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서울에 피맛골은 있다? 없다?

600년 서민골목의 재탄생 / 애환의 역사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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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600년 가까이 술꾼과 서민들의 거리였던 피맛골이 사라졌다. 번듯한 현대식 건물 안으로 '새 피맛골'이 형성되고 있지만 '골'이라기보다는 아케이드에 가깝다. <머니위크>는 커버스토리로 피맛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살펴봤다.
피맛골. 말을 피해 다녔다는 이곳은 서민을 위한 거리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 대표 골목길이다.

피맛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교보생명빌딩 뒤부터 종로구 수송동 종묘공원까지를 가리킨다. 또한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 국일관부터 종로구 장사동 세운상가까지의 거리도 피맛골이다. 이 일대를 피맛골이라고 부르며 사이 골목길은 피맛길이라고 칭했다.

현재 이 주변은 서울의 대표 중심가다. 대기업 본사 등 많은 오피스빌딩이 들어서며 번화가를 형성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일대는 역사적으로 서민들을 위한 거리다. 그 이유는 '피맛골'이라는 명칭의 유래에서 출발한다.

 
[커버스토리] 서울에 피맛골은 있다? 없다?


◆상관을 피해 다니던 골목

피맛골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가 지은 <동명연혁고 종로구편>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종로는 광화문 등과 가까워 많은 관리가 지나가던 곳이다.

관리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을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당시 풍습은 하관(下官)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 상관(上官)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길가에 엎드리고 있어야 했다. 상관에 대한 예의를 지킨 것.

이 예절을 지켜야 하다보니 하관들은 실제 이동하는 거리보다 엎드려 있는 시간이 더 많아 관아에 지각하는 사태가 생기고 업무가 지체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일반서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동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이러한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 종로 큰길 뒤쪽으로 겨우 말 한 마리만 지나다닐 수 있는 거리를 만들었다. 상관을 만나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관들은 관아로 향할 때 이 거리를 통하거나 큰 길에서 상관의 행차를 보면 말머리를 아예 이곳으로 돌렸다. 때문에 말을 피한다는 의미의 피마동(避馬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결과 피마동에는 하위직 관리들과 일반서민들이 자주 오가는 거리가 형성됐다. 이들을 상대로 한 장사가 번창하기 시작했다. 목로술집, 모주집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점들이 생긴 골목을 피맛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교보생명빌딩 뒤편의 피맛골 시작을 알렸던 이정표와 선술집들(2004)
교보생명빌딩 뒤편의 피맛골 시작을 알렸던 이정표와 선술집들(2004)

◆돈 없는 젊은 층이 많이 찾던 골목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의 <서울의 길>에 따르면 피맛길은 종로와 나란히 놓여 종로1가에서 종로6가까지 길게 이어져 광화문과 동대문을 연결했다. 또한 종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거리가 조성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도로확장으로 종로 남측 부분은 사라졌다. 북쪽도 종묘 앞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상당 부분이 없어졌다. 도로확장과 개발이 피맛골을 축소시킨 것이다.

현재의 피맛골은 종로1가 교보생명빌딩에서 종로3가 종묘까지만 남았고 이는 피맛길, 서피맛길, 동피맛길, 보석길로 나뉜다.

피맛길은 종로구 청진동 302-2번지에서 청진동 119-1번지에 이르는 너비 2.5~3.8m, 길이 312m의 거리다. 서피맛길은 인사동 78-1번지~인사동 93번지에 이르는 곳으로 너비 2~3.5m, 길이 173m다.

낙원동 197-2번지부터 돈의동 24-1번지에 이르는 동피맛길은 너비 3.2~4.8m 길이 246m의 소로다. 묘동 56번지에서 종로3가 39-3번지에 이르는 보석길은 너비 5~7.3m 길이 145m의 소로다.

청진동에 자리 잡은 피맛골에는 서민들을 위한 싸고 푸짐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성업을 이뤘다. 조선시대에는 국밥집이 많이 들어섰고 1930년대 중반에는 종로 1가에서 동대문까지 선술집이 성행했다.

청진동 해장국골목으로 유명한 SC은행(구 제일은행) 서쪽 근처는 1940~1950년대부터 해장국집들이 영업을 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낙지요리가 성행했다. 피맛골 일대 오래된 음식점들은 100년 넘게 영업한 곳도 있으며 30~40년된 집들이 대부분이다. 음식의 종류는 빈대떡, 막걸리, 생선구이, 해장국 등 서민들이 즐겨찾는 먹거리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청일집'이다. 청일집은 지난 1945년 광복과 함께 문을 연 빈대떡 막걸리집이다. 옛 시절 돈이 없던 문인이나 언론인 등이 많이 찾았으며 손기정 선생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다녀간 것으로 유명하다.

◆재개발 사라진 옛 정취, 그러나…

서민들의 체취와 향수가 가득했던 피맛길도 '개발붐'을 피할 수 없었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피맛길이 개발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을 언제부터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다만 지난 1979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시점 전후로 보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시기 묘동과 종로3가는 귀금속 도매상 등이 모여들면서 아예 '보석길'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옛 피맛골을 그리워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 지난 2008년 서울시에는 '피맛길 보전개선 자문위원회'가 구성됐으며 '피맛길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수립됐다.

이는 옛 모습을 되도록 살리면서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것이 기본 가이드라인이다. 서울시는 또 지난 2009년 청진동 지역의 피맛길을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심상목 /사진=류승희
심상목 /사진=류승희 ssm2095@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위크> 심상목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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