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리먼보다 더 센 놈이 온다

World News/ 권성희 특파원의 New York Report

 
  • 권성희|조회수 : 5,979|입력 : 2012.07.1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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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경제지표 둔화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재정절벽(Fiscal Cliff)'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 연방준비기구(연준)도, 신용평가사 피치도 잇따라 미국의 '재정절벽'을 유로존 채무위기와 더불어 미국 경제의 양대 리스크로 지목했다.
 
'재정절벽'이란 올해 말부터 시작되는 자동적인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삭감을 의미한다. '재정절벽' 상황은 지난해 여름 미국 정치권의 채무한도 증액 협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미국은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한도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국채 발행 잔액이 이 한도를 채우면 법안을 개정해 늘려야 한다. 국채가 결국 미국의 부채, 채무이므로 이를 채무한도라고 한다.
 
9·11, 리먼보다 더 센 놈이 온다
  
◆미국, '재정절벽' 현실화 우려
 
지난해 여름 미국은 채무가 한도에 거의 도달해 증액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미국의 국가 부채와 재정적자가 날로 늘어나기만 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채무 증액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증세가 필요하다는 민주당과 증세는 절대 안 되고 복지지출 삭감을 검토해야 한다는 공화당이 협상을 타결 짓지 못하면서 전 세계는 미국이 채무한도를 늘리지 못해 국채를 발행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 시달려야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의회는 결국 채무한도가 거의 바닥나기 직전 채무 한도를 증액하기는 했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향후 10년간 1조2000억달러 줄어들도록 2013년부터 예산을 깎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시켰다.
 
당시 의회는 협상 시간이 부족해 일단 예산이 삭감되는 세부 항목을 따지지 않고 필요한 재정지출 감축이 국방비와 비국방비에서 절반씩 일어나도록 법안을 만들었다. 채무한도를 증액시켜 급한 불을 끈 뒤 11월(2011년 11월) 중순까지 의회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재정적자 감축의 세부 내용을 꼼꼼히 논의해 법안을 개정하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각 6명으로 구성된 12명의 특별위원회는 협상에 실패했고 이후 의회에서는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시정하기 위한 추가 협상이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여름에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놓은 자동적인 예산 삭감이 내년 1월1일부터 발효된다.
 
문제는 의회가 여야 갈등으로 교착 상태에 봉착하면서 올해 말로 만료되는 세금 감면 조치들도 연장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자동 예산 삭감과 더불어 각종 세금 감면 조치도 올해 말로 종료돼 내년부터는 세금까지 인상될 판이다. 세금 감면이 올해 말로 끝나면 중산층 가계의 연간 세금 부담은 1750달러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재정지출이 대폭 줄어드는 '재정절벽'이 현실화되면 내년에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가량으로 축소된다. 재정적으로는 건전해지지만 정부의 예산이 급격하게 줄고 세금이 크게 오르면서 미국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IMF는 지난 7월3일 '재정절벽'을 피하지 못하면 내년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상반기에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연간 전체로도 1%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재정절벽'의 상당히 부정적인 파장이 이미 취약한 세계 경제에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지난 7월10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하는 한편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지속하면서 "세금과 예산 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재정절벽'이 단기적으로 경제 전망에 부담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준은 지난 6월19~20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업들이 세금 인상과 규제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능한 투자를 중단하고 있다"며 '재정절벽'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한 것으로 7월11일 공개된 회의록에서 확인됐다.

◆여기저기서 제기하는 위기론

'재정절벽'이 미국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미국의 채무 한도 증액 협상 과정과 뒤이은 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정절벽'의 부정적 파장 역시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더글러스 W. 엘멘돌프 이사는 '재정절벽'에 대해 "지금도 이슈이지만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하반기가 되면 점점 더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정절벽'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이미 올해 미국의 GDP 성장률은 최대 0.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절벽'으로 인한 세금과 사회 각 분야 정부 예산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곤란을 겪으면서 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바클레이즈캐피탈의 딘 마키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재정절벽'과 더불어 오는 11월에 치러지는 대선과 의원 선거도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의회를 주도할 것인가 하는 점도 불확실성의 일부"라며 "불확실성은 주요 정책 변화가 선거 이후에나 확정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지난 6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잉의 제임스 맥너니 CEO는 "연말 미국 정부의 세금과 예산을 둘러싼 불확실성 및 유로존 위기의 해결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스탠포드대학의 니콜라스 블룸 경제학 교수와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의 스티븐 J. 데이비스 경제학 교수는 불확실성을 계량화한 수치를 개발했는데 역사적으로 재정정책이 이 불확실성 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미국 정치권의 채무한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9·11 테러나 리먼 브러더스 파산보다도 이 불확실성 지수를 더 큰 폭으로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블룸 교수는 '재정절벽'이 앞으로 수개월간 점점 더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끔찍히 어중간한 상태에 빠져 있으며 경제는 마치 사형수 수감 건물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미트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를 자문하고 있는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재정절벽'이 심지어 유로존 채무위기보다도 미국 기업에는 더 큰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도 '재정절벽'이 아직까지는 신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지만 가을부터는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절벽'은 아직 현실적인 불안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진행된 미국의 채무한도 증액 협상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채무한도 증액이 지난해처럼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만든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재정절벽'에 대해 현재 협상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 미국 의회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어쩌면 세계는 미국의 재정정책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끔직한 공포영화를 지난해 여름에 이어 올 겨울에 또 다시 관람해야 할지도 모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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