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유동성 해결 '발등의 불'… 국가 경쟁력 있어 회생 가능

 
  • 이건희|조회수 : 3,251|입력 : 2012.06.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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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페인에 대해 축구나 투우 정도만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한 스페인이 최근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국가가 됐고 스페인 상황의 불확실성은 시장에 높은 변동성을 가져와 투자자들 자산을 크게 요동치게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유로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전세계에 확산 효과가 나타나 수출주도형인 한국 경제도 악영향을 받을 우려가 크다. 이처럼 스페인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 나라에 대해 올바르게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페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최다 국가부도 기록 보유

'역사상 최초로 국가부도를 낸 나라는?' '역사상 가장 많이 부도를 낸 나라는?'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기원 전 4세기경 그리스의 일부 국가들이었다. 1832년 독립 이후 근래의 구제금융까지 포함해 6번의 부도 경험이 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스페인으로 9번의 국가부도 및 채무조정 선언이 있었다.

과거 역사에 대한 두 질문의 답이 그리스와 스페인인 것을 보면, 최근 전 세계 금융시장을 크게 흔들어 놓는 진원지가 이들 국가인 것이 우연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스 근대 금융의 역사를 따라가면 그리스 국민들은 대외 채무에 대해 우리가 우려하는 것만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낙천적인 민족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스페인도 국민성이 비슷해 이미 국가파산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번의 기록을 더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서비스 무역 강국… 너무 높은 건설업 비중

스페인은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63.4%에 달하고 제조업은 12.3%다. 건설업 비중은 10%를 넘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농업 비중은 2%대로 매우 낮다. 스페인은 넓은 땅과 높은 일조량, 풍부한 노동력에 기반한 지중해성 농업이 발달하면서 1970년대 초에는 국내총생산(GDP)의 12.2%, 노동인구의 29.4%를 차지할 정도로 농업이 활발했다.

그러나 공업이 발전하면서 농촌에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EU 가입 후 경제의 급성장으로 산업구조가 변해 농업비중이 크게 축소된 것이다. 반면 서비스 수출액은 전세계 5위, 서비스 수입액은 8위인 세계적인 서비스 무역 강국이 됐다.

스페인은 제조업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스페인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자동차를 생산한 국가다.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도 자동차·기계·신재생에너지 등에서 유수 기업들의 제품 생산이 이뤄진다. 아우디, 포드, 닛산, GM, 폭스바겐 등 유수의 완성차 메이커들이 스페인에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 18개 공장이 분포해 있으며 2011년 기준 연간 생산량은 235만대다. 이는 독일에 이어 유럽 2위이며 세계 9위에 해당한다.

의류분야에서는 그 유명한 ZARA가 스페인 브랜드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Accina, Gamesa 등 세계적인 기업이 있다. 발전용량 기준으로 풍력분야 세계 4위이며, 태양광 분야는 세계 2위다. 스페인 내 총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32.3%에 육박한다(2010년). 낙농가공업의 Viscofa, 와인회사 Felix Solis, 소프트웨어 회사 Oesia 등도 국제적인 기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유선통신과 무선통신망을 보유한 회사 중 하나인 Telefonica는 본사가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에 있다.

◆무역 적자규모 줄었다

무역적자국이지만 최근 몇년간 수출 증가율이 수입 증가율을 앞서면서 적자규모가 줄어들었다. 2011년 수출액은 2145억유로, 수입액은 2608억유로다. EU 회원국간 관세 및 비관세 철폐로 수출입의 3분의 2가 EU 내에 집중돼 있다.

수출품목 1위는 자동차이며, 3위 자동차부품, 5위 화물차, 8위 타이어로 자동차에 관련된 품목이 수출품목 상위를 점하고 있다. 의약품 수출액은 한국보다 더 많다. 농산물은 포도, 오렌지, 토마토, 올리브, 올리브유, 와인 등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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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외하면 세계 최대 관광대국

전 세계에서 관광수입이 가장 많은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그 다음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관광대국답게 연간 60조원이 넘는 돈이 관광수입으로 들어온다.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 현대중공업, LG화학 등 초대형 기업들이 거두는 순이익의 합계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니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관광산업의 비중이 높은 국가가 불안해지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위안 받을 수도 있다. OECD 가입국 중 GDP 대비 관광산업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그리스이며 아이슬란드, 스페인도 최상위권이다. 독일, 노르웨이, 캐나다 등은 한국보다도 GDP 대비 관광산업비율이 낮다.

◆지방정부·은행 때문에 늘어난 부채비율

스페인의 국가부채비율은 5년 전까지만 해도 GDP의 36.3%로 독일(65.2%), 프랑스(64.2%)보다 훨씬 우량했었다. 하지만 부동산 호황기에 저축은행들이 전체 대출의 70%까지 주택대출을 늘렸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지방정부는 무분별한 건설 붐으로 문화·교통시설을 우후죽순처럼 세우고 전시행정에 치중해 지방정부의 재정적자비율이 높아졌다. 여러 지방정부와 은행들의 신용등급 강등이 줄을 이었다.

중앙정부에 재정의 67%를 의존하는 지방정부들이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게 되자 중앙정부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저축은행에 900억유로를 쏟으면서 재정이 악화됐다. 정부는 자산규모 3위인 은행 방키아를 살리고 재정적자를 메우는 등 넣어야할 돈이 많아진 반면 자금 조달이 힘들어져 국채 발행금리가 크게 올랐다.

그 결과 스페인 정부의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은 지난해 8.5%에서 올해 8.9%로 늘어났다. EU에서 유로존 국가에게 권고하는 3%선을 크게 웃돌고 있다.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도 지난해 68.5%에서 올해 80% 수준으로 늘어나 22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유로존 국가들끼리 약속한 부채비율한도인 60%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청년 실업률 24%

스페인처럼 관광업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근로인력이 많아 실업률 데이터가 다소 왜곡된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006년에는 독일의 10.2%보다 낮은 8.1%였다, 그러다 올해 1분기에는 독일의 실업률은 20년만에 최저인 5.4%로 하락한 반면 스페인은 15년만에 최고인 24.4%로 상승했다. 임금을 내려 경쟁력을 회복해야 하지만, 노조로 인해 임금을 내리지 못하고 높은 실업률에도 임금은 계속 올랐다. 긴축 프로그램으로 실업률이 더 올라갈 것으로 우려된다.

유로존 전체 실업률은 11%로 집계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실업률이 늘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경기가 위축된다. 그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률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스페인의 경우 특히 25세 미만 실업률이 5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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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있다

스페인 GDP의 10%에 육박하는 970억유로의 외국자본이 올해 1분기에 스페인을 빠져나갔다. 지난 한해 동안 빠져나간 978억유로와 맞먹는 금액이다. 단기적으로는 외부지원을 통해 은행권 자본을 확충하고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을 성장시켜 생산을 늘리고 실업을 줄여 소비를 회복시켜야 한다. 다행히 스페인은 건설 및 엔지니어링·항공·자동차·재생에너지·바이오기술·담수처리 등의 산업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풍력·태양광의 재생에너지와 건설 엔지니어링·통신서비스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므로 이들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ENR이 선정한 세계 100대 건설 기업(2011년 기준)에 스페인계 10개사가 선정될 정도로 플랜트·엔지니어링 분야의 강국이다. 해외건설시장 진출을 더욱 촉진하고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로 언어가 같고 문화가 비슷한 중남미권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늘려가야 한다. 자동차 기계 등에서는 서유럽과의 지리적 인접성과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기지 역할을 했는데 스페인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주요 자동차사의 생산공장이 동구권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R&D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최근 스페인 상장사 중 시가총액 1위는 ZARA의 모회사인 인디텍스다. 해외매출 비중이 78%에 달하고 올해 신설하는 500개 매장의 절반 이상이 비유럽권이다. 일찌감치 스페인과 유럽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성장성 높은 신흥시장을 공략해 경제위기에도 타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성장했다. ZARA는 하루 단위로 디자인을 바꾸는 전략을 구사하고 매년 1만2000여종의 새 상품을 내놓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혁신적인 유통기업으로 평가받는다.

넓은 국토에서 나는 양질의 농산물과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조건에서 얻어지는 풍부한 수산물을 기반으로 식음료 가공산업에 부가가치를 높여 발전시키면 좋을 것이다. 관광대국이므로 요식업을 관광에 연계하기도 유리하다. 아프리카 서쪽에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원양어업도 더욱 키워나가야 한다. 인류 최초의 지구 일주 항해 선단의 지휘자인 마젤란이 스페인의 항해자가 아니던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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