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의 21세기판 '한혈마'

송기용 특파원의 China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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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한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으로부터 한 필의 말을 선물 받고 감격했다고 한다. 보통 말이 아니라 하루에 천리를 달리고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전설의 명마 한혈마(汗血馬)였기 때문이다. 2100여년 전, 북방 유목민족 흉노족을 토벌하기 위해 고심하던 한무제(漢武帝)가 서역으로 대군을 보내 구하려 했던 말이 바로 한혈마다.

고대 중국과 서역을 연결했던 무역로를 일컫는 실크로드는 한혈마를 찾는 과정에서 개척됐다.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과 도자기, 칠기 등을 중앙아시아·유럽과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2000여년이 흐른 21세기에, 제2의 실크로드를 꿈꾸는 중국이 새로운 한혈마로 고속철도를 꺼내들었다.

[특파원 리포트] 중국의 21세기판 '한혈마'

◇윤곽 드러나는 고속철 실크로드 구상
 
중국은 지난 2009년부터 유라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고속철로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유라시아 노선은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 파리와 베를린, 바르샤바, 키예프, 모스크바, 카자흐스탄으로 연결된다. 카자흐스탄에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 간쑤성의 란저우를 거쳐 중국 각지로 연결된다. 또 카자흐스탄에서 네이멍구자치구 만저우리를 통해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를 잇는 고속철도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유럽의 서쪽 끝 런던에서 극동의 하바로프스크까지 고속철로 이어지게 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두번째 고속철 실크로드인 중앙아시아 노선은 터키에서 출발해 이란,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우루무치를 통해 중국으로 연결된다. 이 노선은 터키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확장될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 노선인 동남아시아 노선은 윈난성 쿤밍에서 출발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를 이어 싱가포르까지 이어진다.

유라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3개 고속철 노선이 연결된다면 동남아시아의 신선한 여름과일을 북유럽과 시베리아까지 실어 나를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자동차가 고속철로 중국, 동남아로 운송할 수도 있다. 중국이 중심이 된 거대한 글로벌 고속철 물류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중국, 고속철 실크로드 실현에 총력전
 
중국의 고속철 실크로드 구상은 망상이 아니다.

이미 고속철 실크로드의 중국 내 핵심축이 될 우루무치-란저우를 연결하는 1776㎞ 길이의 고속철이 지난달에 개통했다. 만년설이 덮인 고산지대, 사람은 물론 동물도 살 수 없는 습지대, 기반이 약해 시공이 힘든 사막지대 등을 통과하는 란저우-우루무치 노선은 2009년 착공 이후 1400억위안(약 23조원)의 천문학적인 사업비가 투입됐다. 투자비도 문제지만 이 노선은 이용하는 고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적자 발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 장기전략 차원에서 우루무치-란저우 노선을 운영할 방침이다.

중국은 또 20~30개 국가와 고속철 협력을 논의하는 등 계획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고속철 실크로드 구상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유럽 순방 중 프랑스에서의 첫 일정지로 고대 실크로드 서쪽 종착지인 리옹을 선택했다. 독일에서는 세계 최대 내륙항이자 유럽 물류 허브인 뒤스부르크 항구를 방문했는데, 이 항구는 중국 충칭에서 출발해 신장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도달하는 '충칭-신장-유럽 국제철로 복합운송' 노선의 종착점이다. 이처럼 시 주석은 방문지 선택에서도 고속철 실크로드 건설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시 주석은 이에 앞서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중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의 고속철 실크로드를 연결한다는 데 합의했다.

리커창 총리도 고속철 세일즈 외교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6월에 영국을 방문한 리 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런던-버밍엄을 연결하는 고속철 사업에 중국의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5월 아프리카 순방 중에는 나이지리아와 807억7900만위안(한화 약 13조원), 총 연장 1385km의 철도 건설 프로젝트 수주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문 때는 세차례나 고속철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격적인 세일즈에 나섰다. 리 총리는 "태국이 고속철 건설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면 철도 건설비용을 현금으로 받는 대신 태국의 농산품으로 받을 수도 있다"고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중국 고속철 실크로드, 무엇을 노리나
 
중국이 고속철 실크로드 구상에 전력을 기울이는 데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

우선 경제적 측면이다. 중국의 고속철기술은 세계 정상급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철도망은 고산·사막·늪지대, 열대·한대지방 등을 포괄하고 있어 세계 모든 지형에 적용될 수 있고, 안정성과 시스템 역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고속철의 해외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터키·이란의 고속철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태국·라오스·브라질 등과는 합작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천밍밍 전 주스웨덴 중국 대사는 "독일과 프랑스가 중국 고속철과 경쟁관계에 있지만 가격경쟁력은 물론 자금력 측면에서도 중국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중국 증권시보는 "올 들어 해외에서 체결한 철도건설 계약이 1000억 위안(16조3000억원)을 넘어섰고, 하반기에는 더욱 늘어나는 등 고속철 해외진출 전략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낙후된 서부내륙 지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쓰촨, 윈난, 간쑤 등 서부에 있는 12개의 성·시·자치구를 의미하는 서부지역은 중국 전체 면적의 71.4%(685만㎢), 전체 인구의 28.6%(3억7000만명)를 차지하지만 GDP는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고속철 건설로 교통 오지인 서부지역의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인적 교류를 활성화해 이 지역 경제력을 동부 연안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밖에 중국을 해상에서 포위하려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에 맞서 육로를 통해 유럽, 중동으로 진출하겠다는 전략적 포석도 깔려 있다. 특히 석유수입 의존도가 세계 1위, 석유와 가스소비가 세계 2위인 중국으로서는 실크로드를 통해 안정적인 에너지 보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중국의 고속철 실크로드는 한국과도 관련이 깊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의 핵심으로 남북한과 유럽을 철도로 연결하자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지만 남북 분단으로 육로가 막혀 항공과 해운에 물류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 실정에서 중국 고속철 실크로드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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