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전 '포차'에서 오늘을 봤다

신동일PB의 부자리포트/남들 은퇴 걱정할 때 상가 소유한 떡볶이집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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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누구나 즐겨 먹는 국민 간식이다. 포장마차, 분식집 등 누구나 떡볶이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백화점 세일즈맨 출신인 백 사장은 떡볶이업계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포장마차로 시작해 어엿한 상가 주인으로 변신했다.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손님만도 하루에 수백명에 이른다.

시작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화점에서 판매를 하던 백 사장은 동료 직원에 비해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담당하던 의류판매 세일즈에도 적극적이다 보니 동료직원에 비해 판매량이 2배가량 많았다. 그러나 순탄할 것 같은 그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직장이란 것이 원래 남보다 잘하면 칭찬을 받고 급여도 올라가야 하는 게 순리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동료직원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직장에서 인정받기는커녕 동료직원의 경계 대상이 되니 그의 고민은 하루하루 깊어만 갔다.

당시 그는 신혼으로 아내가 임신 3개월 째였다. 조그만 병원에 간호사로 다니던 아내는 임신과 함께 육아 휴직을 낸 상태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는 참고 지나간다 해도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암담했다. 점장으로 승진한다 해도 사실 월급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남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도 돌아오는 대가가 너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연히 들른 포장마차에서 운명을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백 사장은 마음이 통하는 유일한 직장동기 김 대리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다.

"사실 나 요즘 직장생활 너무 힘들어. 우리 하는 일이 백화점에서 물건 파는 일이잖아.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은 매월 꼬박 꼬박 월급 나오는 게 어디냐고 하시는데 이 일, 10년 뒤에도 똑같은 거잖아." 

침묵이 흘렀다. 김 대리도 동의하듯 소주를 몇 잔 들이켰다. 29살 백 사장에게는 꿈과 희망이 안 보였다.

그때 포장마차 여주인이 떡볶이를 내왔다. "에그 젊은이들, 오늘 뭐 속 상하는 일 있수? 이거 서비스니까 들어요." 포장마차 여주인은 족히 60은 돼 보이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였다. 마침 저녁을 먹지 않았던 터라 그와 김 대리는 허겁지겁 떡볶이와 라면 국물을 먹었다. 평상시 간식이나 군것질을 일절 하지 않았지만, 이날 떡볶이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배고픈 줄 알았는지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공짜 떡볶이와 라면까지 주니 우울했던 기분마저 떨쳐버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손에는 2인분 떡볶이까지 들려 있었다.

"자기야, 미안해. 오늘도 힘들었지."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 그는 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남들은 둘이 맞벌이를 한다고 부러워했지만, 사실 백 사장 부부는 겨우 1000만원 정도 모았을 뿐이었다. 장인도 연세가 많았고 장모도 몸이 아픈지 오래 돼 조금씩 생활비를 보태주고 있었다. 비록 가난한 신혼이었지만 서로 아껴주었기에 그나마 힘든 생활을 이겨 나갈 수 있었다.

다음날 출근하는 그에게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떡볶이 오늘 퇴근할 때 조금만 더 사다 주면 안될까? 너무 맛있어서…" 아내가 임신했어도 제대로 된 외식 한번 못한 백 대리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아내 모습에 흐뭇해졌던 터였다.

백 사장은 그날 퇴근을 서둘렀다. 어제 인심 좋은 60대 아주머니가 오늘도 열심히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아내가 임신 3개월인데 어제 떡복이를 너무 맛있게 먹는 거예요. 오늘 3인분 더 사려구요. 근데 이거 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그는 어제부터 제법 손님이 많은 포장마차에 관심이 갔다.
"바깥 양반 사업 부도나고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 시작한 지 3년 되었다우. 지금은 단골 손님도 늘어 근근히 생활할 정도는 되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주인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인심이 넉넉한 아주머니로부터 족히 5인분은 돼 보이는 떡볶이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백 사장은 괜히 기분이 들떠 있었다. "포장마차를 하더라도 저렇게 즐겁게 잘할 수 있구나." 집에 오니 아내가 많이 기다린 표정으로 맛있게 떡볶이를 먹었다. 그는 그런 아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우연찮게 군대에서 취사병 생활을 했던 그는 음식을 할 때 즐겁고 재미를 느꼈던 적이 많았다.

'아내가 저렇게 떡볶이를 잘 먹으니 재료를 사서 내가 한번 만들어 줄까?' 그는 다음날 시장에서 야채와 떡볶이 재료를 샀다. 서둘러 어제 포장마차 주인에게 들은 방법으로 요리를 해봤다. 그가 보기에도 일단 맛있어 보였다. "이거 자기가 정말 직접 한 거 맞아? 정말 맛있다"며 그의 아내는 맛있게 떡볶이를 먹었다.

그 다음 날부터 백 사장은 퇴근할 때면 일부러 떡볶이 포장마차 집에 들러서 오게 됐다. 떡볶이 뿐만 아니라 만두도 먹어보고, 순대와 라면 등 포장마차 메뉴를 전부 시켜 먹었다. 그때마다 포장마차 여주인은 자신의 아들 대하듯 자상하게 요리법을 알려줬고, 이런 저런 사는 얘기도 들려줬다.

어느덧 겨울이 돼 첫 딸이 태어났다. 백 사장 부부는 복덩이가 태어났다고 기뻤지만, 회사의 사정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빠듯한 급여로는 생활하기가 팍팍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1월이 됐다. 백 사장은 그날도 무심하게 포장마차를 지나서 퇴근하고 있었는데 포장마차 주인이 문을 일찍 닫고 있었다. "아주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그가 걱정스러운 듯 묻자 아주머니는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시골로 내려간다고 말했다. "그럼, 포장마차는 더 안 하시고요?" "응. 누구 할 사람 있으면 이거 다 처분하고 내려가려고 그래."

그날 저녁, 백 사장은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기야, 나 포장마차 한번 해볼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 자기가 하면 잘 할 것 같아. 자기가 해준 떡볶이 너무 맛있었어. 그럼 자기는 포장마차 사장, 그럼 나는 여자 사장이네. 하하." 백 사장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만 같았다.

백 사장은 다음날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4년 차에 접어든 직장생활에 약간의 미련과 회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사표를 내지 않으면 영원히 원치 않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운영하던 포장마차는 백 사장 부부가 하게 됐다. 그런데 포장마차를 직접 해 보니 결코 쉽지 않았다. 매일 장을 봐야 하고, 떡볶이 소스를 만들어야 했다. 힘든 한달 한달을 잘 버텨 나갔다.
 
◆다양한 떡볶이 소스로 고객 끌어

열심히 하는 것과 인심 좋은 것, 두 가지를 장사의 모토로 삼았는데 이것이 큰 힘이 됐다. 물론 제일 우선은 맛있는 떡볶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소스를 만들어 보고 다양한 시도를 계속했다. 제법 단골고객이 늘어났고 2005년부터는 입 소문으로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졌다.

이제 큰 딸의 나이가 26세, 백 사장이 떡볶이 집을 창업한지도 26년째다. 지금은 유명한 떡볶이 집으로 큰 성공을 했지만 백 사장에게도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떡볶이 집을 창업한 지 10년차, 알뜰하게 돈을 모아 상가를 샀지만 막상 떡볶이 집을 한다고 하니 아파트 입주자들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강남에 위치한 아파트다 보니 입주자 회의의 입김이 무척 셌다. 그때 입주자 대표 회장을 맡고 있는 이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당시 열심히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두 부부를 안쓰럽게 생각했던 김 회장은 백 사장이 운영하는 떡볶이 집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아파트 입주민 사이에서는 분식집이 아파트 상가에 들어오면 시끄럽고 주변 환경도 해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성실하고 정직한 백 사장 부부가 만든 분식이라면 안심이란 믿음이 들었던 것이다. 김 회장은 백사장 부부가 상가를 구입할 때도 다리를 놔 줬고,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었다.

"거의 20년간 해오던 장사를 그만둬야 될 위기에 처했는데 김 회장의 도움을 받은 걸 생각하면 평상시 믿음과 신뢰를 쌓는 것이 정말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유명한 떡볶이 집이라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한번 찾아가 보았다. 직원이 10명이나 됐는데 모두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다. 5년 터울의 세 딸들이 주말에도 열심히 일을 도왔다. 맏이는 주방, 둘째는 홀서빙, 셋째는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데이트도 하고 한참 바쁠 나이인데 신기한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 "아빠 엄마를 도와서 일한 지 15년이 넘었다"며 "이제는 습관이 돼 아무렇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고 큰딸이 말했다. 필자는 가족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26년 전 그들 부부는 추운 겨울, 어린 딸을 업고 포장마차로 출발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컸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오직 떡볶이를 잘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앞날이 불투명한 포장마차 떡볶이 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26년이 흐른 오늘, 입 소문을 듣고 온 고객들로 떡볶이 집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때는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백 사장 부부의 용기 있는 첫 걸음은 이런 성공의 모습으로 활짝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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