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국민참여재판'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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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발생한 '수천억원대 재력가 살인사건'이 큰 충격을 안겼다. 현직 시의원이 10년지기 친구를 통해 청부살해한 사건인 데다 이 시의원이 친구에게 자살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발표됐기 때문.

경찰에 따르면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은 재력가 송씨로부터 부동산 용도변경을 위한 로비자금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았다가 일 처리가 지연돼 금품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압박을 받자 친구 팽모씨에게 범행도구를 직접 제공하며 살인을 청부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지난 10월27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406호 법정에서 이뤄졌는데 김형식 시의원에게 유죄선고가 내려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재판부는 살인교사 혐의를 받은 김 의원에게 무기징역, 김 의원의 지시를 받고 재력가를 살해한 팽씨에게는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김의원 측은 "억울하다. 검찰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이 재판은 김 의원의 요구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9명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김 의원에 대해 유죄를 평결한 것이다. 양형 의견에 대해서는 배심원 2명이 사형, 5명이 무기징역, 1명이 징역 30년, 1명이 징역 20년을 제시했다. 김 의원 측 항소로 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재판의 경우 김형식 시의원 사건처럼 피고인이 직접 신청할 수도 있고 검사가 신청할 수도 있다.

 
[이건희칼럼] '국민참여재판' 어떻게 생각하나요

◆급증하는 국민참여재판

국민참여재판제도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지난 2008년 도입됐다.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은 지난 2008년 2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강도 상해사건이었다. 퀵서비스 배달업무를 하던 중 교통사고를 낸 피고인은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썼다가 빚 독촉에 시달리며 생활이 어려워지자 셋방을 구하는 것처럼 가장해 피해자 집에 들어가 재물을 갈취하려고 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에 과도를 들이대며 돈을 요구하자 피해자는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고 강도행각은 미수에 그쳤으나 피해자에게 3주간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혔다.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피고인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형을 제시했고 재판부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출처: 대구지법 2008.2.12 선고 2008고합7 판결).

시행 첫해인 지난 2008년에는 64건에 불과했던 국민참여재판이 2009년 95건으로 늘었고 이후 2010년 162건, 2011년 253건, 2012년 274건 등으로 급증세를 보였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은 해당 지방법원 관할구역 내 만 19세 이상의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한다. 다만 배심원 개인의 경력 또는 했던 일 등이 공정한 재판 진행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제외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법원에서 통지한 선정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므로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꼭 참석해야 한다.

패션을 전공하는 20대 중반의 여성인 필자의 조카도 근래 어떤 형사재판에서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대학생인 조카가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무작위로 선정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배심원으로 참가하면 처음에는 법에 대해 문외한인 자신이 재판에 참여해 배심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재판장은 배심원들로부터 법 이론이나 법리적 해석을 듣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국민의 상식적 수준의 시각을 참고하려는 것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10월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법정 밖에 취재진들이 몰려있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김형식 서울시의원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10월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법정 밖에 취재진들이 몰려있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90%, 배심원·재판부 판결 동일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의 결정이 바로 선고로 연결되지 않는다.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정도다. 즉 배심원의 유·무죄에 대한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지니는 동시에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이는 배심원이 유·무죄 판단을 내리고 재판부가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미국형 배심제와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장 의견이 배심원들이 내놓은 의견과 다를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명시하면 된다. 대법원의 분석에 따르면 10번의 국민참여재판 중 9번가량은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같았다.

정치적인 사건에서 특정정당의 이해관계와 부합되는 방향으로 배심원이 의견을 제출하고 그와 똑같은 판결을 재판부가 내리자 다른 정당에서 국민참여재판의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사람 중에는 말솜씨 좋은 배심원에 의해 평결이 영향 받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또한 정치적 편향성에 의해 그렇게 주장하는 걸지도 모른다.

국민참여재판은 신청 후 법원에 의해 배제되거나 피고인 스스로 철회할 수 있다. 법률(국민의 형사참여재판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에 따르면 검사의 요구로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결정내릴 수 있으며 범죄의 성질이나 기타 사정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불공평한 판단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도 배제할 수 있다. 신청 5건 중 1건 꼴로 법원이 배제하는 편이지만 최근 그 비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8.7%)은 일반형사사건의 무죄율(3.1%)보다 2배 이상 높은 편이다. 검사 측은 국민참여재판이 양형부당과 배심원의 감정에 호소하는 재판이 많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국민참여재판의 선고공판 이후 검사가 항소하는 비율 역시 매우 높다. 다만 검찰의 높은 항소는 피고인에게 참여재판 신청 시 심리적 위축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이 참여재판에 대해 막연한 불신감을 갖고 있다면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이제 국민의 형사사법참여는 세계적인 추세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60여개 나라가 형사재판의 국민참여제도를 도입·시행 중이다. 국민이 직접 참여해 행해지는 재판이라는 점에서 시민의 법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민주주의 훈련효과도 볼 수 있다. 국민 누구나 한번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으로 선정돼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해본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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