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부터 줄 세우는' 나라

신 맹모시대/ 씁쓸한 신맹모들의 교육법

 
  • 지영호|조회수 : 2,938|입력 : 2012.06.19 10:11
 
기사공유
  • 카카오톡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네이버 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공유
  • url 공유
지난 5월 보령메디앙스와 서울대 생활과학대학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부모의 평균 육아비용은 월 평균 82만원이다. 월 평균 지출금액의 3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특이한 점은 수입이 줄어들어도 지출 대비 육아비용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 소득 500만원 이상인 가계의 평균 육아지출비용은 148만원, 소득 200만원 미만인 가계의 평균 육아지출비용은 53만원으로 100만원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비중은 비슷하다. 평균 소비 대비 육아비용의 비율은 각각 34%와 32%다. 이 구간 사이의 소득을 올리는 가계 역시 큰 차이가 없다. 결국 가계 소득과 무관하게 자녀와 관련한 지출비중을 30% 이상으로 책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녀 1인당 양육비용(출생부터 대학 졸업까지)은 2억6200만원이다. 영유아기를 거치는 동안 5400만원, 초등학교까지 합하면 1억1700만원으로 중·고·대학교 시기와 맞먹는다.

실제로 일부 부모들이 자녀에게 쓰는 돈의 씀씀이는 경외로울 정도다. 유아복이나 완구, 카시트 등에 명품만 붙으면 돈의 액수와 무관하게 순식간에 팔린다. 200만원이 넘는 명품 유모차도 동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월에는 명품 유모차를 싸게 판다고 속여 돈을 갈취한 일당이 잡혔는데 9일 동안 300여명이 1억원이 넘는 돈을 송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뱃속부터 줄 세우는' 나라
사진_류승희기자
 
◆자녀에게 드는 비용, 아깝지 않다

'산부인과 동문, 산후조리원 동기, 유모차 신분'

젊은 엄마들 대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말이다. 1년 전부터 온라인 육아카페에서 활동해 온 김정미 씨(31·가명)는 "이미 태교할 때부터 자녀의 신분이 갈린다고 할 정도로 소득별 편가르기 현상이 심하다"고 토로한다. 그는 또래 엄마들과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오프라인 모임까지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선 압구정동이나 청담동 등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에서의 출산이 회원들 사이에서 우대받는다. 이렇게 해서 '산부인과 동문'이 생긴다. 친정엄마의 정보력은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선택의 '입김'으로 작용한다. A병원이 자녀의 성별을 잘 알려준다거나 B병원이 시설면에서 우수하다는 식이다. 집에서 2~3시간이 걸려도 명문 병원이나 유명 산후조리원을 고집하는 이유다.

백화점이나 놀이공원 등에서 마주치는 유모차는 엄마들 사이에서 자녀에 대한 애정을 판가름하는 민감한 소재다. 젊은 엄마들은 곁눈질로도 '어느 회사 제품의 얼마짜리 모델'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유모차로 아이의 등급을 알 수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일부에서는 '엄마의 과시욕'이 수입 유모차의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비난하지만 그래도 엄마들은 '명품 자녀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온라인 카페의 여론은 때로는 정석이 된다. 예컨대 C사 기저귀함에 대해 좋은 평가가 나오면 회원들의 집단 구매가 이뤄진다. 반드시 사야하는 필수 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구매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분위기다.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린 구매에 이르기도 한다는 얘기다.

가사 도우미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통 숙식을 포함해 월 150만원 정도다. 주로 중국 교포들이 도우미로 나선다. 주변에서 알음알음 소개받는 경우가 많다. 과하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엄마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항변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강남 부모들에게 해외 연수는 '핫 아이템'이다. 주로 북아메리카나 유럽 등 선진국가의 영어 프로그램이 인기다. 물론 비싸다. 방학기간 동안 체류하는 일정으로 1000만원인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다. 도곡동에 사는 박진영 씨(40·가명)는 "지난해 빚을 내 아들을 영국의 유명 축구클럽 방문 일정 등이 포함된 영어 연수 프로그램에 보냈다"며 "여러모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 같아 올해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번 이사한다는 맹모도 현재 한국의 분위기라면 울고 갈 지경이다. 고액과외와 해외 연수는 물론이고 집을 팔아 전셋집을 전전하더라도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출혈도 감내하는 분위기다. 강남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5살짜리 자녀를 유명 영어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분당 집을 팔고 강남 전세로 들어온 경우도 봤다"며 혀를 찼다.

 
'뱃속부터 줄 세우는' 나라
 
'뱃속부터 줄 세우는' 나라

사진_류승희기자

◆재기 불능 사회와 과시욕이 만들어낸 합작품

최근 영국의 한 일간지는 딸의 생일파티에 5500만원을 쓴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됐다고 보도했다. 딸에게 최고만을 안겨줬던 아버지가 생일파티에 큰 돈을 쏟아 부은 결과 집과 땅을 모두 잃고 파산 위기에 몰렸다는 내용이었다.

해외토픽성 기사지만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녀 사랑에 눈이 멀어 자칫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녀에게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은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한 뒤 "조기교육 역시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다. 자녀가 원할 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충고했다.

문제는 한국의 보여주기식 문화다. 자신의 경제수준보다 받는 사람의 수준을 감안해 선물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경쟁적인 자녀의 사교육비 지출도 '뒤처져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되곤 한다.

다만 이와 같은 현상의 책임을 부모에게만 전가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사회적 여건이 부모의 과다 지출을 종용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이미 학교수업 진도가 2~3년 앞서 있어 과외비 지출은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연구위원은 "보여주기 위한 형식문화와 자존심이 이러한 소비 형태를 결정했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과다 육아비용 문제는 결국 한번 낙오하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와 부모의 욕심이 의기투합해 빚어낸 산물"이라고 진단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경제상황에 맞는 육아비용을 책정해야 한다는 충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0%
  • 0%
  • 코스피 : 3249.32상승 24.6818:01 06/11
  • 코스닥 : 991.13상승 3.3618:01 06/11
  • 원달러 : 1110.80하락 518:01 06/11
  • 두바이유 : 72.69상승 0.1718:01 06/11
  • 금 : 71.18상승 0.4718:01 06/11
  • [머니S포토] '국민의힘 30대 당대표 탄생'
  • [머니S포토]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줄확진 '올스톱'
  • [머니S포토] 공수처 수사 관련 발언하는 김기현 권한대행
  • [머니S포토] 캐딜락 5세대 에스컬레이드, 압도적인 존재감
  • [머니S포토] '국민의힘 30대 당대표 탄생'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