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팔할은 오기와 깡"

'개천에서 날 용'에 주목하라/'고졸 디자이너' 최범석 대표

 
  • 머니S 이정흔|조회수 : 1,502|입력 : 2012.01.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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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일이야! 한번도 고졸이 디자이너로 성공한 걸 본적이 없어."
"왜 그런 미친 짓을 해? 실패하면 어쩌려고?"

지금껏 그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다. 고졸에 동대문 출신. 그가 처음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국내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의 한사람이 됐다.

그리고 힘들게 국내에서 자리잡은 그가 돌연 뉴욕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뉴욕과 일본 등 세계 10여국에 자신의 옷을 수출하며 보란듯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성공을 일궈낸 사나이, 최범석(35) 제너럴아이디어 대표의 이야기다.
 
◆"불가능? 안 되면 될 때까지!"

지난 9일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벽마다 그림이 붙어있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던 그가 반가운 얼굴로 취재진을 맞는다. 악수하는 그의 손에 쓰여진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IDEA'. 그는 '최근에 다시 새긴 문신'이라며 멋쩍게 웃는다. 오리지널(?) 문신은 손목에 쓰여 있다며 보여준다. 'general idea', 그의 회사 이름이다.

"자기 몸에 회사 이름을 써놓고 다닌다니 다들 미쳤다 그러죠. 그런데 저한테는 정말 자식 같은 회사예요. 저를 채찍질 해주는 주문이면서 예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쓰디쓴 약이죠." 

"나를 키운 팔할은 오기와 깡"

(사진=류승희 기자)

2003년 서울컬렉션을 통해 디자이너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디자이너 9년차. 당시 그의 데뷔는 상당한 파격이었다. 소위 '동대문 출신'이 서울컬렉션 무대에 선 건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대문에 입성했다. 그저 옷이 좋아서, 잘 팔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귀퉁이에 조그만 가게를 얻었지만 세상은 그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가게들은 손님이 바글바글 한데 귀퉁이에 숨어 있던 그의 가게는 파리만 날렸다.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을 때 그가 자주 찾던 곳이 바로 남산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동대문을 바라보며 혼자 대화를 했다고 한다. "언젠간 저곳에서 꼭 1등을 하리라." 

"처음 동대문에 가게를 차릴 때도 쉽지 않았어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애한테 누가 가게를 내주겠어요? 매일 떡볶이를 사들고 동대문 상가협회를 찾아갔어요. 그렇게 다섯달 만에 얻은 매장인데 장사가 어렵다고 포기할 순 없더라고요. 매일 고민하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랬죠. 어느새 진짜 매출 1등이 돼 있더라고요."

매출 1등을 이루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무작정 서울패션협회에 찾아갔다.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원로 디자인이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널 어떻게 믿니? 넌 너를 뭘로 증명할래?"

"그때부터 제가 디자인한 옷을 늘 들고 다녔어요. 결국은 그게 절 데뷔 무대로 이끌었죠. 당시에는 제 디자인을 보여주더라도 성공률보다 실패율이 더 높았어요. 그런데 그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될 때까지 버텼어요. 계속 하다 보니까 결국 이렇게 됐잖아요."

그를 '개천에서 난 용'으로 만들어 준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대뜸 "버티니까 되더라"고 답했다. 물론 이왕 버틸 거면 나날이 발전할 수 있도록 똑똑하게 버티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그는 "멍청하게 버티더라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버티다 보면 노하우와 인프라가 쌓이고, 그 노하우와 인프라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동대문 출신은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하죠. 저는 그것도 선입견이라고 생각해요. 의외로 시작해보지도 않고 겁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세상이 쌓아놓은 편견에 스스로 주눅드는 거죠. 콤플렉스는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 콤플렉스 안에 자기 스스로를 가둬 놓지만 않으면요. 하다 보면 안 되는 일은 없어요. 만약 안 된다면? 될 때까지 하는 거죠." 
 
◆동대문에서 날아오른 사나이, 이제 뉴욕에서 날다

국내에서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2009년 그는 돌연 뉴욕 행을 택했다. 국내 남성디자이너로서는 최초였다. 이미 2006년 한국 의류 브랜드 최초로 프랑스 파리 프렝탕백화점에 입점한 바 있는 그였기에, 파리가 아닌 뉴욕 행을 택한 것은 모험이었다.

"영어로 의사소통도 어려운 때였어요. 큰소리는 쳤는데 막막하기 그지 없었죠. 어렵게 여차저차 첫 무대를 준비했는데, 시작하기 바로 전에 뉴욕컬렉션 쪽 진행 요원들이 앞쪽에 놓여진 의자 두 줄을 치우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관객이 많이 안 올 것 같대요. 서럽고 초라했어요. 그 순간 오기가 발동한 것 같아요."

'내가 누군지 보여주마. 내년엔 관객을 2배로 만들겠다.' 그는 오로지 이 목표만을 생각했다. 그는 매일같이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비추고 한국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뛰어다녔다. 지금 그는 뉴욕에서도 가장 기대를 받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건 8할이 오기와 '깡'을 발휘한 덕분"이라며 멋쩍게 웃는 그지만, 여러 차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천재적 재능 덕분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친다.

"저 재능 없어요. 그림도 되게 못 그려요. 그래서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내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될 때까지 그리고, 될 때까지 디자인을 고치고, 될 때까지 생각해요."

최 대표는 얼마 전 코오롱 스포츠의류 브랜드 '헤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담당하게 됐다. 얼마 남지 않은 뉴욕컬렉션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일상에, 만만치 않은 중책이 얹어졌지만 그는 '힘들다'는 말보다 '재밌다'는 말로 그의 일상을 표현한다.

2012년을 시작하는 그에게서 '남들이 보여주지 못한 새롭고 재미있는 무언가를 내놓고 싶다'는 오기가 또 다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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