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비로 먹고 살만 합니까?"

불황돌파구 '느리게'/ 슬로푸드사업, 현실과 이상

 
  • 이정흔|조회수 : 12,980|입력 : 2012.08.3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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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비'. '천천히 그러나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을 뜻하는 말이다. 국내 대표적인 슬로푸드카페 '슬로비'는 천천히 그러나 훌륭하게 한끼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주인의 바람이 담겨 있는 곳이다. 이곳 슬로비를 운영 중인 한영미 대표를 만났다.

슬로푸드를 비롯한 슬로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이를 주업종으로 삼아 삶을 영위하기란 아직까지 만만치 않다. 이들의 경제적 현실과 함께 그럼에도 더 행복한 삶을 얻은 데 만족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슬로비로 먹고 살만 합니까?"

사진_류승희 기자
 
◆슬로푸드, 함께 만드는 '공동체 음식'

화려한 홍대 거리. 지난해 이곳에 처음 문을 연 슬로푸드 레스토랑 슬로비는 사회적기업 '오가니제이션요리'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오가니제이션요리는 '요리를 통해 사람의 성장을 돕고 사회적 자립을 돕는 일'에 중점을 두고 현재 다문화 여성들과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요리학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요리교육사업을 하던 그가 왜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기로 결심한 것일까. 그의 답은 단순명료하다. 이 사람들이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는 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단다.

그래서 그는 "슬로푸드란 단순히 패스트푸드의 반대개념으로 '시간을 들인 정성스런 요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요리에 쓰이는 재료,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 또 그 요리를 먹는 소비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을 실험 중이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그냥 유기농 재료, 좋은 재료를 쓰는 게 다가 아니에요. 지금도 농부들이 어떻게 이 재료들을 생산해내는지 직접 살펴보고 '얼굴을 아는 농가'와 거래를 늘리는 운동을 진행 중이에요. 실제로 그분에게도 도움이 되는 유통방식으로 거래를 하고, 그렇게 고른 재료로 정성스레 식사를 만드는 그 모든 과정이 다 슬로푸드에 해당되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러고 보니 슬로비는 인테리어는 물론 메뉴부터 여느 식당과는 다른 구석이 많다. 이곳의 대표메뉴는 '그때그때 밥상'. 매일매일 재료의 상태나 거래량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기 때문에 오늘 밥상에 어떤 요리가 올라올지 모른다. 정기적으로 카페 직원과 고객이 농촌체험을 떠나기도 한다. 자신이 먹는 요리의 재료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가게 한켠에 통유리로 마련된 공간도 눈에 띈다. 마치 가정집의 주방을 떼어 옮겨놓은 듯한 이 공간엔 싱크대 등 조리기구와 함께 조그만 식탁이 놓여있다. 친구들과 언제든 직접 요리를 해먹으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카페에서는 이 공간을 활용해 한달에 한번 '오라잇 테이블'을 개최하는데, 말하자면 귀농청년 등 슬로비족을 초청해 얘기를 나누는 커뮤니티라 할 수 있다.
 
"슬로비로 먹고 살만 합니까?"

한영미 슬로비대표
사진_류승희 기자
 
◆관심 급증, 수익원 다양화 추세

그렇다면 외식업체의 경쟁이 치열한 홍대 상권에서 슬로비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조금은 현실적인 부분으로 화제를 넘기자 한 대표는 의외로 솔직하게 현실을 얘기했다.

"홍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첫 6개월을 버티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요. 실제로 1년여 전만 해도 유기농 전문식당이 문을 열면 거의 대부분이 1년 내에 망하는 게 현실이었죠. 그런 점에서 슬로비가 1년 넘게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슬로푸드가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특히 슬로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충성고객이 늘고 있다고 자랑했다. 지금도 슬로비는 '내 끼니 찾기 운동'을 통해 한달에 10∼15번의 식사권을 1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그야말로 고정 고객들을 노린 셈인데 한 대표 역시 처음에는 '이게 가능할까' 싶었으나 지금은 꾸준히 10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분명히 슬로푸드나 슬로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고 그런 수요가 매출로 연결되기 시작한 단계인 거 같아요. 뜯어보면 우리 레스토랑 역시 단순하게 슬로푸드라는 음식만 판매하는 건 아니에요. 식사를 하러 오셨던 분이 농부체험에 참여하기도 하고 에코샵에서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죠. 오라잇 테이블만 해도 월 1만5000원의 회비를 내야 하는데 최근에는 매번 매진이에요." 
 
그는 "홍대에서 외식업을 운영하려면 최소 월 3000만원의 매출이 나와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면서도 "다만 겨우 식당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의 매출이 나온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한 대표는 이 부분에 상당히 고무적이다.

"처음부터 많이 벌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잖아요. 우리에게는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고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앞으로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보는 거죠." 

그렇다고 '장밋빛 환상'에만 취해 있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당장 재료를 들여오는 데만 해도 영세농가와 직거래를 추구하는 만큼 원가 부담이 더 크다. 대기업과 같은 유통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 배달 받을 때마다 건별로 부담하는 택배비가 만만치 않다. 일일이 농가를 찾아다니며 살펴보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도 적지 않은 품과 비용이 들어간다.

"우리 식당 한끼 밥값이 8000원이에요. 손님들도 비싸다고 말해요. 매일 먹는 밥상을 콘셉트로 하는데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그런데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싸더라도 그 정도 가격대를 유지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다만 살림살이가 조금 더 나아지면 그만큼 고객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입니다."

슬로라이프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경영자 입장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결정을 내린 적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게 직원을 위한 일요일 휴무 원칙이다. 특히 홍대 거리에서 일요일 장사를 포기한다는 건 매출을 고려한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결정이다.

"솔직히 우리 직원들이 다른 식당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일하거나 더 적은 시간을 일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더 짠 월급에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직업의식으로 버티는 거죠. 다만 제가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분명해요. 경영자가 매출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직원의 업무는 지금보다 더 많아질 테고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거죠.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더 많이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을까'이니까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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