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정치금융공사'라 하지

갈 곳 잃은 정책에 갈 데 없는 정책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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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무산되면서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이 혼란에 빠졌다. 특히 정책금융공사의 경우 정부와 국회의 정치게임에 휘둘리면서 내부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은 민영화를 전제로 쪼갠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산업은행과 합치는 통합산업은행 설립을 목표로 발의됐다. 정부가 정한 목표는 올해 7월 출범이었다. 하지만 이번 국회통과 무산으로 연내 설립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일각에서는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재논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6월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어 관련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애초 '정치금융공사'라 하지

◆정치권 불협화음에 도대체 어디로…

통합산업은행 설립 추진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는 지난해 8월27일. 금융위원회는 당시 브리핑을 통해 산업은행 민영화를 중단하고 2008년 당시 민영화 전제로 설립한 정책금융공사와 재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올해 1월1일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관련 안건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개정안에는 정책금융공사가 담당했던 선박, 항공기, 사회간접자본과 자원 개발 분야 등에 대한 정책금융 업무는 수출입은행으로 넘기고 '온랜딩 대출'(간접대출) 업무를 산업은행에 이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개정안 발의 때부터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반대기류가 거셌다. 특히 부산지역 의원들의 반대가 컸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무산되면서 더욱 확산됐다.

부산지역 의원들은 선박금융공사 무산 대신 정책금융공사 부산 이전을 대안카드로 제시했다. 선박금융공사 역할을 정책금융공사에게 맡긴다는 의미다. 실제로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정책금융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자 정부는 정책금융공사 대신 수협중앙회를 대안 카드로 내밀었다. 수협의 신용·경제 부문을 분리, 신용 부문을 부산으로 보내 선박금융 기능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수협의 신경분리가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고 실제 진행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산지역 의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선박운용회사를 부산에 만들고 해양금융정책관을 신설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해프닝을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불협화음에 애꿎은 정책금융공사만 혼란스럽게 된 꼴이다. 정책금융공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에서 진행하는대로 지켜볼 뿐"이라며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푸념을 토했다.

이처럼 정부와 국회가 정책금융공사를 놓고 엇갈린 의견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6월 지방선거와 정부의 탁상공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무산되면서 대안으로 정책금융공사를 지역에 유치해 표심을 얻겠다는 것.

정부 역시 설익은 정책을 내놓기는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이 민영화에 실패하자, 정책금융공사와의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결국 정책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수차례 민영화를 번복한 것은 결국 금융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가장 크다”면서 “정부의 판단 실수로 내부 직원들만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헛발질 연속' 신제윤 금융위원장

▲신제윤 금융위원장(사진 = 머니투데이 DB)
▲신제윤 금융위원장(사진 = 머니투데이 DB)
금융당국이 잇따라 헛다리를 짚고 있다.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비롯해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직접 챙긴 올해 주요 안건이 국회에서 모두 무산됐다. 여·야간의 의견 조율 실패로 신제윤 위원장의 리더십마저 흔들리는 모양새다.
그가 가장 관심을 쏟은 것은 우리금융지주 매각. 하지만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끝내 4월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과거 트위터를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을 한 사실 등을 놓고 야당의원들이 안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모든 일정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 민영화의 두번째 단계인 경남·광주은행 매각은 분할기일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앞서 우리금융지주는 분할기일내에 지방은행 매각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6500억원을 면제해주지 않으면 지방은행 분할을 철회하겠다고 조건을 내건 바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이사회를 열고 당초 3월1일로 예정됐던 분할기일을 5월1일로 두달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광주은행과 경남은행을 인수하기로 한 JB금융지주와 BS금융지주 모두 인수를 눈앞에 두고 정치권에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민영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우리은행 매각 역시 당초 2월 중 논의가 예정돼 있었지만 지연되고 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과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금소원법) 개정도 표류됐다. 신용정보법은 금융권의 고객정보 보호를 위한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인신용정보 집중을 위한 별도 공공기관 설립 등에는 여야가 뜻을 같이 했지만 정보 유출 시 피해구제 방안으로 민주당이 제시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등에 새누리당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금소원법도 비슷한 처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금융인들과의 오찬에서 “금소원을 (금융감독원에서) 분리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금융위원회가 여느 정책보다 신경을 더 썼지만 여야는 의견차를 다시 확인하는 선에서 논의를 마쳤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추진한 안건이 이번 국회에서 단 한건도 처리되지 않았다”면서 “이는 국회의 잘못이 크지만, 금융당국 수장의 리더십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도 방증하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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