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때문에"… 돈을 마다하는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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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예금을 맡기면 최소 단위가 500억~1000억원대입니다. 기본적으로 수천억원대를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따라서 일반예금보다 0.1%포인트의 금리를 더 얹어주면 수억원의 이자가 더 발생합니다. 역마진 우려 때문에 단위가 높은 예금은 가급적 정중히 거절하는 상황입니다." (A은행 한 고위 임원)

시중은행과 대기업들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은행들이 대기업의 잉여자금(수천억 단위)을 수용하기 어려워서다. 기본적으로 기업들은 예금금액이 많을수록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데 지금은 은행들이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중금리가 워낙 낮아 자칫 역마진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

여기에 한국은행이 올 하반기 중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함에 따라 은행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각 은행마다 기업들의 자금을 유치하고자 고군분투했던 과거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는 지표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20배를 오르내리던 통화승수는 지난해 말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19.8배까지 떨어졌다. 이후 지난 3월 19.6배로 바닥을 찍은 뒤 4월 19.9배로 올라오며 회복세를 보였지만 5월 들어 다시 18.7배로 떨어지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금리는 일반정기예금보다 0.1~0.2%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시중은행 정기예금은 각 은행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 1~2%대 중반 수준이다. 최대 2.55%까지 이자를 주는 곳도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영업부에서 힘들게 예금을 예치한다고 해도 이를 운용할 곳이 마땅찮아 본점에서 승인을 거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예대마진으로 은행을 꾸려 나가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은행권, 허울 좋은 깜짝 어닝시즌… 떠나간 '님' 못 잡아

이처럼 은행들이 대기업의 예금을 거절한 것은 순이자마진(NIM)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다. NIM이란 은행이 자산을 운용해 낸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차감해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익률을 나타내는 지표다. NIM에는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채권 등 유가증권에서 발생한 이자가 포함된다.

국내 시중은행의 경우 일회성 이익(세금 환입) 영향으로 전년보다 실적이 크게 호전됐지만 NIM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들의 2분기 NIM은 1.82%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올 1분기 1.80%를 기록,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대로 떨어진 뒤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NIM의 하향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데다 은행 간 경쟁심화, 부실여신 확대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여기에 금리인하 이슈와 경제 2기팀의 고정금리 대출비중 확대 드라이브 등도 은행권 NIM 개선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개인 예·적금은 규모와 상관없이 받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대기업의 거액 예금은 수용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앞으로 경기가 살아나거나 새로운 투자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기업들, 금고 현금 넘쳐나는데…

깊은 고민에 빠지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은행에 맡겨봐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에 불과한 데도 대기업들이 은행을 찾는 이유는 역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다. 이런 와중에 이례적으로 은행들이 예금을 거절하는 상황이어서 상당한 자금이 기업금고에 묶여 있는 형국이다.

기업경영성과 평가기관인 CEO 스코어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10대 그룹 76개 상장사(금융사·지주사 제외)의 현금성 자산은 148조5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가 1년 예산 대비 40%에 맞먹는 수준이다. 현금성 자산은 기업이 쌓아놓은 현금과 만기 1년 미만의 단기금융상품을 합한 금액이다.

1분기 현금성 자산 증가율도 눈에 띄게 늘었다. 전체 규모로는 올해 국가 예산(358조원)의 42% 수준으로, 5년 전인 2009년(95조1000억원)보다 56.1%(53조4200억원) 증가했다.
 
자금유치 두고 은행 부서 간 '실랑이'

저금리·저성장 기조로 은행권 내부 풍경도 바뀌고 있다. 기업예금 유치를 두고 영업부서와 이 돈을 굴려야 하는 자금부서가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는 것.

대기업은 은행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VVIP 고객이다. 만약 국내 10대 그룹 중 한곳이라도 은행에서 자금을 뺀다면 해당 은행은 적잖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대기업들은 각 그룹별로 주거래은행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2~3곳 이상의 은행과 거래한다. 워낙 자금규모가 크다 보니 한 은행과 거래하면 리스크가 크고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해도 기업이 요구하는 사항을 은행이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 이 때문에 은행 내부에서 기업자금을 두고 심심찮게 실랑이가 벌어진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은행 지점장은 "자금을 담당하는 대기업 임원을 만나려면 적어도 2~3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면서 "신규대출이나 기업예금 예치 등 실적을 위해 힘들게 영업을 하면 자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종종 퇴짜를 놓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정말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점장은 "본점에서 (기업예금을) 거절하면 기업담당자를 설득하고 달래야 하는 일이 우리 몫"이라며 "지금은 영업을 해도, 안해도 힘든 계절인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성승제
성승제 bank@mt.co.kr  | twitter facebook

금융을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금융 출입 기자입니다. 독자님들의 아낌없는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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