신의 삶이 10cm쯤 달라져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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