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30년…'쌍용건설사' 어떻게 써 나갈까

CEO In & Out/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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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의 격랑을 넘던 중견 건설업체 쌍용건설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상장폐지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가 하면 채권단 안팎에서 김석준 회장의 퇴진론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특히 김 회장은 올 들어서만 세번째 퇴진 압박을 받고 있어 지난 30년간 쌍용건설과 영욕의 세월을 함께 한 그로서는 이 상황이 곤욕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 ‘치킨게임’ 바라만 볼 수밖에?

지난 2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김석준 회장을 '실패한 경영자'로 규정했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 개시가 결정되는 와중에 캠코가 쌍용건설의 최대주주 자격으로 경영부실의 책임을 물어 김 회장의 해임을 추진한 것.

그러나 이는 “과거 주주가 쌍용건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또 쌍용건설 내부에서 김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독보적인 데다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워 워크아웃을 졸업하려면 김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채권단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김 회장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영욕의 30년…'쌍용건설사' 어떻게 써 나갈까

지난 7월엔 채권단이 직접 김 회장의 해임을 추진했다. 쌍용건설이 두번째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 만큼, 김 회장 스스로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엔 김 회장에게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 보자는 의견이 많아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5개월 만에 김 회장의 세번째 퇴진 압박이 시작됐다. 김 회장이 또 궁지에 몰린 원인은 추가 지원을 놓고 채권단과 군인공제회가 벌이고 있는 지루한 싸움 때문이다. ‘누가 얼마를 더 내고 얼마를 받아가느냐’를 둘러싼 양보 없는 전쟁에 김 회장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 격랑의 세월 동고동락…3년 연속 흑자도

쌍용건설은 지난 30년간 김 회장과 함께 격랑을 헤쳐왔다. 그에게 찾아온 첫 시련은 IMF 외환위기였다. 쌍용건설은 그 여파로 1998년 11월 첫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 때문에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던 김 회장은 채권단의 요청으로 대표이사로 복귀해 6년 만에 워크아웃 졸업을 성공시켰다.

끝난 줄 알았던 그의 시련은 그러나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2003년 이후 캠코와 채권단 관리를 받아온 쌍용건설은 워크아웃 졸업 후 매각이 추진됐으나 연이은 실패로 난항을 겪었다. 1차 매각이 추진된 2008년 당시 주당 3만1000원의 가격을 제시한 동국제강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캠코와의 가격 협상이 결렬돼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대주주였던 캠코는 쌍용건설을 다시 매각하기 위해 2011년 말부터 독일계 엔지니어링업체인 ‘M+W’와 홍콩계 시행사 시온, 국내기업인 이랜드 등과 5차례나 매각 협상을 벌였으나 이 역시 모두 불발로 끝났다.

위기 속에서도 김 회장은 2010년 6월 싱가포르에서 ‘21세기 건축의 기적’으로 평가받는 지상 57층 규모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성공적으로 완공하며 쌍용건설의 해외 건설시장 공략을 이끌었다. 이를 바탕으로 쌍용건설은 최근 3년간 해외사업부문에서 1843억원의 이익을 냈고, 2008~2010년 3년 연속 흑자를 내며 선전했다. 현재도 8개국 16개 현장에서 3조원 가량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입찰사전심사(PQ)를 통과하고 본격입찰을 진행 중인 공사 역시 215억6000만달러(약 23조원)에 달한다.

해외에서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쌍용건설은 연이은 매각 실패와 극심한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로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결국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에 몰렸지만 지난 3월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개시하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 오너→전문 경영인 30년, 이제는…

고(故)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둘째아들인 김 회장은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 대광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김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인 1977년 5월 (주)쌍용(현 GS글로벌) 기획조정실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78년 9월 대학을 졸업, 이듬해인 1979년 (주)쌍용 LA·뉴욕지사에서 근무했다. 김 회장이 쌍용건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2년 쌍용건설 이사로 국내에 복귀하면서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30년간 김 회장은 쌍용건설을 이끌어왔으며 그동안 신분은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바뀌었다.

1983년 만 30세에 쌍용건설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김 회장은 1992년 쌍용건설 회장에 오르며 쌍용건설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개인적으로 쌍용건설 지분도 20% 넘게 보유하고 있었다. 1994년 쌍용자동차 대표이사 회장, 1995년 쌍용양회공업 대표이사 회장을 거쳐 1995년에는 쌍용그룹 회장 자리에 앉았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어려움이 닥치자 그룹 해체 수순을 밟은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 회장은 1999년 3월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다시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때 본인 지분 24%는 모두 사재출연 형식으로 회사에 털어 넣었다. 2003년에는 서울 이태원동 자택을 담보로 유상증자에도 참여했다. 현재 김 회장의 자택은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를 채권자로 59억여원의 가압류가 설정돼 있다.

이렇듯 김 회장은 쌍용건설을 살리기 위해 사재출연 등 부단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현직에 있을 당시 두차례나 워크아웃을 겪어야 했다. 현재 쌍용그룹의 수많은 계열사 중 옛 오너의 입김과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쌍용건설이 유일하다. 하지만 쌍용건설과 김 회장의 처지는 현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다.

쌍용건설을 살릴 해법은 아직까지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결국 군인공제회 설득을 포기한 채 협상 중단 의사를 밝혔다. 채권단이 5000억원 출자전환 등 추가지원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결국 상장폐지와 법정관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관급공사와 해외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협력업체 줄도산마저 우려된다.

김 회장은 회사만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도 상관없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쌍용건설. 영욕의 30년을 임직원과 함께 한 김 회장이 이번 난관을 극복하는데 어떤 힘을 보탤지, 향후 쌍용건설과 어떤 운명의 끈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 프로필
1953년 4월 9일 대구 출생/고려대 경영학과 졸업/1977년 (주)쌍용 입사/1983년 쌍용건설 대표이사장/1991년 쌍용그룹 부회장/1994년 쌍용자동차 대표이사 회장/1995년 쌍용양회공업 대표이사 회장/1995년 쌍용그룹 회장/1999년~ 쌍용건설 대표이사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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