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극장 영화간판 그린 할리우드키드

극장 간판화가 김영준 씨

 
  • 김성욱|조회수 : 4,087|입력 : 2012.01.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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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이 있어야 극장 같죠. 멋있게 간판을 그려 걸어놔야 관객들도 좋아할 텐데 말이죠.”

지금이야 사실상 모든 극장이 멀티플렉스로 바뀌었지만,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극장은 1개의 상영관만 있는 단일관이었다. 그리고 이들 극장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큼지막한 영화간판이었다. 지금이야 디지털로 실사 출력 현수막에 밀려났지만 옛날에는 직접 손으로 그린 영화간판이 극장에 걸려있었다. 그 간판의 그림을 보면 사람들은 ‘영화 주인공과 정말 똑같이 그렸다’ 혹은 ‘도대체 저건 누굴 그린거야’하면 평을 하기도 했다.

이 추억의 ‘극장 영화간판’이 서대문에 다시 걸렸다. 서울시내 유일한 단일관인 서대문아트홀(옛 화양극장)이 고전영화 상영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면서 손으로 그린 영화간판을 내 건 것.
이 간판작업을 한 김영준(55세) 씨는 30여년 극장에서 영화간판을 그려 온 극장 간판화가다.

김영준 씨는 “15년 전쯤 비디오판권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영화간판을 그려보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그리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판에 뛰어들어 간판을 그리게 된 이유는 참 간단하다. “영화를 많이 볼 것 같아서”다.

“그림과 영화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간판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간판을 하나 걸어놓으면 시간이 많으니 영화는 정말 원없이 봤죠. 친구들에게 공짜 영화도 보여주면서 유세도 많이 떨었고….”

'마지막' 극장 영화간판 그린 할리우드키드

(사진=류승희 기자)

영화간판 화가로 뛰어든 후 김영준 씨의 꿈은 ‘개봉관 미술부장’이었다. 영화간판 화가도 비디오판권 극장→동시상영관→재개봉관을 거쳐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개봉관에서 간판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준 씨는 “재개봉관까지는 간판 크기도 작고, 그림을 그린 시간은 부족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특히 개봉관 미술부장이 돼야 좀 넉넉한 봉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영화간판 화가 모두의 꿈의 개봉관 미술부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영준 씨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개봉관 극장은 현 서대문아트홀인 화양극장. 화양극장은 80년대 홍콩느와르를 상영하는 서울 서부의 대표 극장이었다. 따라서 김영준 씨는 홍콩느와르 영화의 간판작업을 많이 했고, 어쩌면 당연히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대표작은 <영웅본색>이다.

“바바리코트(트렌치코트)를 휘날리는 주윤발과 장국영, 적룡이 나오는 <영웅본색>은 우리나라에 홍콩느와르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잖아요. 그 시작을 제가 간판으로 그린 거죠. 또 이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했고요. 영화간판이 흥행을 좌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흥행에 성공하면 작품이 오래 걸리게 되고, 그만큼 자부심도 생기죠. 하지만 영화가 너무 성공해도 문제였어요. 너무 오래 상영되면 할 일이 없으니까요. 항상 적당히 히트를 쳐야 영화간판 화가들도 먹고 살 수 있었죠.”

멀티플렉스와 디지털 실사 출력물 등으로 인해 영화간판이 극장에서 밀려나면서 김영준 씨도 직업을 잃었다. 그 후 김영준 씨는 벽화 작업이나 개인 작품 활동 등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15년 만에 다시 영화간판 작업을 하게 된 것. 옛 화양극장에서 미술부장을 역임했던 덕분(?)이다.

“김은주 허리우드극장 대표(실버영화관으로 변신한 허리우드극장에 서대문아트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가 영화간판을 그려달라고 전화를 직접 했는데, 너무 반가웠어요. 영화간판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준 김은주 대표가 너무 고맙죠.”

김영준 씨는 낚시대에 붓을 연결해 간판그림을 그린다. 일반적인 화가들의 그림 작업과는 차이가 있다.

김영준 씨는 “영화간판은 일반 캔버스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가까이 붓을 잡으면 뎃상이 안 보인다”며 “배경 등을 칠할 때는 제외하고 낚시대에 붓을 달아 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영준 씨가 그린 영화간판은 단일작품이 아니다. <닥터지바고> <사운드 오브 뮤직> <빠삐용> <챔프> 등 고전영화들의 주요장면이 다 들어가 있다. 9일 고전영화관으로 재개봉한 서대문아트홀의 안내용 간판이기 때문이다.

김영준 씨는 “과거 영화간판은 극장의 얼굴이자 영화의 얼굴이었다”며 “손으로 그린 영화간판을 다시 선보이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면서 셀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이 작업이 아마도 대한민국의 마지막 영화간판 작업일 것”이라며 “하지만 이것도 지속적으로 보관할 수 없어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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