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업계의 '너~무한' 창업지원 미끼

'주류대출'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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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자 대출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3년 동안 우리가 지정한 OO맥주 브랜드만 판매해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대출금의 25%를 위약금으로 내야 합니다. 점주님은 여기에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여느 금융권에서 흘러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생맥주 전문 호프주점을 오픈한 점주에게 주류도매상 영업사원이 권하는 '달콤한 유혹'이다.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절차가 까다롭고 개인 신용등급에 따라 최소 연 6~7% 이상의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에 비해 절차도 간단하고 더구나 무이자로 지원한다니 끌릴 수밖에 없다. 가능한 대출금액은 1000만원부터 수억원까지 점포 규모에 따라 다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점포 오픈 시 필수품목인 냉동고와 쇼케이스, 냉각기, 게이지, 헤드, 방출기 등도 대여해준다. 급전이 필요한 창업자에게는 마다하기 힘든 조건이다.
 
그러나 무이자 대출 지원금의 원천으로 지목받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는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두 회사는 마치 입을 맞춘 듯 "우리는 창업자에게 대출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며 관련 사안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좋은 제도가 있다면 홍보를 해도 부족한데 이를 전면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니위크>는 주류도매상(대리점)이 창업자에게 지원하는 주류대출 거래약정서를 입수해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봤다. 거래약정서는 주류도매상마다 용어와 거래조건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대동소이하다.

맥주업계의 '너~무한' 창업지원 미끼


◆무이자 대출의 '달콤한 유혹'

주류 거래약정서에 따르면 대출을 받은 점주의 경우 주류도매상이 지정한 주류회사 제품을 독점으로 판매해야 한다. 예컨대 생맥주 전문점의 점주가 하이트진로와 거래하는 주류도매상과 거래했을 경우에는 하이트 맥주 외에 타 주류회사의 물품을 받을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기면 대출 상환여부와 상관없이 대출총액 기준 25%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 1000만원을 대출 받고 600만원을 상환했다 하더라도 이중거래가 적발되면 위약금 250만원을 추가로 물어야 하는 셈이다.
 
대출상환기간은 통상 1~3년. 이 역시 점주를 옥죄는 편법영업의 하나로 꼽힌다. 예컨대 점주가 대출상환기간을 2년으로 정했을 경우 1년 만에 빌린 돈을 모두 상환했어도 타 주류회사와 이중거래가 불가능하다. 약정서에 대출상환기간을 2년으로 명시했기 때문에 이 기간 내에는 이중거래를 할 수 없도록 창업자의 발목을 묶는 것이다. 
 
기자재 및 지원 약정서 역시 편법이 난무했다. 맥주전문점을 창업할 경우 냉동고와 쇼케이스, 냉각기, 게이지, 헤드, 방출기, 맥주잔 등 다양한 물품을 주류도매상이 대여해준다. 대여기간은 통상 3년이며 처음에는 무상으로 지급해준다.
 
하지만 약정서에는 수량과 금액을 정확히 기재한다. 점주가 이중거래를 하거나 대리점이 지정한 맥주를 판매하지 않을 경우 대출상환은 물론 기자재 및 지원 약정서에 적힌 물품 금액까지 모두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만약 점주가 2년 만에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고 하더라도 기자재 및 지원물품에 적힌 금액을 지불하지 않으려면 3년 동안 타 주류를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 대출을 받은 점주에게는 사실상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연체이자는 평균 25% 수준이다. 한달 이상 연체될 경우 대출원금과 기자재 등 물품대금까지 일시에 모두 갚아야 한다. 폐업으로 사실상 가게 문을 닫았을 경우 주류도매상은 곧바로 대출금 회수를 위한 법적조치에 들어간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은 어떤 회사든지 경쟁회사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매상은 자금난, 주류회사는 안전장치
 
"제가 맡고 있는 가게를 보면 통상 폐업을 하거나 폐업 직전인 곳이 50% 정도입니다. 현재 대출을 해준 가게는 130여개 정도 되는데요, 이중 60곳 이상이 어려워요. 가게가 망하면 대출금 회수도 사실상 어렵죠. 그렇다고 영업을 안할 수도 없고…."
 
주류도매상에서 대출영업을 하고 있는 A씨의 말이다. 무이자 대출은 이를 제공하는 주류도매상 자체에도 불리한 지원시스템이다. 점포가 폐업하면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어서다. 이처럼 리스크를 안고 주류도매상이 무이자로 주점의 창업비를 빌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대출자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맥주 제조업체-도매상-주점'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을 이해해야 한다. 대표적인 주류업체는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다. 이들은 어음거래를 통해 도매상에 자금 유동성을 지원한다. 맥주 등 물품을 도매상에 지급한 후 어음 결제기간을 최대한 늦게 책정하는 것. 도매상이 주점망을 통해 맥주를 많이 판매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다.
 
도매상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류회사는 평균적으로 어음 결제일까지 1~2년 이상 유예기간을 둔다. 그 기간 동안 도매상들은 창업자에게 맥주를 판매해 현금을 확보한 후 다시 새로운 창업자에게 무이자 대출을 지원함으로써 도매상이 지정한 주류회사와 독점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움직인다.  
 
주류회사가 창업자에 대해 무이자 대출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창업자에게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는 주체는 도매상이라는 것. 또 그들의 영업방식은 우리와 상관없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관리하는 곳은 주류회사라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창업자가 3000만원의 자금을 요청할 경우 이를 승인해주는 곳은 도매상이 아닌 주류회사 담당직원"이라며 "주류회사 본사 직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대출심사를 한다. 담당직원이 대출지원을 승인하면 그때서야 도매상이 창업자에게 약정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도매상이 창업자에게 지원하는 대출방식도 여러가지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도매상이 보유한 현금을 지원하거나 은행권에서 융통한 자금을 스스로 이자를 물어가며 창업자에게 빌려주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생맥주 한통의 가격이 약 3만8000∼4만원이다. 주류회사는 한통을 판매할 때마다 약 30%의 마진을 챙긴다. 창업자에게 수천만원의 무이자 대출이 가능한 것도 생맥주통 판매로 충당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주류회사는 도매상을 통해 대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부실채권을 떠안을 염려가 없고 독점계약을 통해 맥주 생산량을 높일 수 있으므로 손해 보는 구조가 아니다. 리스크는 도매상이 안고 수익은 주류회사가 챙긴다고 보면 된다"고 꼬집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무이자 대출을 받는 창업자는 물품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방식으로 이자를 지불하는 셈이다.
 
◆두 회사간 과당경쟁이 만든 '이상한 거래'
 
그렇다면 무이자 대출을 받지 않은 창업자는 어떨까. 이들에게는 평균 생맥주 원가를 4~5%가량 할인해준다. 이외에도 주류회사 본사 직원이 나와 해당 점포에서 술을 마시고 계산하는 것처럼 영업지원비 명목 등으로 30만~40만원가량을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해준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4만원짜리 생맥주통을 5% 할인해준다고 가정해보자. 하루에 10개만 팔아도 한달에 수십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3년 약정으로 본다면 매달 지급되는 금액이 수천만원에 이른다"면서 "애초에 생맥주통 가격은 원가보다 크게 부풀려진 상태다. 충분히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주류회사는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따라서 대출을 받는 창업자는 물품을 원가 그대로 적용하고, 대출을 받지 않은 창업자에게는 별도로 할인해주는 형식으로 불공정거래의 굴레를 교묘히 피해간다"고 지적했다.
 
무이자 대출 지원 역시 불공정거래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주류회사는 물품 등으로 대출이자보다 높은 이익을 챙기고 있지만, 표면상으로는 무이자로 지원하고 있어 지자체 등에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대출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나 금융감독원에 대부업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이자로 지원하는 경우는 별다른 자격 없이도 영업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주류업계 관계자는 "무이자 지원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면서도 "이 제도는 창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창업자들도 만족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특히 최근 경기침체 등으로 폐업하는 창업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앞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주류도매상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한다.
 
손쉬운 대출 등으로 창업자들이 무리하게 창업을 하게 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1억원대의 자금으로 50㎡(15평) 규모의 생맥주 전문점을 창업한다고 가정할 경우 무이자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66㎡(20평)까지 확대해서 창업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류도매상 대출지원 영업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간 진흙탕 싸움에 창업자들의 부실채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면서 "지금은 과당경쟁을 축소해야 한다. 폐업하는 점포가 늘어나면서 주류도매상의 연쇄부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류도매상들이 편법 무이자 지원을 끊지 못하는 것은 두 회사 간의 공급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발생할 연쇄도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주류회사의 어음결제 장기유예제도를 축소하거나 자금지원을 까다롭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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