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생 마감한 예인들

<자본과 손잡은 예술, 그리고 컬렉터>⑯/ 고흐·로드코·바스키아·해링, 그리고 나혜석

 
  • 김지희|조회수 : 2,992|입력 : 2013.07.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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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머니투데이DB)
빈센트 반 고흐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머니투데이DB)

미술사에는 유독 비극적인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화가들이 있다. 알아주는 이가 없이 곤궁한 화가의 길을 걷다가 우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술에 의지하다 지병으로 사망하거나, 외로움이 극대화된 정신착란으로 다른 세상을 헤매다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와 명예를 감당하지 못하고 돈과 마약에 취해 씁쓸한 죽음을 맞이한 아티스트도 존재한다. 화가에게 급격히 찾아온 돈과 명예는 양날의 칼처럼 예술가를 타락시키기도 한다.
 
감정의 촉수가 예민한 만큼 비슷한 생의 경험도 몇배는 육중한 무게로 다가왔을 예인의 삶.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역사 속 예술가들의 궤적은 '작품'이라는 이들의 결정체에 더욱 깊은 의미를 담는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화가인 고흐는 생전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을 정도로 곤궁했다. 팔리지 않는 그림이 쌓여만 갔고, 고흐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이는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던 동생 테오가 유일했다.
 
한때 이름 모를 남자의 아이를 뱃속에 품은 거리의 여자, 시엥을 만나 사랑을 하기도 했지만 시엥마저 대부분의 생활비를 물감 값에 쓰던 가난한 화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며 짧았던 만남은 파국을 맞았다.
 
1888년 프랑스 아를로 이주한 후 화가 고갱과 교우하면서부터는 크고 작은 견해의 차이로 대치하기 일쑤였다. 결국 고갱도 고흐를 떠나게 되고, 어떠한 광기가 고흐를 휘감아서인지 고흐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말았다. 정신병원에 의지하게 된 고흐는 37세의 이른 나이에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서러웠던 삶을 마감했다.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마크 로드코 역시 곤궁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예일대를 중퇴하고 뉴욕의 의류공장에서 잠깐 일하다가 6개월 정도 그림을 배우기도 했지만, 로드코는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은 미술인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는 색과 면만으로 이뤄진 화면으로 대자연의 숨결을 응축해 나갔고, 곧 추상표현주의의 필적할 만한 작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른 후 자본에 휘둘리게 된 예술은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옥죄어왔고, 결국 깊은 우울증을 앓게 했다. 깊어지는 고독을 이기지 못한 로드코는 면도날로 양팔의 동맥을 자르는 자살을 선택하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의 또 다른 이면 자본과 명예

거리의 낙서를 갤러리로 끌고 들어오며 백인 중심의 미술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장 미쉘 바스키아는 '검은 피카소'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이견이 없는 미국의 스타작가였다. 가난한 골목을 벗어나 갑작스럽게 입혀진 휘황한 명예의 옷은 어린 화가에게는 버겁기도 했을 것이다.
 
이미 20대에 휘트니 비엔날레나 카셀 도큐멘타와 같은 걸출한 전시에 등장하며 앤디 워홀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가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바스키아는 갑작스러운 부와 명예에 물든 황폐한 마음을 코카인에 의지하곤 했다. 막역했던 워홀도 세상을 떠나고 더욱 깊어진 외로움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어느날, 바스키아는 고작 스물여덟 해를 살고 코카인 중독으로 요절했다.
 
키스 해링 역시 미국의 대표적인 스타작가로, 간결한 낙서를 통해 사랑받은 아티스트다. 키스 해링은 낙서와 그래피티 같은 거리의 문화에 심취했고, 공공장소에 특유의 감각적인 낙서화를 그리며 점차 이름을 알렸다.
 
출근길 지하철역, 골목 등 친숙한 일상에 스며든 그림으로 대중과 진정한 소통을 모색했던 키스 해링은 개인전 이후 더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작품을 알리게 됐다. 그러나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에이즈 합병증으로 서른 한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마치 뾰족한 펜으로 그려낸 듯 날카로운 선으로 암울한 도시의 풍경을 담아낸 화가 베르나르 뷔페는 독특한 화풍으로 어린 나이에 데뷔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약관 20세에 가장 권위 있는 프랑스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전례없는 스타작가로 비상했지만, 앞다퉈 뷔페의 작품을 사들인 컬렉터와 화상으로 인해 '명성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비극으로 생 마감한 예인들

보수적이었던 시절 뷔페에게 찾아온 국제적인 인기는 뷔페를 상업작가로 전락시켰고, 돈의 달콤하면서 씁쓸한 뒷면은 화가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결국 끊임없는 화단의 혹평을 받으며 무명시절 없이 상업성에 성공했던 작가는 향년 71세에 돈과 결탁한 작가라는 오명을 씻지 못한 채 자살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 깊었던 우리나라 근대에는 화가 나혜석이 있었다. 상류층에서 태어나 예술적 기질과 함께 뛰어난 글솜씨까지 지닌 완벽한 여성이었던 나혜석은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일본에서 유학한 서양화가였다.
 
그러나 자유분방했던 그녀의 성향은 시대적 잣대로는 허락되지 않는 상황으로 그녀를 몰고 갔다. 나혜석은 외교관이었던 남편과 결혼한 후 세계여행을 떠났는데, 여행에서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사랑을 하며 이혼이 희귀했던 시절 이혼 청구를 당하게 된다.
 
정조가 미덕이었던 나라에서 부정을 저지른 여자라는 딱지를 붙이게 된 나혜석에게 이미 정상적인 작품의 평가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외면과 비난,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리던 나혜석은 53세의 나이로 가난과 병에 시달리는 행려병자가 돼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됐다.
 
가난과 멸시, 외로움이 화가의 삶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지만 넘치는 자본과 명예 역시 화가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한 것은 아이러니한 역사의 진실이다.

☞ 프로필

비극으로 생 마감한 예인들
마이애미·뉴욕·퀼른·워싱턴·런던·도쿄·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00여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2011년 청작미술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한정판 라인 출시, 소녀시대 의상 콜라보레이션 등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 관객과 만났다. 주요 저서로는 <스물아홉 김지희, 그림처럼 사는>, <스물아홉 김지희, 삶처럼 그린>(2012)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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