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아이도 '공동체 맞손'

'작지만 강한' 협동조합의 모든 것/[르포]용산 공동육아 부모협동조합

 
  • 이정흔|조회수 : 5,849|입력 : 2013.02.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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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한 도심 속 주택가 골목길. 한 가정집에서 빼꼼히 문을 열고 나온 열댓명의 아이들이 나란히 줄지어 산책에 나선다. 동네 공원에 도착해 저마다 삼삼오오 흙장난을 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이 아이들은 용산구 원효로에 위치한 어린이집 '동글동글'의 식구들. 이곳은 유치원이라기보다는 용산구의 학부모들이 공동육아를 위해 모인 부모협동조합이다.
 
◆"육아고민? 혼자서 못하면 모여서 해결합시다!"

돌이 채 안된 갓난아이부터 7~8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개구쟁이들까지 현재 20명 안팎 아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동글동글 어린이집의 시작은 지난 2003년부터다. 마음이 맞는 4명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함께 키워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공동육아가 일반 어린이집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자본을 출자하고 유치원을 설립한 사장이 교사 채용과 유치원 관리 등 경영전반을 책임지는 일반 유치원과 달리, 공동육아는 학부모들이 바로 이 유치원의 '주인'이다. 아이들을 보살필 공간을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교사 채용, 유치원시설 관리까지 모두 학부모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6명의 이사진으로 선출되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유치원 경영을 이끌어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만, 이사진이라고 특별히 수고비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곳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도 일반 유치원에 비해 까다로운 편이다. 우선 동글동글의 조합원이 되려면 500만원의 출자금을 내야 한다. 출자금은 아이들이 졸업할 때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5~7년 동안 투자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밖에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월 조합비를 부담해야 한다. 조합비는 공동육아 어린이집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20만~50만원대다. 이곳 동글동글은 20만원대의 조합비를 부담한다.

부모들의 역할은 이것 외에도 또 있다. 유치원 운영을 위해 필요한 청소며, 시설관리 등도 모두 부모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 하다못해 유치원 수도관이 동파했다면 이를 수리하는 것 역시 조합원 부모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매달 유치원 경영을 위한 정기회의에 참석하는 것부터 그때그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소집되는 회의까지, 학부모가 늘 유치원의 일에 발벗고 뛰어들 수 있을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이 굳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공동육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07년부터 올해로 6년째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이숙희씨는 "당시만 해도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렇듯 육아에 관한 내 고민을 함께 해결해보자는 마음이었다"며 "유치원의 짜여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좀 더 자유롭고 아이답게 놀 수 있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곳의 육아프로그램은 일반 유치원과는 다른 구석이 많다. 아이들은 매일 오전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동네 나들이를 즐기고 오후 자유놀이 시간에는 색종이를 접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놀이에 열중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윤은미 교사는 "여기는 첫 출발부터 아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노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아이들을 보살펴 줄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학습 때문에 걱정하는 엄마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동네 나들이를 즐길 때 가게 간판들을 읽으며 한글을 익히는 등 자연스러운 학습효과가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도 아이도 '공동체 맞손'
사진_류승희 기자
 
부모도 아이도 '공동체 맞손'
사진_류승희 기자

◆"공동체가 알아서? 고생 각오하고 오세요!"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최근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공동육아를 위해 부모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부모들은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2010년부터 3년째 이곳에 아이를 맡기고 있는 이길원씨는 "공동체에 마냥 기대를 갖고 참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든 것도 많고,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다"고 운을 뗀다. 당장 20여명의 학부모가 모두 유치원의 주인인 만큼 이 수많은 주인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을 내리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최근에도 지난 한해 유치원 결산을 마치고 보니 적자가 발생해 책임 공방을 놓고 조합원들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의 매일 조합원들끼리 만나 얘기를 나누며 오해를 풀어갔다고 한다. 이씨는 "특히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자본주의 경쟁체제에 바로 편입됐기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없다"며 "여러 사람이 의견을 조율하고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당연히 싸움도 많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말한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이숙희씨도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갈등을 싫어하고 피하는 성격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갈등이 싫다"며 "그런데 이곳에 참여하면서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조합원들끼리 의견 충돌이 있거나 오해가 생기면 힘들긴 하지만 도망 다니지는 않는다"고 말을 거든다. 부딪쳐서 끝까지 얘기하고 풀려고 노력하면 결국엔 어떤 갈등도 풀리게 되더라는 얘기다.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꾸려가는 협동조합 공동체에서 갈등은 숙명인데, 이를 견디지 못해 중간에 이탈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은데 대한 현실적인 조언이다.

그럼에도 부모들이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길원씨는 "내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 곳에 내가 직접 관여해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 힘든 만큼 재미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본인의 의견이 모두 다 받아들여지고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건 상당한 착각이다. 그러나 적어도 본인이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의견을 내고, 그것들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정부분 역할을 하는 과정 자체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크다는 설명이다.

윤은미 교사는 "부모들의 참여가 많은 만큼 수고스러울 수도 있지만 자주 만나다보면 친해지고 관계가 끈끈해진다"며 "특히 요즘 아빠들은 동네 친구를 사귀기가 힘든데 유치원시설을 고칠 때 함께 일하고 술 한잔 하다보면 금방 친구가 된다"고 말한다. 비슷한 문제를 함께 고민할 친구를 얻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라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직접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부대끼고 갈등이 많은 것인지 너무 잘 알지만,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공동체를 통하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이숙희씨는 "지금도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방과 후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는 엄마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드는 걸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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