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다리’로 다시 서다

40대, 우린 이렇게 산다/ 김진희 씨

 
  • 문혜원|조회수 : 1,892|입력 : 2011.10.2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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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에게 의족체험을 한 번 해 보라고 권했다. 한쪽 발을 겨우 끼고 섰다. 고개를 숙여 바닥 을 내려다보니 내 발이 아닌 살구색 플라스틱 발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 한 구석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 수족을 잃는 상실감이 이런 것이구나. 의족체험을 해 보고서야 김진희 씨가 다시 일어서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 했을지 공감이 갔다.

자기 다리로도 살아가기 힘겨운 세상. 한쪽 다리와 의족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김진희 씨의 40대를 찾아가 봤다. 
 
‘장애인의 다리’로 다시 서다

(사진=류승희 기자)  
◇ 다시 일어서기까지

"사진도 찍으러 오신다구요? 예쁘게 하고 있어야 겠네요."

김진희 한국절단장애인협회 회장의 목소리는 티 없이 밝았다. 서울시 용산구의 작은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철거를 앞 둔 지역, 이사할 사무실도 아직 구하지 못했다면서 걱정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사고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김씨는 14년 전에 벌어진 사고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주 오는 덤프트럭을 보는 순간 '부딪히는 상황이구나. 최대한 피해를 줄여보자'라는 생각이 앞섰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김씨의 차가 멈췄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의 얼굴과 머리, 왼쪽 몸이 모두 으스러진 뒤였다.

"사고가 난 후 2년 간은 거울을 보지 않았어요. 제 모습이 너무 참혹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결혼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진 사고였다. 이후로 김씨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왼쪽다리는 절단하고 한쪽 팔의 뼈는 완전히 으스러져 인공 관절을 이식해야 했다. 수술도 수십 차례. 다시 일어서기까지 그는 의족을 수십 번도 더 내팽겨 쳤다. 자신의 삶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예전에 어떻게 걸었더라?' 떠올려야 할 만큼 걸음을 떼는 법부터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불편한 의족을 끼고서 말이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제가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는 저를 자신의 발 등에 올리고 걷는 연습을 시키셨어요. 나중에 엄마의 발이 까맣게 변해서 어떻게 된 건지 물었더니 제 무거운 의족이 엄마의 발등을 눌러서 피멍이 든 거였어요. 엄마는 발등이 피멍으로 시커멓게 변할 때까지 내색하지 않으셨어요."

어렵게 발을 내디뎠지만 바깥으로 나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장애를 입은 자신을 향한 타인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아니 자기 스스로가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런 그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한 신문 기사를 접하고서다. 영국의 에이미 뮬즈라는 여성이 한쪽 다리를 잃고도 의족을 착용하며 모델 활동도 하고 있는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1년 반 동안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떼지 못하던 그가 용기를 냈다. 수소문을 통해 영국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의족을 맞췄다. 김진희 씨는 다시 일어섰다.

◇ 절단 장애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고로 신체를 절단하고 나면 병원은 얼마짜리, 어떤 의족을 할 것 인지부터 묻는다. 환자의 선택권은 많지 않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제일 비싼 의족으로 맞추면 김씨가 잘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씨의 몸에 잘 맞지 않아 금세 다른 것으로 바꿔야 했다.

"저 역시도 사고로 경황이 없고 정보를 구할 데가 없으니 많이 속기도 했죠. 어디에 알아볼 데도 없으니 이런 피해들이 계속 됐어요. 제가 아는 한 장애인은 2000만원이나 주고 의족을 맞췄는데 알고 보니 작동도 잘 안 되는 중고 제품이었죠."

김씨는 절단장애인들에게 정보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교류가 절단장애인협회를 만들기까지 이르렀다. 김씨의 협회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 마음껏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출구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협회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쉽지 않았던 수영도 의족과 의수를 벗고 함께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세상이 구호만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죠. 우리는 최대한 우리 힘으로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려고 해요. 회원들이 함께 운동을 하며 스스로 건강을 챙기죠."

김씨는 세계 여행을 다니며 유럽 선진국에서는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장애를 입고서도 훌륭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칼럼을 연재하며 같은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김씨는 매년 원정대를 꾸려 회원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캄보디아, 백두산, 몽골 등을 다녀오며 남다른 성취감을 맛보았다. 캄보디아에서는 오랜 내전으로 수족이 없는 사람들에게 족을 나누는 뜻 깊은 일에도 앞장섰다.
 
‘장애인의 다리’로 다시 서다

(사진=류승희 기자)

◇ 김진희 씨의 40대

사고가 난 후 14년이 지났다. 30대 초반이던 김씨도 어느덧 40대 중반이 됐다

"결혼? 아직은 일이 좋아요."

김씨는 다른 사람들이 "왜 결혼 안하느냐"는 물음에 자신의 나이를 실감한다고 한다. 가끔은 사고가 나기 전 결혼을 했다 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사고 나기 전에 결혼하려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내가 먼저 그 사람을 떠났죠.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지금 일이 너무 재밌고 제가 할 일이 아직 너무 많거든요."

김씨는 사고 전과는 조금은 다른 꿈을 꾼다.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보다 자신과 같은 절단 장애인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됐다.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캄보디아도 절단 장애인을 위한 센터가 잘 갖춰져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죠. 5년 안에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씨는 올해는 뉴욕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이다. 장애를 입지 않은 몸으로도 힘든 마라톤은 김씨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벅찬 도전이다. 장애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하려면 자꾸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 마라톤, 센터 건립, 봉사 활동 등 생각만해도 40대 김진희 씨의 삶은 여전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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