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판 잡스'를 기다릴까

커버스토리/ '창조' 사람이 답이다 - 창조경제, 왜 사람인가

 
  • 김수연|조회수 : 10,925|입력 : 2013.10.2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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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이젠 고인이 되었지만 미국 애플社의 창업자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출시하며 IT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사진=머니투데이 DB)
Steve Jobs. 이젠 고인이 되었지만 미국 애플社의 창업자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출시하며 IT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사진=머니투데이 DB)

혁신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실마리… '창조인재상' 잘 그려야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던 한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갑자기 대학을 중퇴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비디오게임회사에 취직했다. 이후 그는 이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와 함께 집에 딸린 차고에 회사를 차리고 컴퓨터를 조립해 팔기 시작했다. 40년 전 그가 개발한 첫 PC의 최근 경매가는 23만1000달러(약 2억4900만원)에 달했다.

창업에 성공한 듯했던 그는 회사를 차린 뒤 9년 만에 그곳에서 쫓겨났다. 이후 그는 다시 새로운 컴퓨터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몇년 후 이 컴퓨터회사는 그를 내쫓은 회사에 팔렸고 이를 계기로 그는 차차 원래 자신의 CEO 자리로 돌아왔다.

컴백한 그는 "컴퓨터는 결국 계산의 도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변모할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좇아 인터넷과 접목된 전혀 새로운 개념의 휴대전화를 선보였고, 이 물건은 전세계 IT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짐작했겠지만 아이폰 하나로 전세계 IT시장을 뒤흔든 전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얘기다.

세계는 지금 그를 '창조의 아이콘'으로 추앙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심취해온 컴퓨터 및 관련 기술과 인문학적 감성의 결합을 시도해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전세계 산업과 경제에 가공할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기 때문.

최첨단 기술의 경연장인 글로벌 IT시장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데 그의 내세울 것 없는 학력은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가 제시하는 혁신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의 사후 2년이 지난 현재, 세상은 '제2의 스티브 잡스'를 통한 또 다른 혁신을 고대하고 있다. 시장을 선도할 혁신을 이끌어 낼 '창조인재'의 출현과 지속성장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은 창의와 열정 소통의 가치창조인(人)을 갖춘 인재상을 바탕으로 스펙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과 조직에 대한 일체감 및 자부심을 갖고 미래에 도전하는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은 창의와 열정 소통의 가치창조인(人)을 갖춘 인재상을 바탕으로 스펙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과 조직에 대한 일체감 및 자부심을 갖고 미래에 도전하는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사람의 아이디어가 혁신의 단초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의 탄생 배경은 시장에 전대미문의 족적을 남긴 창조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강조해 온 창조경제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문화와 정보통신기술(ICT) 등 신기술과 결합하는 것이며 산업과 산업, 문화와 산업을 융합해 부가가치가 높은 신산업과 시장,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6일 APEC 최고경영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세계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원천은 혁신밖에 없다"며 "한국정부는 혁신을 통한 새로운 경제부흥 전략으로 창조경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창조인재의 발굴·육성이 창조경제 실현의 실마리라는 점이다. 이미 잡스의 사례가 확인시켜준 대로 혁신의 패러다임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단초가 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시류에 편승한다'는 비난을 뒤로 하며 앞다퉈 창조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채용과정에 창조인재 선발을 위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 곧 창조경제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민·관 '한국판 잡스' 키우기 열풍

현재 대한민국에는 민·관발(發) '한국판 잡스' 키우기 열풍이 거세다. 정부가 나서서 소프트웨어(SW) 조기교육 정책을 추진하는가 하면, 민간에서는 대기업들이 채용 및 인사 등 회사정책에 정부의 창조인재 육성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앞서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는 지난 8월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며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SW) 조기교육 지원정책 추진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중국, 인도, 이스라엘, 영국 등 전세계적으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SW 개발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국내는 중·고등학교 선택과목인 정보과목 채택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현재는 전체의 20% 수준에 그치는 등 SW관련 교육이 미진한 실정이다.

이에 미래부는 지난 8월 '개방형 SW교육센터'(olc.oss.kr)에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개발한 스크래치(8세 이상 어린이의 지능·창의력 증진을 위해 MIT에서 개발한 프로그래밍) 과정 등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 과정을 무료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교육 외에도 어릴 때부터 다양한 SW교육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는 게 미래부의 계획이다.

SW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SW복수전공·부전공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SW 외의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SW분야 전공교육 참여를 확대하고, SW융합 교육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

우수 SW복수전공·부전공 학생들에게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력양성사업인 '글로벌 인턴십 교육과정', 'IT멘토링제도', 'SW융합채용연수' 참여 시 가산점이 부여될 예정이다. 'SW복수전공 과정'은 4년간 연 5억원 수준, 'SW부전공 과정'은 3년간 연 2억5000만원 수준을 지원하며 사업종료 후 우수대학은 1년을 더 추가 지원할 방침이다.

그런가하면 교육부는 창조경제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2017학년도부터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없애는 '수능 개혁안'을 검토 중이다.

민간에서는 대기업이 창조인재 발굴·육성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이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올해 역사학·법학·신학 등 인문계 전공자들을 뽑아 6개월 동안 교육시킨 뒤 SW전문가로 양성하는 '통섭형 인재채용'(Samsung Convergence Software Academy: SCSA) 방식을 새롭게 도입했다.

SCSA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인문학과 기술을 결합한 인재를 양성해 '갤럭시' 이후의 혁신을 만들어 낼 창조인재를 키우기 위한 삼성의 새로운 시도로, 200명을 뽑는 해당 전형에 2000명 이상의 인문학도들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은 당초 연간 200명으로 계획했던 SCSA 선발 인원을 400명 이상으로 확대한 상황이다. 올해 하반기 해당 전형으로 200명을 더 뽑는다는 얘기다. 여기서 양성된 SW전문가는 삼성전자와 삼성SDS에서 근무하게 된다.

SK그룹도 신성장사업을 견인할 창조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올해 초 인턴사원 채용에 오디션을 통한 예선·합숙·미션 수행 형식의 '바이킹 챌린지'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학력과 외국어 점수 등 소위 스펙을 초월한 인재를 뽑기 위한 것.

이 기업은 지난해 '자기 분야에서 넘치는 끼와 열정으로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인재'를 '바이킹(Viking)형' 인재로 정의하고 도전정신·열정은 물론 창업 경험자, 특허 보유자 등 창의적이면서 독특한 경험을 소유한 새로운 유형의 인재들을 확보한 바 있다. 이 회사는 매년 전체 인턴사원의 70% 이상을 신입사원으로 선발한다.

그런가하면 LG전자는 창조경제의 핵심이 SW에 있다고 보고, SW 전문가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임직원 대상의 '코딩 전문가'(Coding Expert)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LG전자는 선정된 직원에게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해외 컨퍼런스 참여 기회, 세미나 활동비 등을 지원한다.

왜 '한국판 잡스'를 기다릴까

◆창조인재, '결과' 아닌 '과정'으로 판단해야

현 시점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창조인재 육성에 국가적으로 신경이 집중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우려섞인 시선이다. 창조인재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용어로 전락할 수 있으며 그 기준을 섣불리 정했다가는 왜곡된 인재상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홍구 한글과컴퓨터 대표는 "창조인재의 유형은 실패확률이 99%인 사람이어야 한다"며 "스티브 잡스는 1980년대에는 요즘 말하는 창조인재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가 1990년대에는 능력 없고 고집불통인 퇴물 경영인이 됐다. 그러다 다시 2000년대에는 회사에 컴백해 아이폰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창조경제든, 창조인재든 결과가 아닌 과정과 목적을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창조형 인간을 논하려면 시간 축을 길게 설정해놓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지 오늘 만들어낸 결과만으로 창조인재를 가리게 되면 상당히 왜곡된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IT업계 관계자는 "창조인재를 어떠한 틀로 규정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자칫 과거 김대중 정부 당시 각 분야에서 약간이라도 새로운 면이 있는 사람들을 '신지식인'으로 규정했던 '신지식인 운동'처럼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신지식 운동'은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 당시 정부는 ▲지식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일하는 방식을 개선·혁신한 사람 등으로 정의했다.

정부의 개념정의에 따르면 중국음식점 배달원, 파출부, 건물청소원 등도 신지식이 될 수 있다. 이때 선정된 신지식인 1호가 바로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 심형래다. 현재 '신지식 운동'은 그 개념이 모호하고 실질적인 산출이 없어 캠페인성 구호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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