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통집따라… '시간 속으로의 여행'

송세진의 On the Road / 고성 왕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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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에 갈 때는 단순해지자. 주변 여행지를 여러 곳 둘러보지 말고 이번만큼은 한두 군데로 만족하자. 바쁘지 않게 천천히…. 이것이 왕곡마을을 즐기는 미덕이다.

◆자연이 주신 요새, 왕곡마을

깊은 산골도 아닌데 참 아늑하다. 다섯개의 산이 이 마을을 감싸 안았다. 200m의 야트막한 봉우리이지만 ‘골’을 이루기엔 충분했다. 남쪽으로는 죽도해변과 오토캠핑장으로 유명한 송지호가 있다. 송지호 쪽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하나의 커다란 벙커다. 마을이 마치 방주처럼 생겼다. 마을을 관통해 왕곡천이 흐르고 이를 중심으로 집들이 흩어져 있다.

‘화마도 피해간 곳.’ 흔히 왕곡마을을 이렇게 말한다. 강원도 하면 전쟁이 떠오르는데, 신기하게도 이곳은 단 한번도 폭격을 맞은 적이 없다. 이후 고성에 대형 산불이 났었는데 그때도 왕곡마을은 무사했다. 사람들은 이곳의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이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고 보니 적당히 산에 기대 안긴 집들과 흐르는 개울이며 앞쪽의 바다까지…. 3박자를 다 갖춘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 요새마을은 14세기에 발견됐다. 고려말 양근 함씨, 함부열이 조선건국에 반대해 간성으로 은거했고, 그의 아들 함영근이 이곳에 정착했다. 그렇게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뤄 600년을 이어왔다. 그동안 마을의 우여곡절도 많아서, 3개의 마을로 나뉘었다가 일제강점기 때는 하나로 다시 합쳤다가 한국전쟁 이후 다시 합병·분할됐다. 그렇지만 전쟁으로 뒤집혔던 강원도 땅을 생각할 때 그 정도면 평탄한 역사다.
 
양통집따라… '시간 속으로의 여행'
항아리굴뚝
항아리굴뚝
◆전혀 다른, 처음 보는 양통집

이 마을엔 대문이 없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정낭(나무 3개를 돌에 걸쳐 놓은 것)조차도 없다. 집 사이로 텃밭이 있긴 하지만 담도 없고 문도 없다. 조금 더 관심 있게 살펴보면 그동안 봐 왔던 남쪽의 가옥과는 확실히 다르다. 와가 20여채와 초가 30여채가 개울 안길로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 남아있는 가옥은 주로 19세기의 민가다.

이들 사이를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남의 집 마당에 들어와 있다. 경계를 알려주는 것은 낯선 사람도 별 경계를 하지 않는 황구와 백구. 그래서 이 마을에 개가 많은 건가…. 어쨌든 이들 견선생을 시작으로 누군가의 집이니 말이다. 그런데 개방된 앞쪽과 달리 뒷담은 오히려 높고 폐쇄적이다. 앞마당은 가족의 공동작업 공간인 반면, 뒷마당은 여인들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란다.

이 집들의 이름은 양통집, 또는 쌍통집이라고 한다. 보통 ‘ㄱ’자 모양을 하고 있고, 부엌 앞으로 지붕을 덧대어 헛간을 쓰고, 외양간이 부엌 안에 있다. 조선시대 함경도(관북지방)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로 겨울에 추위를 견디기에 적합한 겹집 구조이다. 대문이 없어서 휑할 것 같지만 본채 자체는 옷을 겹겹이 싸 입은 것처럼 야무지다. 덧댄 지붕 끝은 눈 높이만큼 낮게 내려와 겨울바람을 요령껏 피하는 모양새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부엌과 마루가 지붕 안에 있다. 남방형 집의 대청마루가 곧 마당으로 이어지는 형태라면, 양통집은 마루가 실내로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창호지 문으로 빛이 들어와 나무 마루에 떨어지면 반들반들 빛이 난다. 겨울에는 아늑하고,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다. 사랑방과 안방은 나란히 붙어 있다. 추울수록 가까이 있어야 하니 지붕 안에 밀도 있게 배치한 것이다. 그래서 일까. 북쪽 사내들이 가정적이라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지붕 안에서 아내와도 가까이, 부엌과도 가까이, 심지어 가축도 시야에 두고 살뜰히 집안을 돌보았을 것이다.

뒷마당은 반전이다. 안채가 전체인 듯 느껴져 뒤에 이런 공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안채가 곧 대문이자 외벽 역할을 한 셈이다. 넓진 않지만 작은 마당공간 뒤로 가옥 하나가 뒷담만큼이나 높다. 자세히 보니 2층이다. 아래쪽은 창고고, 위에 다락방이 있다. 이어서 딸린 작은 방은 사람 한명이 누우면 딱이겠다. 물론 이렇게 뒤채가 있는 집은 부잣집이다. 이 밖에도 행랑채며 헛간과 창고가 더 있다.

담장 위로는 장독이 있다. 아니 저 깨지기 쉬운 것들을 담장과 지붕 위에 올려놓았나 싶었는데, 이게 항아리굴뚝이란다. 굴뚝 위에 항아리를 엎어 놓아 이를 통해 연기가 나오도록 해 초가에 불이 옮겨 붙지 않게 하고, 열기를 집 내부로 다시 들여보낸다고 한다. 그러니까 ‘두 번 타는 보일러’가 이미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셈이다. 기능도 신통한데 집집마다 굴뚝의 모양도 다르고, 항아리를 올려놓은 모양새도 개성이 있어 왕곡마을만의 독특한 볼거리다.

지붕 안에 있는 마루
지붕 안에 있는 마루
왕곡마을 숙박 체험
왕곡마을 숙박 체험
◆소박한 마을체험

이곳은 확실히 집 자체가 볼거리이다. 흔히 봐 왔던 한옥이 아니니 문하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이 좋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한발 더 나아가 숙박체험을 하는 것도 좋다. 숙박체험 말고도 소소하게 즐길 거리들이 많다. 전통한과 만들기나 두부 만들기는 모두 강원도 땅에서 나는 건강한 먹거리를 이용한 것이다. 월마다 단오부채를 만들어보는 이벤트가 열리며 유두팔찌만들기 같은 절기체험 행사도 있다. 마을 곳곳을 다니며 디딜방아, 고누놀이, 굴렁쇠굴리기, 칠교판, 그네, 널뛰기 등 상설체험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복잡한 규칙이 있지도 않고, 약간의 중독성과 승부욕을 자극하는 우리 전통의 놀이다.

그러니 차를 멀리 세우자. 힘을 빼고 걷자. 빈 그네에 앉아 보고, 심드렁한 백구에게 인사하고, 낮게 내려온 지붕을 배경으로 관광사진 한장 찍고, 느릿느릿 어슬렁…. 왕곡마을에서는 그걸로 충분하다.


● 여행 정보

▷ 고성 왕곡마을 가는 법
서울 춘천고속도로 - 동홍천IC 교차로에서 ‘속초, 인제’ 방면으로 우측방향 - 설악로 - 철정터널 - 인제대교 - 인제터널 - 한계교차로에서 ‘간성(고성), 속초’ 방면으로 좌회전 - 미시령로 - 한계터널 - 용대터널 - 우측방향 - 진부령로 - 대대삼거리에서 ‘속초, 간성(고성)’ 방면으로 우회전 - 간성로 - 북천교차로에서 ‘양양, 속초’ 방면으로 좌회전 - 46번 국도 - 상리교차로 - 동해대로 - 송지호로

▷ 대중교통
간성시외버스터미널 - 간성(오봉,간성) 버스 승차 - 왕곡마을 입구 정류장 하차

▷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왕곡마을: 검색어 ‘왕곡마을’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 주요 정보 >
왕곡마을
http://www.wanggok.kr / 033-631-2120 / 1544-9562
마을 자유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문화해설(5~11월):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월별 절기 체험: 오후 2시, 오후 4시
왕곡마을 풍류 음악회(5월~11월): 토요일 저녁 7~8시, 왕곡 풍류사 진행
먹거리 체험은 사이트 참고 후, 전화 예약

해파랑길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해변을 따라 걷는 10개 구간 50개 코스, 770㎞의 길이다. 왕곡마을은 해파랑길의 마지막인 고성구간에 해당한다. 총 64.6㎞인 고성구간은 5개의 코스로 다시 나뉘는 데 왕곡마을은 송지호가 있는 47코스다. http://www.haeparanggil.org

< 주변 여행지 >
화진포해수욕장: 남한에서 가장 북단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화진포 호수와 바다 사이 1㎞ 백사장이 아름답다. 얕은 수심과 완만한 해변이 에메랄드 빛 바다빛깔을 만들고, 주변의 노송 또한 절경이다.
http://hwajinpo.invil.org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99 / 033-680-3352

통일전망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자 금강산 비로봉과 해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민간인 통제선 안에 위치하고 있어 출발 및 관람시간이 계절별로 제한돼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수는 있으나 해당 지역으로 개별입장은 할 수 없다. 사이트를 참고하고, 미리 문의한다.
http://www.tongiltour.co.kr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 033-682-0088

< 음식 >
백촌막국수: 단순한 메뉴에 관록이 묻어나는 맛집이다. 막국수 면발에 시원한 동치미 육수를 직접 부어먹는 맛이 일품이다. 입맛에 따라 자작한 비빔막국수로도 물막국수로도 조절해 먹을 수 있다. 수육은 보들보들 하면서도 찰지고 고소해 찾아오는 불편함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메밀국수 7000~8000원 / 편육 1만2000~1만5000원
강원 고성군 토성면 백촌리 162 / 033-632-5422

< 숙소 >
왕곡마을 숙박체험: 초가와 와가 8채를 숙박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해당 사이트에서 집, 구조, 방을 확인한 후 온라인 예약한다. 숙박하는 가족은 단추쌩쌩이, 제가 만들기, 팽이만들기 등 무료체험을 할 수 있다.
가격: 2만5000~10만원
예약문의: 033-631-2120 / http://www.wanggok.kr
라코스타 펜션: 바로 앞이 바다로 연결돼 있어 침대에서 동해바다의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월풀 욕조, 자전거 대여, 영화DVD, 픽업 등 투숙객을 고려한 서비스로 젊은 가족에게 인기가 높다.
가격: 15만~35만원
예약문의: 010-8849-4997 / http://www.lacosta.kr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219-4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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