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저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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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이름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입니다. 줄여서 ‘단통법’이라고 부르죠. 대한민국 가계 통신비 절감을 책임지라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과정엔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이리저리 모양을 내고, 틀을 갖추기 위한 논의들이 오갔죠. 그런데 아직 모양이 덜 갖춰진 채 무더기로 법안이 통과되면서 세상에 덜컥 나오게 돼버렸습니다.

10월 1일, 제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날입니다. 그날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곤란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구매액이 크게 올라 더 이상 휴대전화를 사지 않았죠. 대리점에는 손님이 없고, 제조사는 휴대전화를 팔지 못했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은 정부 압박을 받자 저의 부족한 점을 메꾼다며 보조금을 조금 올리거나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급기야 저를 세상에 나오게 한 국회의원들마저 다시 고쳐야 한다면서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세상에 나온지 보름여 만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제 이름은 단통법입니다. 이제는 ‘전국민호갱법’이라고 불리고 있죠.


 
단말기 유통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단말기 유통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단통법이 시행 보름 만에 소비자·대리점·이통사·제조사 모두에게 '계륵'으로 전락했다. 단통법 부작용이 통신업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자 단통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과연 단통법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최근 나오는 단통법 보완책은 ‘분리공시 도입’과 ‘요금인가제 폐지’ 주장으로 압축된다. 분리공시 도입의 경우 여당 일부와 야당이 함께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개정안 통과까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여당도 부작용은 인정하지만 일부에서는 아직 개정까지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또한 삼성전자도 글로벌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분리공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분리공시란 보조금을 단말기 제조사의 판매장려금과 이동통신사의 요금 할인액으로 구분해 공시하는 것이다. 판매장려금이 공개되면 글로벌시장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게 삼성전자의 주장이다.

반면 분리공시를 지지하는 이들은 제조사의 단말기 가격에 끼어있는 거품을 추산할 수 있어 단말기 가격 인하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통사·제조사 불공정 거래를 심사한 과정에서 드러난 단말기 가격 구조는 원가를 제외한 나머지 비용이 판매 장려금으로 책정돼 있었다. 예를 들어 90만원의 단말기 원가는 29만원에 불과한데 판매 장려금에 61만원으로 책정된 것이다.

통신요금 인가제 역시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통사들은 불편한 속내를 보인다. 제조사의 출고가 인하가 앞서야 한다는 입장 때문이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정부가 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는 경우 정부의 사전 인가를 받도록 규제한 제도다. 현재 유선부문은 KT, 무선부문은 SK텔레콤이 통신요금 인가제 대상 사업자다.

당초 통신요금 인가제는 후발사업자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이는 23년 전인 1991년 제정된 법안으로 현재는 이통사의 과점체제와 담합구조를 보장해주는 보호막으로 변질돼 있다는 지적이다. 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제 인가과정에서 가격을 높게 책정하게 되고 후발업체들은 이와 유사한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 상황에서 단통법은 요금인가제 폐지나 분리공시 등으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모두에게 계륵인 법안은 이미 실효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효주
박효주 hj0308@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위크 박효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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