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판매 주유소 '0'이 고객 탓?

'그림의 떡' 주유소 석유혼합판매

 
  • 박성필|조회수 : 4,007|입력 : 2013.03.22 10:19
 
기사공유
  • 카카오톡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네이버 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공유
  • url 공유
주유소는 정유사 눈치보기… 정유사 "특정 브랜드 선호 고객 많아"
 
#1. 서울 역삼동에 있는 A주유소는 수년째 같은 정유사와 전량구매계약을 이어오고 있다. 이 주유소는 상대적으로 공급가격이 저렴한 타사 석유제품을 함께 취급하고 싶지만 이미 전량구매계약을 맺은 상태라 불가능하다.

#2. 서울 녹번동의 B주유소는 타 정유사의 석유제품을 취급하면 계약을 맺은 정유사의 지원이 중단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 석유혼합판매는 가슴에 담아두고만 있는 입장이다.

석유혼합판매를 통해 차익을 높이고 싶은 주유소들의 속이 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과 협의를 갖고 석유혼합판매를 허용키로 했지만 실상 이를 시행하고 있는 주유소는 '0'에 가깝다. 일부 주유소의 음성적인 혼합판매만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최근 지식경제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공식적으로 석유혼합판매 계약변경을 한 주유소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정유사의 폴(상표)을 걸고 있는 상태에서도 타사 또는 수입 석유제품을 혼합해서 판매할 수 있지만 주유소들은 이미 맺어진 전량구매계약으로 인해 눈치만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_뉴스1 박정호 기자
사진_뉴스1 박정호 기자

◆주유소 "정유사 눈치 보며 속앓이"
 
공식적으로 석유혼합판매가 가능해진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주유소들은 정유사와의 '암묵적인 전량구매계약 관행'으로 속만 앓고 있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초 정유사와 주유소의 전량구매계약 비율은 96%에 달했다. 정유사와 주유소간 구매계약 자동연장 관행이 주된 원인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구매계약 자동연장을 금지시켰지만 이 관행은 현재까지도 암묵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유소들은 혼합판매를 통한 차익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유소는 혼합판매를 통해 휘발유 1리터당 약 50원에서 100원까지 차익을 남길 수 있다.

현재 대다수의 주유소들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누군가 먼저 혼합판매에 나서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각 정유사의 영업사원을 통해 암묵적으로 맺어지고 있는 전량구매계약은 주유소들에게 여전히 족쇄로 인식되고 있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관행에 끌려가는 전량구매 자동연장 계약뿐만 아니라 영업사원이 일방적으로 석유 공급가를 통보하는 거래방식은 정유사와 주유소의 상하 서열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석유혼합판매는 주유소 입장에서 볼 때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정유사들은 전량구매계약을 하는 주유소에게 보너스카드, 제휴카드, 자금 및 시설 등을 지원해주면서 자사 제품만 구매토록 하고 있다"며 "전량구매계약을 한 상태에서 타 정유사 석유제품을 혼합판매하면 정유사는 계약해지나 폴 및 보너스시스템 철거, 심지어는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등 불이익을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 정유사 "브랜드 따지는 고객이 원인"
 
정유사들은 주유소들의 속앓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정부와 협의를 거쳐 석유혼합판매를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고, 주유소들이 암묵적인 관행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전량구매계약을 맺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정유사들은 주유소들이 석유혼합판매를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소비자 인식'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브랜드 석유제품이 아닌 혼합제품을 판매하게 되면 소비자의 신뢰감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 게다가 혼합된 석유를 판매할 경우 의무적으로 해당사실을 표시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고객을 잃을까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고객들은 브랜드 밸류를 중요하게 여겨서 주유소들이 혼합된 석유 판매에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의 입장도 비슷하다. 전량구매는 정유사와 주유소의 사적 거래계약이고, 이는 제휴카드 및 시설지원 등 상호 필요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일방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혼합된 석유 문제로 인해 차량사고가 발생했다면 보상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유소들이 혼합판매 결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혼합판매를 하기 위해서는 관련 탱크를 따로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자금여건이 좋지 않은 주유소의 경우 시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혼합석유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브랜드에 치중돼 있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석유혼합판매를 위한 시설 구축에 있어서도 정유사들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경부 "혼합판매 활성화 유도"
 
지식경제부는 석유혼합판매가 허용됐음에도 최근 6개월 동안 별 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자 구매계약 방식을 혼합판매로 바꾼 주유소를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경부는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부분을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혼합판매를 허용했다. 음성 혼합판매를 수면 밖으로 끌어올려 독과점을 형성 중인 정유사 중심의 석유유통시장을 개선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주유소들의 정유사 눈치 보기로 인해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지지 않자 최근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지경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올 상반기 안에 혼합판매 변경 주유소를 한곳이라도 만드는 것이 현재 목표"라며 "이를 위해 주유소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을 조심스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주유소업계는 인센티브 부여 제도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모습이다. 인센티브 수준이 높다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점에만 공감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인센티브 부여나 정유사들과의 구매계약 조건완화가 주유소들의 바람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경부는 계약변경 주유소 대상 인센티브 부여와 동시에 혼합판매 표시 의무화에 있어서도 조건완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석유혼합판매란?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달고 타사 또는 수입 석유제품을 혼합해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지난해 9월부터 계약이 만료되는 무채권 주유소는 혼합판매계약으로 변경할 수 있다. 혼합판매를 시행하는 주유소는 외부 1곳(폴사인 기둥 또는 가격표시판) 및 내부 1곳(캐노피 기둥 중 1곳)에 그 사실을 표시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0%
  • 0%
  • 코스피 : 3253.47상승 1.3412:02 06/15
  • 코스닥 : 995.74하락 1.6712:02 06/15
  • 원달러 : 1118.10상승 1.412:02 06/15
  • 두바이유 : 72.86상승 0.1712:02 06/15
  • 금 : 72.01상승 0.8312:02 06/15
  • [머니S포토] 백신접종 앞서 시민과 인사 나누는 국힘 '이준석'
  • [머니S포토] 윤호중 "대체공휴일법 6월 신속 처리…사라진 빨간날 돌려드릴 것"
  • [머니S포토]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입장하는 '김기현'
  • [머니S포토] "잘생겼다" 김우빈, '부끄러워 하며 손하트 발사'
  • [머니S포토] 백신접종 앞서 시민과 인사 나누는 국힘 '이준석'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