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울리는 세법 개정안

커버스토리/ 흔들리는 박근혜표 서민경제 - “장사꾼 등골 빼먹겠다는 것”

 
  • 심상목|조회수 : 10,054|입력 : 2013.10.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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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울리는 세법 개정안

농·수산물 의제매입 세액공제 한도설정에 자영업자 큰 반발
 
"자영업자들의 등골을 빼먹겠다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요즘에는 돈 1만원짜리 밥값도 카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아요. 매출을 줄여서 신고하기도 힘든 세상이 됐죠. 체크카드 사용이 늘면서 '현금장사'라는 말은 옛말이 됐어요."

지난 9월25일 농·축산물 의제매입 세액공제 한도 설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서울 중구 무교동에서 된장찌개집을 운영하는 한 업주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 추진하고 있는 2014년도 세법 개정안이 또 다시 좌초 위기에 놓였다. 당초에는 직장인의 '유리지갑을 털어간다'는 논란에 휩싸이더니 이번에는 자영업자들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이번 세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액공제 혜택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구입하는 농·수산물에 대해 한도없이 의제매입 세액공제 혜택을 줬지만 이번에 한도가 새롭게 설정됐다.

이에 자영업자들의 모임인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과 외식업중앙회 등의 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관련업계 일각에서는 의제매입 세액공제 한도설정이 축소되거나 물 건너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자영업자 울리는 세법 개정안

◆"과도 공제 방지"…의제매입 공제한도 설정

정부는 지난 8월8일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부가가치세 세입기반'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농·수산물 의제매입 세액공제에 한도를 설정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농·수산물에 대한 의제매입 세액공제는 한도 없이 혜택이 제공됐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매출액의 30%에 해당하는 농·수산물 매입액까지만 이를 허용할 예정이다.

'매출액 30%'라는 한도가 설정되면서 자영업자들은 지금까지 내지 않았던 부가가치세를 더 내야하는 상황에 빠졌다. 현행대로라면 매출액이 5000만원인 식당업주가 의제매입액을 55% 적용하면 2750만원이라는 의제매입세액이 발생한다. 여기에 공제율 8/108을 적용하면 총 203만7037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안대로 한도 30%를 적용하면 의제매입액은 1500만원이 된다. 여기에 공제율 8/100을 적용하면 111만1111원의 혜택만 받을 수 있다. 즉 매출액 5000만원의 식당 운영업자는 의제매입 세액공제 한도설정으로 과거에 비해 연간 92만6000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위 예시처럼 세법 개정안은 자영업자들에게 세금폭탄을 안겨주는 셈이다. 자영업자들의 반대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가 농·수산물 의제매입 세액에 공제한도를 설정한 것은 자영업자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매입하지 않은 농·수산물을 구입한 것처럼 꾸며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연매출의 90%를 농·수산물 구입에 사용한다고 신고하는 업소도 있다"며 "가게 규모가 크면 클수록 세금이 더 많이 빠져나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실제 의제매입 세액공제 신청금액이 연간 매출액의 90%나 100%를 초과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외식연감에서 국내 외식업체의 업종별 식재료 구매실태 자료를 보면 의제매입 세액공제를 신청한 자영업자 중 매출액의 40% 이상으로 신고한 비율은 22.0%에 불과했다. 골목상권소비자연맹 관계자는 "터무니 없이 높게 의제매입 세액공제를 신청하는 자영업자의 수는 극히 미미하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또 의제매입 세액공제 신청을 90%, 혹은 100% 초과 신청하는 경우에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말한다. 연맹은 "이러한 경우는 식자재를 대량구매할 때뿐이다"며 "농·수산물의 가격폭등에 대비하기 위해 양파, 꽃게 등 제철 식재료를 저장용으로 대량 구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도설정은 폭탄으로 돌아올 것"

자영업자들이 의제매입 세액공제에 한도를 설정하면 세금폭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농산물이나 수산물이 영업을 위한 '주재료'이기 때문이다.

고기집이나 횟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업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재료는 축산물이나 수산물, 야채다.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고추냉이 등의 공산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은 의제매입 세액공제 한도를 설정하면 자영업자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음식가격 상승 등의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농산물 구입이 많아져 결국 농민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맹 관계자는 "의제매입 세액공제라는 인센티브가 사라지면 외식사업자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외식산업의 침체는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한 반발에 시행 쉽지 않을 듯

이처럼 의제매입 세액공제 한도설정에 대해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매우 심한 상황이어서 시행 여부에는 물음표가 따르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부근에서 지난 9월13일 3000여명(주최측 추산)이 모여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진 자영업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과거 약속을 지키라며 압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1년 10월18일 '범 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 현장을 찾아 "의제매입 세액공제 문제는 일몰과 연장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영구 법제화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연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과거 국회의원 시절의 발언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연맹은 또 야당인 민주당 측에 의제매입 세액공제 한도설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요지의 정책건의서를 전달했다. 이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골목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의제매입 세액공제를 대폭 축소해 영세자영업자에게 사실상의 증세 폭탄을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박근혜 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며 "부자와 재벌대기업에게는 세제혜택을 끊임없이 부여하고 영세자영업자에게는 세금을 늘려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의제매입공제 한도설정에 대해 자영업자가 강하게 반발하자 기획재정부는 관련 협회에 한도를 올리는 등의 중재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정부의 당초 계획안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행여부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께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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