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하는 엘리트 학생들

World News/ 권성희 특파원의 New York Report

 
  • 권성희|조회수 : 6,779|입력 : 2012.10.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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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의 대표적인 엘리트 공립 고등학교인 버겐 아카데미. 최근 한 남학생이 생물 시험을 다시 보고 싶다며 교사를 찾아왔다. 버겐 아카데미에선 87점 이하면 B- 학점을 받게 되고 이 경우 학생이 원할 경우 재시험을 칠 수 있다.

교사는 이 학생도 그런 사례인가 싶어 흔쾌히 수락하고 학생 이름과 학점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교사의 표정이 바뀌면서 학생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학생의 점수는 97점. 학생은 3점을 더 얻어 100점을 맞고 싶은 마음에 재시험을 요청했던 것이다.

아들을 버겐 아카데미에 보내는 한 한국인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다. 흔히들 미국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에 비해 공부 스트레스가 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명문대를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명문 고등학교 학생들의 공부 스트레스는 버겐 아카데미의 생물 97점짜리 학생의 예에서 짐작할 수 있듯 상상을 초월한다.
 
커닝하는 엘리트 학생들


◆명문학교 시험 부정행위 만연

최근 미국에서는 엘리트 학생들의 시험 부정행위, 이른바 커닝이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뉴욕시 최고의 명문 공립 고등학교인 스타이브슨트에서는 지난 7월 스마트폰을 이용한 대규모 시험 부정행위가 적발돼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16세의 네이임 아샨은 졸업 자격시험에서 자신의 물리학 답안지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내주고 자신의 취약 과목인 스페인어 시험에서는 친구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돼 정학 당했다. 아샨의 문자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 66명도 조사를 받고 5일에서 10일간의 정학 조치를 당했다. 아샨은 아직도 스타이브슨트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샨이 운이 나빠 걸린 것일 뿐 스타이브슨트의 시험 부정행위는 훨씬 더 만연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스타이브슨트 교내 신문인 스펙테이터가 지난 3월 2045명의 재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가 한번 이상 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부정행위로 적발된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10%에 불과했다.

스타이브슨트에서는 대학교 과목을 미리 이수하는 AP에서 85점을 받으면 낙제하고 평균 95점 이상을 받으면 MIT나 예일대 같은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 이러니 학생들로선 AP든 뭐든 시험점수 1점에 연연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부정행위에 대한 유혹도 많이 느낀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부정행위는 스타이브슨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5월 하버드대학의 매튜 플래트 교수는 행정학의 '의회개론' 시험지를 채점하다 10~20명의 답안이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학교 측에 신고했다.

'의회개론' 시험은 학생들이 시험지를 기숙사나 집으로 가져가 마음대로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해 작성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 유일한 금지사항은 다른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답안을 베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하버드대학은 이 수업을 들은 259명 가운데 125명이 부정행위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명문 고등학교 르랜드에서 9명의 졸업반 학생들이 시험 부정행위로 적발됐다. 지난해 가을에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그레이트 넥과 로잘린 등의 지역에서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대학입학 자격시험(SAT)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다 잡혔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에릭 앤더만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수십년간 부정행위에 대해 조사한 결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략 85%의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든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미국 학교에서 부정행위가 늘고 있는 추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부정행위는 언제나 많았고 계속 많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극도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둔화로 “대학이 성공 잣대” 인식

미국 뉴욕의 생활문화 주간지인 '뉴욕 매거진'은 지난 9월24일자 커버스토리에서 미국 학교에서도 시험과 점수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이 부정행위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신흥국이 부상하면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기 둔화로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져 미국에서도 인생의 성공은 대학이 결정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 결과 배워 나가는 과정보다는 그 결과로써 점수를 잘 얻어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게다가 이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주 전체적으로 학력평가시험이 치러져 학교 등수가 인터넷에 공개되고 교사들의 성과급이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기반으로 결정되는 지역이 늘면서 교사들도 학생들의 점수에 점점 더 연연하고 있다. 지난 9월 초 시카고 공립학교 교사들이 수업을 팽개치고 파업에 나섰던 핵심 원인 중의 하나도 학생들의 점수를 성과에 반영하겠다는 시 교육당국의 방침 탓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캐롤 드웩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실력의 향상보다 점수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지적 능력에 대해 고정된 생각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학생들에겐 학교가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능력을 점수로 보여주는 곳이 된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앤더만 교수는 지난 2010년 연구 결과 시험이 점수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학문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면 시험 부정행위가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명문 학교 학생들은 특히 주위의 기대와 학교 명성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자신만큼이나 혹은 자신보다 더 똑똑한 수많은 학생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더욱 부정행위의 유혹에 취약하게 된다.

지난 7월 스타이브슨트에서 대규모 시험 부정행위가 발생한 직후 사임한 스탠리 테이텔 전 교장은 신입생들에게 항상 학점과 친구, 잠 가운데 2개만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명문 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도 한다.

하버드대학 교내 신문인 크림슨의 편집장인 줄리 조즈머는 '뉴욕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의회개론'에서 발생한 시험 부정행위와 관련, "(하버드대학에선) 이번 사건을 아무도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부정행위는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하버드대학이 이를 공개하는 방식에서 좀 특별했을 뿐 다른 점에서는 전혀 특이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여기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더 이상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지만 여기 입학한 것과 같은 위치에서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럴 수 없다고 느낄 때 부정행위를 저지르게 된다"고 해석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별 의식 없이 표절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인터넷을 통한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학생들이 부정행위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스타이브슨트를 졸업해 올해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대니얼 솔로몬은 "학교란 팀워크를 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며 "모든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협력해서 부정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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