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문>이 요즘 애들에게 먹히겠냐고?

두드려라 1990/ <돌아온 세일러문> 기획자 대원방송 김정령 PD

 
  • 이정흔|조회수 : 22,853|입력 : 2012.09.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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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면 5명의 미소녀가 여전사로 변신한다. 동네 꼬마들이 모여서 노는 장소는 오락실. 짝사랑하는 오빠에 대한 사연을 담아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는가 하면 노래를 들을 때는 카세트테이프를 먼저 찾는다. 
 
촌스러운 그림체에 등장인물의 움직임도 (요즘 디지털기술을 적용한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소품부터 이야기까지 초등학생들은 이해 못할 장면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도 이 만화는 인기 만점이다. 지난 9월2일부터 대원방송의 애니메이션채널 '애니원'과 '챔프'를 통해 방영을 시작한 <돌아온 세일러문>이 바로 그것이다. 
 
애니메이션에도 90년대 복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2012년에 '세일러문'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세일러문'의 국내 재방영을 기획, 연출한 김정령 대원방송 편성팀PD로부터 뒷얘기를 들어봤다. 
 
 
◆<돌아온 세일러문> 주시청자는 30대 여성
 
타케우치 나오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일본에서 처음 탄생한 것은 1992년. 국내에서는 5년 뒤인 1997년 KBS를 통해 방영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5년 전의 얘기다. 
 
그 이후로 수많은 미소녀 변신물이 탄생하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원조격인 세일러문의 아성을 무너뜨릴 만한 작품은 없었다. 김 PD가 15년이나 지난 '옛날 만화'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다. 
 
김 PD가 <돌아온 세일러문>의 기획에 들어간 건 2~3년 전. 일본 원작자가 세일러문의 전세계 방영을 중단한 상태에서 세계 최초로 국내 재방송을 이끌어내느라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가격 역시 최첨단 디지털 CG작업이 동원된 신규 애니메이션과 비교해 적지 않은 투자금액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지금과 같은 복고 열풍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기획에 들어간 거예요. 운 좋게 방영시기가 맞아떨어지며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돼서 감사하죠. 우선 나부터도 90년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잖아요. 제작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지금의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뒤지지 않아요.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거액의 투자금이 들더라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거죠."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무엇보다 시청자층이 의외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4∼12세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해 세일러문은 시청자의 70~80%가 30대 초중반 여성들이다. 예상 외의 호응에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편성기준인 '일주일 3번 방송'을 깨고 지금은 '일주일에 4번' 방송을 진행 중이다.   
 
김 PD는 "초·중학생 여자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기획인데 실패했다"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새로운 시청자층이 형성되는 결과여서 상당히 고무적이다"며 싱글벙글이다. 
 
아직은 방영 한달이 채 안된 초기이고 어린이 시청자를 잡는 데는 오랜 노하우가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주타깃 시청층 역시 두터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30대 여성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만큼 '이모와 조카' '엄마와 딸'이 나란히 앉아 TV 속 화면에 푹 빠진 모습도 충분히 가능하다. 향후 애니메이션 시장의 다양성을 가져오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가 모아진다. 
 
 
◆추억만 판다? 새로운 시청자 잡을 것!  
 
15년 만인 2012년에 대한민국에서 되살아난 세일러문은 옛 것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새로운 성우들과 더빙작업을 거쳐 소리를 다시 입혔고, 오프닝 노래와 장면 역시 새롭게 탈바꿈했다. 리마스터링 작업을 진두지휘 중인 김 PD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옛 명성을 되살리는 작품인데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할까, 혹시 원작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옛 것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새로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옛날 발성을 사용하는 더빙을 바꾸고 오프닝 노래도 아이돌 그룹에 맡겼어요."  
 
'향수를 자극하지만 단순히 추억에 머무르지는 않도록!' 김 PD가 세일러문의 연출을 맡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중 하나다. 
 
그는 "바뀐 더빙 때문에 옛 추억을 더듬고 싶었던 시청자로부터 엄청난 원성을 듣고 있다"며 "하지만 단지 추억을 소비하는 데만 그친다면 90년대 복고 열풍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소신을 밝힌다. 처음부터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30대보다는 이런 문화에 낯설어 하는 초·중학생 시청자를 타깃으로 잡은 것도 이 같은 이유였다. 
 
김 PD는 "나 역시 아들과 함께 <태권V> 등의 만화를 보러 극장을 찾곤 하는데 나에 비해 아들은 푹 빠질 정도의 재미를 못느끼는 것 같았다"며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덧붙인다. 
 
그는 최근 극장에서 재상영된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3D> 이야기를 꺼냈다. 이 작품 역시 예전의 콘텐츠를 재활용하는 형태지만 새롭게 3D 작업을 입히는 데 적지않은 투자금을 들였다는 것. 
 
"국내 TV채널을 통해 90년대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건 세일러문이 첫 사례지만 이미 극장에서는 이런 시도가 여러번 있었죠. 그런데 이들 작품을 보면 확실한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 크다는 거예요.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거잖아요. 향수를 지닌 시청자만 공략했다면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할 순 없었을 거예요. 새로운 시청자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뒷받침 된 거죠." 
 
그는 요즘 애니메이션의 트렌드와 비교해서도 한동안 90년대 복고 애니의 열풍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작품 자체의 경쟁력보다는 상업적인 관점에 초점을 둔 작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와 상관없이 싸움 장면을 삽입하고 특히 싸움 도구를 부각하는 식이다.
 
김 PD는 "요즘 애니메이션들은 향후 장난감 판매를 고려해 이야기보다는 화려한 싸움 도구를 더 자주, 크게 보여주는 것들이 대다수"라며 "이와 비교해 90년대 명작들은 이미 콘텐츠가 갖고 있는 힘을 검증받은 만큼 앞으로 시장에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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