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였던 매출 2000억대 명품 수입업체 사장님

신동일PB의 부자리포트/메모로 성공 일군 '적자'생존

 
  • 신동일|조회수 : 8,858|입력 : 2012.03.1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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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사업가도 실패하면 한 순간에 손가락질 받는 조롱거리가 됩니다. 사업을 하려면  목숨을 걸고 다부지게 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인 학력으로 류진만(가명) 사장은 남대문 장돌뱅이에서 시작해 매출 2000억을 바라보는 굴지의 명품 브랜드 수입 전문 업체의 주인이 됐다.
 
류 사장은 원래 남대문시장을 돌며 라이터 등 잡화를 파는 장돌뱅이였다고 한다. 시장에서 잡다한 잔심부름을 하고 무거운 잡화 짐을 지고 남대문 시장을 골목골목 누볐다. 이때 류 사장의 꿈은 시장 한편에 단 1평이라도 자신의 가게를 갖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룰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류 사장의 타고난 부지런함,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사소한 특징까지 기억하려 노력하는 태도로 해가 갈수록 시장 상인들에게서 신임을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장돌뱅이였던 매출 2000억대 명품 수입업체 사장님

사진 류승희기자 

◆ 꼼꼼한 메모로 시장상인들의 신임 얻어
 
남보다 기억력이 좋긴 했지만 류 사장이 수백 명의 시장상인들이 시키는 잔심부름을 빈틈없이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소한 것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거래처 경조사를 꼼꼼히 챙길 수 있는 것은 거래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과 그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해두기 때문이죠.”
 
류 사장은 양복주머니에서 손때 뭍은 수첩을 꺼내 보였다. 그야말로 날짜별로 빼곡하게 메모가 되어 있고 빨강, 파랑, 형광펜으로 이런저런 표시가 돼 있었다.
 
이렇듯 경조사며 사소한 것까지 잊지 않고 잘 챙기는 류 사장의 메모습관은 사업을 하면서 빛을 발하게 된다. 시장 잔심부름으로 시작했지만 신용이 쌓이자 류 사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러 사업장간의 정보 교류가 이뤄졌고 급기야는 시장에서 각종 모임과 협의를 진행하는 모임의 총무를 하게 되었다.
 
그 시장 총무라는 자리는 류 사장에게 더 큰 돈을 모을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평소 류 사장을 눈여겨본 시장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던 박 회장이 자신이 갖고 있는 시장 매장 중에서 매출이 부진한 작은 가게를 류 사장에게 맡긴 것이다.
 
“내 가게는 아니었지만 드디어 행상이 아닌 고정적인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게 너무 기뻤어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죠.”
 
류 사장은 당시를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무엇이든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다 팔았어요. 라이터, 양말, 속옷 등등.”
 
남들보다 먼저 시장에 나가 1원이라도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사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류 사장의 잡화점은 점차 다른 가게보다 단 돈 10원이라도 저렴하면서 없는 게 없는 가게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잡화점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가게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은 류 사장은 박 회장으로부터 매장을 매입했다. 이후 5년이 안 되어 시장에서 가장 큰 매장을 두 개나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9년 7월 류 사장은 드디어 잡화점을 기반으로 회사를 창업할 수 있었다.
 
4년 동안 대형 매장을 5개로 늘렸고, 취급하는 품목도 국내 잡화뿐만 아니라 해외 수입 잡화까지 범위를 넓혔다. 가격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국내와 달리 해외 브랜드는 새로운 것들이 많았고 1988년 올림픽 개최와 함께 해외 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물건을 사러 해외에 처음 나갔을 때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해외 명품 시장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조금씩 수입하기 시작한 패션잡화가 오히려 마진도 좋고 시장의 반응도 더 좋았다.
 
류 사장은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장사가 잘되는 대형 매장을 갖고 있는 류 사장은 외국 유명 브랜드의 국내 판매권을 경쟁업체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얻게 됐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계약이었어요. 해외 명품회사는 이제 막 성장하는 국내에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우리 회사도 남성과 여성, 각각의 패션 리더에게 공급할 다양한 유명 브랜드가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한번에 큰돈을 벌 수는 없는 법.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의 재정을 담당하던 직원의 조언을 받아 주식에 돈을 투자했는데 수억 원을 손해본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직원은 잠적해버렸다.
 
“돈도 돈이지만 직원이 더 걱정됐어요. 자칫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그래서 그 직원을 찾아 설득했죠. 이제 주식투자는 그만두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라고요.”
 
류 사장에게 주식을 권했던 직원은 지금은 마음을 다잡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충직한 직원이 되었다.
 
“도박이나 주식투자로 한번에 큰돈을 벌려고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지요. 난 지금도 직원이나 아끼는 후배에게 입버릇처럼 너무 쉽게 돈을 벌려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합니다.”
 
위기를 넘기자 류 사장의 사업은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명품가방 구입 바람이 불면서 해외 유명브랜드를 수입해 국내에서 파는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 다양한 브랜드의 판매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어 류 사장은 현재 5개  수입브랜드의 국내 판매권을 확보한 상태다.
 
◆ 한국 슈퍼리치의 자산 형성 패턴
 
류 사장의 사업은 시작한 지 13년 되던 해인 2000년부터 매출이 급성장했다. 바로 유명백화점에 수입브랜드 매장을 신규 오픈하고 수도권에 물류창고로 사용할 부지를 구입하면서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나중에 물류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토지가 일부 수용되면서 시세 차익을 게 되었고, 수용에 따라 다시 구입한 땅의 시세가 상승하면서 자산 평가액이 크게 늘어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국의 슈퍼리치가 보여주는 기본적인 자산 형성 패턴을 류 사장의 경우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먼저 종잣돈을 마련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안정적인 수입이 창출되면서 종잣돈의 규모가 커진다. 이 종잣돈의 일부를 사업용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 사용해 땅값 상승에 따른 이익을 보게 되고, 나머지는 사업자금에 재투자해 매출 신장을 달성하는 것이다. 초기에 종잣돈을 마련하고 자신의 명의로 된 사업장을 열하기까지는 약 5년이 걸리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것은 빨라야 10년이 넘는 시점, 즉 10년에서 15년이 되어야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종잣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류 사장은 아직도 직접 운전을 한다. 주변에서 그만하면 기사를 쓸 때도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류 사장은 샐러리맨에게도 애정 어린 충고를 잊지 않았다.
 
“샐러리맨의 가장 큰 특징은 월급이 고정적이라는 점이지요. 하지만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는다고 해서 생각과 행동마저 고정돼 있어서는 곤란해요. 일단 자신의 회사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죠. 주인정신이 있는 직원과 없는 직원은 사소한 업무 처리에서도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류 사장은 어떤 일을 하든 열심히 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단순하지만 불변하는 '성공'의 키워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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