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헷갈리는 기업들

시대 흐름 따라 '회사 간판'과 달리 주력 사업 변천

 
  • 이건희|조회수 : 19,699|입력 : 2013.05.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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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헷갈리는 기업들

이름만 보면 본질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상품들이 있다. 예컨대 붕어빵, 바나나빵, 눈깔사탕, 빈대떡 등이 그렇다. 시내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아닌 저렴한 주거비로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거주한다.


 
주식시장에서 주식 거래가 이뤄지는 종목 중에도 이름만으로는 본질이 헷갈리는 기업들이 있다. 과거에 주력하던 사업의 비중이 낮아지고 다른 사업에서 훨씬 더 많은 매출액이 발생하며, 이익 또한 회사 이름과는 무관한 사업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경우가 그렇다. 또한 본 기업의 주력 업종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는 종속기업에서 올리는 이익이 훨씬 더 많은 회사도 그렇다.

◆케미컬·전자재료에 주력하는 제일모직


 
제일모직은 회사 이름과는 달리 모직사업 비중이 불과 1%대로 매우 낮다. 1954년 9월에 설립된 제일모직은 1952년 1월에 설립된 삼성물산(전신은 일제 강점기인 1938년에 설립된 삼성상회), 1953년 8월에 설립된 제일제당과 함께 삼성그룹이 설립한 초기 회사에 속한다.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기본적인 '의식주'였다.


 
따라서 먹는 것의 기본제품을 생산하는 '제일제당'과 입는 것의 기본소재를 생산하는 '제일모직'이 삼성그룹의 모태가 됐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이미 만들어진 기성복이 아니라 직접 옷감을 선택하고 구입해 옷을 만들어 입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의 체형을 측정해 옷을 만들어주는 양복점은 1980년대까지도 시내에 상당히 많았다. 실력 있는 양복재단사는 양복점을 자영업으로 운영해 돈을 잘 벌었다. 결혼하는 사람들은 혼수감으로 좋은 재질의 옷감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양의 털(wool)로 만든 따스한 소재인 모직은 추위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지금은 의류의 가장 큰 비중이 국내에서 제조되는 화학섬유로 만든 옷이지만, 제일모직이 설립됐을 때는 화학섬유를 제조하는 섬유산업이 국내에 없었다. 반면 모직으로 만든 양복 한벌 값이 월급쟁이 봉급의 석달치를 넘었기에 상품기획력에 염가공 기술이 요구되는 모직사업은 고수익사업이 됐다.


 
모직의 80%가 수입되던 시절, 제일모직은 국내에 대규모 공장을 세워 많은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골든텍스'는 대표적인 고급신사복지의 브랜드가 됐다. 또한 패션사업에도 진출해 '갤럭시'를 정통신사복으로, 'KUHO'를 여성복으로, '빈폴'을 캐주얼 브랜드로 키웠다. 제일모직은 대학교 졸업생들의 최고 인기직장이기도 했다.


 
모직물산업은 몇개 업체가 경쟁하면서 1990년대 초반까지 성장을 이어왔지만 인건비가 상승하고 원화 절상으로 수입복지가 늘어나면서 수익성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제일모직과 마찬가지로 상장회사였던 경남모직 역시 한때 돈을 잘 벌었지만 사업환경의 변화로 경영이 어려워져 1998년 7월 회사정리절차 개시가 결정된 바 있다.


 
삼영모방도 영업이 악화된 후 적자를 이어갔는데 우량 부동산 매각으로 재무상태를 양호하게 유지하다가 모직물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지금은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및 판매, 부동산 임대를 통해 소폭 매출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제일모직은 새로운 사업으로써 1989년 ABS, PS 공장을 여수에 준공하면서 합성수지사업에 진출했고 케미컬사업 부문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갔다. 컴퓨터·TV·냉장고 등 가전,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합성수지와 건축내장재사업을 하는 케미컬부문의 비중이 전체 매출규모의 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됐다.


 
또한 1994년에는 EMC(반도체봉지재)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자재료사업에도 진출했다. 꾸준한 R&D 투자를 통해 편광필름, CMP SLURRY, 확산판, PASTE, CR, ACF등의 신규소재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전자재료사업 분야를 넓혀갔다.

제일모직의 차세대 유망 고수익원으로는 전자재료가 첫손에 꼽힌다. OLED 소재 사업으로, 제일모직에서 생산하는 ETL은 갤럭시S4에 독점 공급될 예정이다. OLED가 지금은 휴대폰에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태블릿 PC와 TV에까지 확대되면 디스플레이 면적에 비례해 소재의 사용량이 늘어나므로 성장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 이후 각 사업부문 매출액이 총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변화해왔다. 케미컬부문의 비중은 40%대에서 큰 변동 없이 유지돼왔고, 패션사업은 주요사업 분야로 건재하지만 비중은 다소 줄어든 모습이다.


 
반면 신규 전자재료사업은 90년대 후반부의 태동기를 거쳐서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성장해 지금은 비중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패션부문을 넘어서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일모직 기업의 원조사업인 모직물부문의 비중은 90년대 후반 이후 급격히 축소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특히 더 감소해 지금은 1%대에 불과하다. 제일모직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도 모직물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제일모직은 모직사업의 비율이 매우 낮고 케미컬과 전자재료가 주력업종으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까지도 '모직'이 들어가는 원래 회사명을 유지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본질이 헷갈리는 기업들

◆가구보다 식품업 기여도 높은 한국가구


 
코스닥시장의 '한국가구'는 이름 그대로 가구회사다. 가정용 가구를 비롯해 사무용 가구, 호텔 고급가구 등 주문형 가구를 국내에서 제조하고 수입해 판매한다.


 
매출액의 거의 100%가 가구에서 발생한다. 품목별 매출액 비중은 소파류 33.0%, 식당용 가구 14.8%, 거실가구 12.2%, 침실가구 11.0% 등이다. 하지만 한국가구에서 지분을 100% 보유한 종속회사 제원인터내쇼날은 가구와는 전혀 무관한 식품도소매사업을 하는데, 모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매출액이 발생하고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모기업보다 훨씬 더 많다.


 
회사 전체적으로는 가구사업을 능가하는 영업성과를 올리는 식품관련 사업이 회사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가구는 자사가 보유 중이던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의 부동산이 마곡 도시개발사업지구에 포함돼 서울시 SH공사에 수용처리되면서 2009년 259억4300만원의 대규모 이익이 발생했다. 그 돈으로 2010년 신규사업에 진출했다. 자본금 15억원에 비해 막대한 현금을,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식품관련업체 주식 160만주를 전량 인수해 기존 가구사업의 저수익성과 저성장성을 극복하는 데 적절히 사용한 셈이다.


 
제원인터내쇼날의 2012년 매출액은 287억2000만원으로, 모기업 한국가구 매출액 105억7000만원의 2.7배에 달한다. 당기순이익은 37억3000만원으로 한국가구 순이익(13억2000만원)의 2.8배나 된다. 모기업의 매출액과 순이익보다, 모기업이 전량 지분을 소유한 종속기업의 매출액과 순이익이 훨씬 더 많은 덕에 청출어람이 된 경우라 하겠다. 성공적으로 사업다각화가 이뤄진 것이다.


 
한국가구는 자본총계가 595억9000만원인 반면, 시가총액은 198억원(4월29일 기준)에 불과해 PBR이 0.33인 저PBR주인데, 종속기업의 순이익까지 감안하면 저PER주도 된다.
 
한국가구는 2010년 10월7일 30억원 규모의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한 바 있으며, 전환청구 종료일은 올해 9월7일이다. 전환가액이 3만5000원이므로 현 주가수준에서는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돼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없다.


 
제원인터내쇼날은 제과·제빵 부문과 연관되는 사업 분야에서 국내소비 경기의 위축과는 무관하게 성장하고 있다. 제과·제빵의 원료가 되는 초콜릿류, 과실류, 당류, 유제품, 첨가물 등 고급원료를 유럽의 프랑스, 독일, 벨기에 및 미국 등의 유명 제조업체로부터 독점 수입해 국내 도매상과 제과점을 비롯한 호텔·레스토랑·카페 등에 공급한다. 현재 국내에 프랜차이즈 제과점수는 5000여개에 달하며 베이커리시장 규모는 1조4000억원대로 추산된다.


 
밥보다는 빵을 먹는 사람이 늘어나는 등 제빵 시장이 커지고 있으므로 앞으로 회사의 성장성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광객의 증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호텔산업에 연계되는 부문에서 특히 매출 성장세가 뚜렷하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수는 올 들어 크게 늘어나 1분기에 지난해 동기보다 71%나 증가했다.


 
커피를 비롯한 외식부문에도 시장 개척에 나서 신규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커피시장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확대돼 연간 2조원에 달하는데 제원인터내쇼날에서는 치밀한 시장분석을 통해 개발하고 연구한 다양한 커피관련 재료들을 지난해 말부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이 부문에서 본격적인 성과가 나타난다면 성장세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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