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서 '스승'을 만나다

송세진의 On the Road / 함양

 
  • 송세진|조회수 : 7,985|입력 : 2013.10.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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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고택 솟을대문
일두고택 솟을대문

사람의 지혜와 자연, 시간이 만든 곳

함양은 자꾸 헷갈린다. 함안도 아니고 함평도 아니다. 그런데 사이곳에 결코 착각할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최치원, 박지원, 정여창…. 당대의 학자요 문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선비들이 지금 여행자를 부르고 있다.

일두고택 안채
일두고택 안채

함양에서 '스승'을 만나다

◆‘사람이 만들고 자연이 완성한’ 상림

상림은 9세기에 조성한 최초의 인공림이다. 신라 진성여왕 때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둑 옆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인공’의 느낌을 찾아보기 어렵다. 천년을 이어 오며 쌓았던 둑이며, 바꿔 놓은 물길, 심은 나무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보물’이 아닌 천연기념물 제154호 지정돼 있다. 짧게는 1.6㎞를, 길게는 14㎞를 걸어 볼 수 있는 상림 산책로에는 공원이 커다란 호미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에 120여 종의 수목 2만여 그루가 인공이 아닌 자연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상림은 계절을 따질 수가 없다. 봄의 산록을 시작으로 연꽃, 꽃무릇, 은행나무와 단풍, 설경 등 절경이 1년 내내 차례를 기다린다. 새벽에는 물안개가 환상적이어서 어르신들의 아침 산책에 좋고, 주변 학교의 소풍 장소와 생태학습장, 데이트 코스로도 그만이다.

공원의 역사만큼이나 곳곳에 유물도 많다. 최치원 선생의 업적을 기린 ‘문창후 최선생신도비’는 말할 것도 없고, 대원군의 ‘척화비’와 ‘이은리 석불’까지 걷다가 만나는 보물들이 잠시 쉬어갈 거리를 제공한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왼쪽 길로 들어서면 ‘역사인물공원’이다. 이곳에서는 함양을 빛낸 인물들을 기념하고 있다. 상림의 주인공인 최치원 선생 흉상을 중심으로 10명의 위인들이 줄을 섰다. 면면을 살펴보니 역사 공부에 게을렀던 여행자도 몇 분은 낯이 익다. 고운 최치원, 점필재 김종직, 일두 정여창, 연암 박지원…. 예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해서 영남의 대표적 선비고장이라더니 헛말이 아니다. 한쪽에는 임술증의 아내 밀양 박씨의 열녀비가 있는데, 이는 박지원이 쓴 <열녀함양박씨전>의 실제 인물이라 한다. 이밖에도 함양군수, 경상도관찰사선정 비석군이 있어 시대마다 다양한 비석의 모양을 보고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상림
상림

상림 역사인물공원
상림 역사인물공원

◆실용·실천적 스승의 고장

함양의 대표 인물 최치원, 정여창, 박지원. 이 세분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하나같이 실천하는 학자였다. 한문학의 대가이자 문장가였고 동국 18현이라 불렸던 최치원은 중앙을 떠나 이곳으로 와 호미로 숲을 일구었다.

일두 정여창은 실천 유학의 선구자였다. 선생 역시 동국 18현이자 동방오현으로 자신의 재능으로 공을 쌓기보다는 겸손하게 본질에 충실했던 학자다.

박지원은 실학 중에서도 북학의 선두주자다. 그 실천의 한 예가 바로 함양의 물레방아다. 이것은 박지원 선생이 1780년 중국에 다녀온 후 쓴 열하일기에서 소개한 것인데, 이후 1792년 함양군 안의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용추계곡 입구인 안심마을에 최초의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덕분에 함양은 물레방아의 고장이 됐다. 전통 마을에 갈 때마다 물레방아가 하나쯤 있는데 그 유래가 박지원 선생과 함양이라는 게 재미있다. 게다가 그 역사가 겨우 200년 조금 넘었다는 것은 의외의 사실이다.

◆주인을 닮은 집 ‘일두고택’

‘일두고택’이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두 정여창과 관계 있다. 이 집은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70년 생가지에 중건됐다. 그런데 일두 선생이 타계한지 1세기 후에 지어진 집이니 정작 이름의 주인은 살아보지 못한 집이다.

고택은 대문부터가 남다르다. 솟을대문에는 충·효 정려 편액 5점이 마치 문패처럼 걸려 있다. 이 때문인지, 집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문은 키가 크고 당당하다. 이곳을 들어서면 대문만큼이나 높이 자리 잡은 사랑채가 있다. 마치 2층집을 보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는 석가산이 있고 연못 또한 있었다는데 지금은 메웠다. 그런데 기대보다 소박하다. 자료를 보니 3000여평 대지에 12동 건물이 있다는데 그 정도 규모로는 보이지 않는다.

왼쪽 일각문을 따라 들어가 본다. 오른쪽으로는 사랑채의 옆면이, 왼쪽으로는 곳간이 있고 안쪽으로 다시 계단이 있고 중문이 있다. 보통 대문으로 들어서서 넓게 트인 마당에 ‘一’자형이나 ‘ㄱ’자형, ‘ㅁ’자형 집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곳은 가려진 듯 새로운 공간이 자꾸 열린다. 문을 지나니 드디어 안채다. 바로 보이는 것이 안채, 왼쪽으로 아래채가 있고, 우물이 있다. 오른쪽의 건물은 먼저 보고 온 사랑채의 뒤편이다.

비로소 이 집의 규모를 알겠다. 상당히 크고 짜임새 있다. 높이 솟은 듯 보였던 사랑채는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었기 때문에 앞에서는 2층처럼, 안채 쪽에서는 1층처럼 보이는 것이고, 안채 뒤로는 객사와 곡간·사당이 있는데 곡간의 크기만 보아도 이 집이 어떤 영광을 누렸는지 알듯하다. 한 때 식솔이 200명이었다니 지금 이 고택이 주는 고즈넉함으로는 상상이 안 된다.

이곳 개평마을에선 시간을 조금 더 지체해도 좋겠다. 일두고택 말고도 ‘오담고택’, ‘노참판댁 고가’ 등 종가와 고택 60여 채가 남아 있고 오래된 돌담을 걷는 맛이 남다른 곳이다. ‘개평리 소나무’, ‘일두선생 산책로’ 등을 거닐며 하루쯤 묵어가기도 좋은 마을이다.

함양에는 정여창 선생과 관련된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정여창 선생을 모신 9개의 서원 중 하나인 남계서원이다. 소수서원 다음으로 창건했지만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광해군 2년에 재건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유서 깊은 서원이다.

그렇다. 그들을 ‘위대하다’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이 남긴 사상, 업적은 물론이요, 그 존재 자체가 당대와 후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누린 숲과 길과 집…. 이것들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닌, 앞서 가신 분들의 행동이자 노력이고 실천이었기에 또 한번의 감사를 배운다.


[여행 정보]

● 함양 상림공원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 88올림픽고속도로 - 본백삼거리에서 ‘남원, 함양’ 방면으로 우측 1시 방향 - 고운로 - 주차장사거리에서 ‘거창, 지곡’ 방면으로 우회전 - 한들로 - 함양배움길 - 대맛길

[대중교통]
서울남부터미널 - 함양시외버스터미널 - 농어촌(백전, 대안, 신촌, 중기) 버스 승차 - 아주택배정류장 하차

● 함양 일두고택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 지곡IC에서 ‘함양, 지곡’방면으로 우측 - 함양로 - ‘백전, 병곡’ 방면으로 우회전 - 병곡지곡로

[대중교통]
서울남부터미널 - 함양시외버스터미널 - 농어촌(지곡, 안의, 서상, 상남) 버스 승차 - 오평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상림공원: 검색어 ‘상림공원’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
일두고택: 검색어 ‘일두고택’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62-1

< 여행 주요정보 >
함양 문화관광
http://tour.hygn.go.kr

2014년 지리산권 방문의 해
http://www.jirisantour.go.kr

2014년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함양, 산청, 하동, 구례, 곡성, 장수, 남원 방문의 해다. 이를 위해 설립된 ‘지리산권 관광개발조합’이 다양한 여행 코스를 개발하고 축제와 볼거리, 즐길 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문의전화: 063-620-5900

함양 상림공원
개방시간: 상시개방
입장료: 무료
상림숲 관광안내소: 055-960-5756

일두고택
문의: 055-960-5163

< 주변 여행지 >
용추폭포: 장수사 일주문을 보고 폭포로 향하는데 물소리만 들어도 폭포의 물을 짐작할 수 있다. 폭포의 높이는 15m, 수심은 수십 미터라 한다. 폭포뿐 아니라 용추사 옆길로 나 있는 계곡이 아름답다.

화림동 계곡: 6㎞ 탐방로에는 농월정, 거연정, 군자정 등의 정자가 많다. 이들은 기암괴석을 흐르는 물과 소나무 숲이 어울려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 음식 >
늘봄가든: 이 집의 대표음식은 밥이다. 찰밥, 팥밥, 조밥, 흑미밥 등 한 바구니에 예쁘게 담아 나오는 일명 ‘지리산 꽃바구니 오곡밥’에 보쌈과 산나물을 곁들여 먹는다.
오곡정식 1만~1만5000원 / 더덕구이 1만원 / 오곡밥(포장) 3000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946-3 / 055-963-7722

안의원조갈비집: 양파, 당근, 오이를 듬뿍 넣어 깔끔한 전통의 맛을 선보인다.
갈비찜 4만~5만원 / 갈비탕 9000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12-1 / 055-962-0666

< 숙소 >
정일품명가: 일두 정여창 선생의 16대손이 운영하는 한옥 호텔로, 일두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문화마당, 바비큐장, 명상쉼터 등의 부대시설과 식당이 있다.
객실 이용료: 3만~26만원
http://www.jung1poom.kr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34-5 / 1577-8958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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