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신화서 버블 진앙… '강남 영욕사'

혼돈의 부동산시장, 길이 보인다 / 강남으로 본 한국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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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움츠린 채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는 부동산시장.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줄면서 주택거래가 위축되고 이 같은 심리는 또 다시 집값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지만 희망도 보인다. 위례신도시 등에서 시작된 분양열기가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결국 분양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분양시장이 살아야 전세물량이 늘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전월세 가격도 안정될 수 있다. 이제 곧 하반기 분양시장이 열린다. <머니위크>는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을 짚어보고 하반기 기상도를 전망했다. 아울러 하반기 분양에 나서는 명품아파트 13곳을 뽑았다.


강남의 중심을 관통하며 중동진출이 한창이던 1970년대 말에 명칭을 바꾼 테헤란로.
강남의 중심을 관통하며 중동진출이 한창이던 1970년대 말에 명칭을 바꾼 테헤란로.

아직 돈이나 부동산의 가치를 모르던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서울 강남에 사는 어머니 친구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은 고층빌딩이 빼곡히 들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촌'으로 꼽히지만 그 때만 해도 집을 짓기 위해 평평하게 닦아 놓기만 한 빈터가 많았고 골목에는 흙먼지가 날리던 곳이다.

벽돌로 지은 단독주택만 듬성듬성 서 있는 가운데 어머니의 친구 집은 그중 하나인 2층 양옥이었다. 흡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풍경과 비슷했다. 이곳에서 어머니와 친구는 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할 대화를 나눴다.

"너도 이쪽으로 이사와. 그리고 땅도 좀 사고. 여기는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야. 큰돈을 벌 수 있어." "내가 돈이 어딨니. 볼 것도 없는데 너무 비싸." "돈은 빌리면 돼. 요즘은 강남에서 아무 땅이나 집을 사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어. 이 동네 아줌마들한테 들은 확실한 정보야."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우리 형편에 대출 받아 이쪽으로 이사 오는 것도 그렇고…. 애 아빠 출퇴근도 그렇고…."

친구가 어머니에게 권했던 것은 요즘말로는 '투자', 옛말로는 '투기'였다. 실제로 어머니 친구는 이런 방법으로 많은 돈을 모았다고 했고, 어머니는 당시 친구의 조언을 흘려들은 것을 아쉬워한다.

곧 40세가 될 기자에게 '대한민국의 부동산'이라고 하면 그날 그녀들의 대화에 압축된 '강남'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 중·장년에게 '부동산'이란?… '부럽고 아쉬운' 강남

실제 우리나라 40대 이상의 중·장년들에게 부동산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 강남이 1순위일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강남구·서초구·송파구를 가리키는 서울의 '강남 3구'는 장년층에게는 '아쉬움'이자 중년층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곳은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아무나 살 수는 없는 곳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에서 강남의 상징성은 더 크게 다가온다.

왜 강남이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물리적·사회적 변화가 급격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변화는 중·장년층이 또렷히 기억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진행됐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거의 농촌지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초고가·초고밀 지역인 서울의 강남은 1970∼80년대에 대부분 형성됐다. 불과 20년 만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진 서울의 강남은 한국사회가 엄청난 생산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강남 개발이 필요했던 이유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과밀화된 강북지역의 인구를 수용할 가까운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강남을 당시 정부는 각종 시설 건설, 고등학교 (강제적) 이전, 투기 허용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급속히 도시화했다. 이는 곧바로 악용돼 투기와 비리가 만연했고 강남의 개발은 기형화됐다. 말죽거리(양재동)의 땅값은 1961년부터 2010년까지 50년 사이에 3.3㎡당 200∼400원에서 1500만∼3000만원으로 16만배나 올랐다.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구의 아파트단지 /사진=뉴스1 양동욱 기자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구의 아파트단지 /사진=뉴스1 양동욱 기자

◆ 계속되는 강남 투기에 대한민국 부동산은 '버블'

1980년대 들어 대규모 공사장이었던 강남에 새로운 부동산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일확천금을 노린 투자자들이 강남으로 몰리고 그들이 떼돈을 벌면서 투기규모는 더 커졌다. 상업화·주거화가 본격화된 것이다. 1960년대 3.3㎡당 200∼400원이던 신사동 일대 땅값은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자 1970년 1만∼1만5000원으로 뛰었으며, 상업·주거화가 이뤄진 10년 뒤인 1980년에는 40만원으로 폭등했다.

더욱이 1984년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이 개통되면서 강남 일대에는 업무시설과 문화시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의 테헤란로와 삼성동, 서초동 일대의 오피스타운으로 진화했다. 주거기능에 자족기능이 더해지자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975년 강남구 신설 당시 32만명이었던 인구는 1987년 서울 종로·중구·용산구 인구 77만명보다 많은 82만명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1988년 강남구는 강남구과 서초구로 나뉘었다. 그 사이 신사동 일대의 공시지가는 1990년대 3.3㎡당 790만∼1200만원으로 광폭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1200만∼4100만원으로 거품(버블)이 끼기 시작했다.

◆ '강남 버블'이 이끈 부동산시장의 '몰락'

개발과정에서 강남은 부자가 된 사람, 부자가 된 뒤 이곳으로 이사 온 사람이 모여 살아 '부자동네'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 사이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서울 타 지역을 비롯해 수도권까지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집값 상승을 견인한다는 이유로 2005년에는 강남 거주자들을 겨냥한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했고, 2006년에는 양천·분당·평촌·용인과 함께 강남 3구인 강남·서초·송파구를 '버블 세븐' 지역으로 선정하고 대대적인 투기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강남은 계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무거운 세금을 견디지 못한 생계형 가구가 강남을 떠나는 바람에 종부세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진정한 부유층'만 강남에 남게 돼 '물이 더 좋아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처럼 절대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강남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허무하게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경기 하락과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으로 빛을 잃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강남이 아닌 그외 서울지역과 경기도, 그리고 전국으로 번지면서 부동산시장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 사이 수많은 '하우스푸어'(House Poor:저금리를 바탕으로 과도한 대출로 집을 마련했지만 금리인상과 주택가격 하락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사람)가 생겼고 사회적 문제로 번졌다.

하지만 올 들어 3월부터 강남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3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오랜 침체의 터널을 뚫고 나올 조짐을 보인다. 이제는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과 정부의 규제완화정책으로 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대기수요가 유입돼 거래량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그동안 국내 부동산시장이 강남의 추이에 따라 움직인 점을 감안할 때 이제는 부동산시장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솔솔 나오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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