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할 '설국 속으로'

송세진의 On The Road/ 한라산 눈꽃 트래킹

 
  • 송세진|조회수 : 8,414|입력 : 2013.01.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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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로 소문난 산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계절에 오른다. 바로 한라산 눈꽃 트래킹이다. 제주 여행자들이라면 한라산 등반을 꼭 한번씩 시도하는데, 계절이 겨울이라면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정상 정복의 목표를 세울 필요도 없다. 가장 짧지만 감탄의 절경을 자랑하는 영실코스로 윗세오름까지만 올라가 보자. 평생 잊지 못할 풍광이 기억 속에 들어올 것이다.

◆편안하게 경험하는 한라산의 핵심

영실코스는 평소에 산행을 하지 않았던 여행자에게 딱 좋다. 시작점이 해발 1280m로 나머지 코스인 성판악, 관음사, 어리목 코스와 비교할 때 가장 높다. 그래서 윗세오름까지 산행 할 경우 3.7km만 오르면 된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서두르는 것에 비해 영실코스의 시작점에는 느지막이 산행을 시작하는 여행자가 많다.
게다가 이 코스는 풍광이 다채롭다. 조용한 숲길을 시작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영실기암, 관목이 우거진 능선과 멀리 보이는 제주 바다, 오름들….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보이는 비경은 어떤 액션 영화도 부럽지 않은 박진감과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눈이 내린 한라산이라면 어떨까. 이것은 상상 이상의 호사다. 물론 날씨가 중요하다. 가장 좋은 시기는 눈이 내린 다음날이다. 마침 날씨까지 맑다면 다른 스케줄을 포기하고서라도 산행을 결행해야 한다.

영실코스 입구에 도착하면 흰 눈을 배경으로 유난히 튀는 까만 새들이 보일 것이다. 제주에 한두번 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한라산에는 까마귀가 많다.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가장 먼저 친해져야 할 녀석들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자.

등산로 입구에 진입하면 소나무 사이로 걷는 기분이 다른 산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상쾌하고, 아직은 힘들지 않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물론 함박눈이 내렸다면 이미 눈 세상에 진입했다. 아무래도 시작점이 서귀포 쪽에 가깝다 보니 코스 시작 부근은 눈이 금세 녹아버린다. 그렇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곧 깜짝 놀랄 설경이 눈앞에 펼쳐질 테니….

이렇게 500m 정도 숨을 고르며 오르자. 가파른 길이 시작될 것이다. 조금 숨이 차오를지 모른다. 조금만 참자. 저 코너를 돌면 숨도 못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드디어 눈에 들어오는 영실기암. 제주특별자치도의 12경승지 중 하나인 이유를 알겠다. 오른편 앞 쪽은 보기에도 시원한 절벽바위다. 이른바 병풍바위. 이어서 뾰족하게 솟은 기암들이 절벽을 향해 도열해 있다. 오백나한 또는 오백장군이라 불리는 이 바위는 설문대할망 전설이 함께한다. 제주도 곳곳의 전설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에서 빠지면 섭섭한 일. 할망의 500명이나 되는 자식처럼 보인다고도, 그 모습이 나한의 모습처럼 보인다고도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멋진 풍광 앞에선 발을 멈추는 것이 예의다. 차오른 숨도 고를 겸 물 한모금 마시면서 기념사진도 찍고 아낌없는 감탄의 시간을 갖자.

다시 언덕을 오르려다 뒤를 돌아보면 또 한번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 서쪽 바다 방향으로 오름과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구름이 있으면 있는 대로 지평선과 수평선의 만남이 황홀하다. 이쯤 되면 너도나도 전화기를 들어 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소중한 사람을 찾게 마련이다.


평생 잊지 못할 '설국 속으로'
윗세오름

 
◆병풍바위-정상 환상의 트래킹

병풍바위 위까지 오르면 능선을 따라 완만한 경사가 계속되므로 크게 힘든 코스는 없다. 키가 작은 관목과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풀들은 눈으로 덮여 흔적만 남았다. ‘흰 눈이 온 세상을 덮는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하얀색 융단을 깐 한라산은 한낮의 빛을 받아 눈을 뜰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조금 걷다 보면 구상나무 지대가 눈꽃 터널을 만들어 등산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서있는 돌밭’이라는 뜻의 화산암 지대인 선작지왓은 눈에 묻혀 흔적을 잃은 지 오래다.

이어서 눈앞에 펼쳐지는 대 평원. 보통의 산에서 보기 힘든, 화산산에서나 가능한 놀라운 광경이다. 전방에 솟아 있는 것이 바로 윗세오름.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표식이다. 윗세오름을 향해 걸어가다 왼쪽으로 꺾어 전망대에 오르면 제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맑으면 뺨을 때리는 바람마저 기분이 좋아 오랫동안 서있게 될 수도 있겠다. 전망대를 내려와 아직은 얼지 않은 ‘노루샘’에서 약수를 마시는 것도 필수코스다. 차고 달고 맛있는 샘물을 이름 모를 여행자와 나누는 노루에게 감사하며, 시원하게 피로를 삼키자.

이제 다 왔다. 윗세오름의 또다른 재미는 대피소에서 먹는 사발면이다. 물이 귀하고 뒷처리에 각별히 신경써야 하는 청정 국립공원인 만큼 군것질 거리가 한정적인데, 뜨끈한 국물의 사발면이 최고 인기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라면 한그릇씩을 받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먹는다. 평소에 라면을 먹지 않는 사람도, 양이 적거나 많은 사람도, 식성이 유별난 사람도 이 한 그릇에 감사한다. 모두가 평등해 지는 순간이다. 냄새 때문인지 까마귀들은 쉴 새 없이 주위를 맴돌고, 이따금 어리목과 영실 코스 시작점의 버스 시간을 알려주는 산장지기의 목소리가 정겹다. 이제 산을 내려와야 할 시간, 산행의 나머지 반이 기다리고 있다.

◆평화로운 오름과 아름다운 숲 하산

하산길은 어리목 코스를 택해보자. 영실코스가 시시각각 다채로웠다면 어리목 코스는 크게 오름이 보이는 언덕과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로 나눌 수 있다. 평화롭게 마음이 정화되는 시간이다.

우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어리목 쪽으로 향하면 탁 트인 비탈이 이어진다. 크고 작은 오름과 멀리 제주 바다가 보이고, 그날그날 하늘의 상황에 따라 구름과 빛이 하늘 그림을 그린다.

특히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비경을 놓치지 말자. 위쪽으로는 백록담을 비롯, 붉은오름, 누운오름, 장구목오름, 민대가리 동산 등이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어승생오름, 붉은오름, 노꼬메오름, 노루오름 등 십여개의 오름이 바다를 향해 펼쳐져 있다. 이렇게 많은 오름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비양도와 서북쪽 바다의 수평선까지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만세동산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숲길이 시작된다. 어리목코스가 북쪽을 향해 있는 만큼 눈꽃의 상태가 영실쪽보다 풍성하다. 여기서부터 눈의 숲이 시작된다. 코스 입구까지 촘촘히 자리잡은 소나무 군락에 어김없이 크고 풍성한 눈꽃이 피었고, 계단이었던 등산로는 그저 눈에 덮인 비탈길이다. 눈에 취해 정신을 놓으면 안된다. 모든 산행길에서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사고율이 높은 법이다. 그렇게 종종 걸음으로 숲을 빠져나오면 구름다리를 만나게 된다. 아쉽지만 산행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쉬운 코스라지만 그래도 산행은 산행이다. 어쩌면 감탄과 감동의 하루를 보내느라 피로감이 더 빨리 몰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 그리고 이 에너지를 간직한 채 일상으로 돌아가자. 또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여행정보]

<한라산 가는 길>

비행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부산에어, 티웨이 등 다양한 가격대의 항공권이 있으니 일정과 예산에 맞춰 구입한다. 항공권은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니 각 항공사 사이트를 적극 활용하자.


차량, 스쿠터, 자전거 등을 가지고 가는 여행자들과 학생들이 이용하는 방법으로 인천, 장흥, 목포 등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다양하다. 단, 최근에는 저가항공과 렌터카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 단기 여행의 경우 비행기와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리할 수 있으니 잘 비교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제주의 제철음식과 별미 >

1. 방어회 : 제주 하면 ‘회’를 떠올리는데, 그 중에서도 겨울 제주라면 ‘방어회’가 정답이다. 지방이 풍부한 방어 살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데, 싱싱한 겨울 방어는 식감이 단단하면서도 아삭한 느낌까지 있다. 부위별로 개성이 뚜렷한 방어회와 함께 뼈구이, 머리탕 등 방어로 누릴 수 있는 모든 별미를 맛보자.
마라도 횟집 : 064-746-2286 제주시 연동 262-10 / 방어회 한접시 3만원, 뼈구이 1만원, 머리탕 1만~1만5000원.

2. 근고기 : 제주 하면 흑돼지인데, 돼지고기를 제주식으로 즐기는 방법은 근고기 구이를 먹는 것이다. 근고기는 주로 1인분에 300g으로 목살과 삼겹살을 기본으로 그날그날 식당의 사정에 따라 특수 부위를 포함한다.
돈사촌 : 064-722-9285 제주시 삼도2동 835 / 근고기 1인분(300g) 1만4000원, 김치찌개 5000원.

3. 해장국 : 흑돼지가 유명하다보니 그 부속물에 해당하는 선지 해장국도 제주의 별미 중 하나이다. 진하게 우려낸 돼지뼈 국물에 콩나물과 시래기, 선지와 고기를 아낌없이 넣어 한그릇이면 하루가 든든하다.
양대곱 : 064-724-0792 제주시 이도2동 1176-114 / 해장국 6000원, 내장탕 7000원, 곰탕 8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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