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다(にかた)’의 꿈과 좌절, 그 단맛과 쓴맛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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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동물이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서열과 위계가 존재한다. 별과 별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엔 권력이 작동한다. 권력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영화나 연극판이다. 관객은 대개 주인공만 주목한다.

래서 배우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연의 비상은 조연의 날갯짓이 전제되어야 한다. 멋진 주인공 뒤에는 그의 연기를 돋보이게 해준 조연들이 있다.
‘니가다(にかた)’의 꿈과 좌절, 그 단맛과 쓴맛의 기록

2선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조연은 식당에도 있다. 서울 북창동의 스시집 <화정>에서 니가다(にかた 국물조리사)로 일하는 정경영 씨도 그런 조연의 한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자기 인생의 빛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씨가 끓여낸 국물 맛은 최고 수준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일식집 주방에서 보낸 정씨는 삶의 단맛과 쓴맛을 틈틈이 기록했다. 그렇게 쓴 글이 어느새 200여 편이 넘는다. 물론 백일장에 응모하거나 작가가 되기 위해 쓴 것은 아니다.

그의 글에는 심오한 사상이나 향기로운 문장은 없다. 딱히 어떤 장르라고 못 박기도 애매하다. 심지어 문법이나 철자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글보다 진실함이 가득하다. 성공보다 실패, 밝음보다 어둠에 익숙하게 살아온 65세 일식집 니가다의 가장 정직한 내면의 기록이다.

◇ 경지에 오른 48년 경력 65세 니가다의 국물

정씨는 웬만한 일식집 음식은 모두 능숙하게 조리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장기는 국물을 끓이는 일이다. 그는 수십 가지 기본적인 국물 내는 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재료나 조리법에 따라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어 그가 실제로 만들어내는 국물의 가짓수는 무한대다.

<화정>의 강화정 대표에 따르면 정씨는 주어진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맛과 질은 상당히 높은 국물을 창조해낸다고 한다. 경제성과 효율성에 국물의 깊이와 다양성까지 뚝딱 해치우니 업주 입장에서는 고마울 뿐이라는 것이다.

정씨가 끓여낸 참복지리, 도미대가리 매생이국, 곤이 산마국을 먹었다. 시원하다거나 개운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시원함과 개운함이 우러났다. 일식집에서 국물은 화려한 조명의 대상은 아니다.

진귀하고 값비싼 해산물로 온갖 색감과 조형미까지 갖춘 메인 요리가 즐비한 공간에서 뒷전이기 쉽다. 실제 그가 일하는 주방도 공간적으로 고객과 먼 곳이다. 그러나 조연 없는 주연은 없다. 아무리 메인 요리가 출중해도 그에 걸맞은 국물과 함께 먹어야 메인 요리가 산다.

정씨의 고향은 전남 담양. 열일곱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당시 7남매의 동기를 둔 시골 가난한 집 소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촌형의 소개로 을지로 6가에 있던 일식 전문 식당에 들어갔다. 그에게 돌아온 일은 하루 종일 연탄불 갈고 잔심부름하는 것이 전부였다. 조리 기술을 익혀 일류 조리사가 되려던 꿈은 잠시 접어야 했다.

당시에는 식당 난방과 취사의 주 열원이 연탄이었다. 가정용 연탄보다 컸던 중탄과 대탄을 30회 이상 갈면 하루가 갔다. 틈틈이 물일도 해야 했다. 겨울철 찬물에 손을 담그고 나면 손이 쩍쩍 갈라지고 터졌다. 딱지를 떼면 손등에서 피가 났다.

‘니가다(にかた)’의 꿈과 좌절, 그 단맛과 쓴맛의 기록

이후 정씨는 몇 군데 일식집에서 생선 다루는 법과 튀김 만드는 법을 익히고 군에 입대했다. 1974년 제대 후 입사한 일식집에서 평생의 스승인 한의섭 주방장을 만났다. 그 시절 혹독했던 주방장들과 달리 한 주방장은 말수가 적고 인자했다고 한다. 아랫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처리는 깔끔하고 빈틈이 없었다. 바로 지금의 정경영 씨 모습이다.

◇ 지나온 세월과 일상들, 국 끓이듯 담담히 적은 글 200편
조리사의 꿈은 자신의 업소를 직접 운영해보는 것이다. 정씨에게도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는 가든호텔 일식당과 63빌딩 일식당에서 니모노(煮物, 삶거나 조림 요리)와 수석조리사 생활을 거치면서 자신감을 쌓았다.

대학이나 유학까지 다녀온 셰프들 틈에서 ‘국졸’인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웬만한 음식 조리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의 출중한 조리 실력을 인정해 주변에서도 창업의 길로 등을 떠미는 사람이 많았다. 더구나 천성이 착하고 바탕이 성실한 그의 성공을 아무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47세의 나이에 드디어 첫 내 점포의 꿈을 실현했다. 담양에서 상경한 지 30년 만의 일이었다. 여의도 KBS 방송국 근처에 일식집을 차렸다. 자금 조달에 무리를 했지만 역시 그의 솜씨 덕분에 가게는 잘 됐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문 연지 1년 조금 넘었는데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새로 온 주인은 점포를 비워줄 것을 통보했다.

집도 팔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의 처지,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하는 희망의 싹, 장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그의 설렘, 이 모든 것은 건물 새 주인에겐 일고의 가치도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 엄청난 손실을 보고 문을 닫았다. 억울하고 분했다. 소송을 걸어볼까도 생각하다 그만뒀다. 경제적 타격도 문제였지만 마음과 함께 몸이 더 피폐해졌다. 정씨는 이때부터 혈압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두 번 더 창업을 했다가 쓴맛을 봤다. 한 번은 마포에 작은 일식집을 차렸으나 예고 없이 닥친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또 한 번은 청계천변에 거액의 권리금을 주고 개업했다.

예전부터 그의 솜씨를 알던 손님들을 중심으로 단골층이 형성되는 등 대박의 조짐이 보였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점포가 헐리는 바람에 다시 접어야 했다. 권리금 손실에다, 충분한 보상은커녕 원상복구 비용까지 물어줬다.

세 번의 사업 실패로 돌아온 것은 마음의 상처와 혈압약과 각종 고지서들뿐이었다. 뻔히 오를 줄 알면서도 집을 판 적도 있고, 빚을 갚기 위해 무리해서 일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족 간의 따뜻한 결속과 화목이었다. 남편과 아버지가 이런 지경에 이르면 대개의 경우, 가정 내에서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정씨의 두 아들과 부인은 달랐다.

변함없이 그를 위로했고 감싸줬다. 아들은 전교에서 1, 2등을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도 했다. 부인도 빚을 갚기 위해 식당일을 다니면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당신은 항상 최선을 다했으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할 때가 그로서는 가장 미안한 순간이다.

정씨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요즘이 가장 마음 편안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끔 마음에 풍랑이 일 때면 종이와 연필을 꺼내들었다.

식구들의 사랑과 정이 한 없이 고마울 때, 뜬금없이 지난 세월들이 되살아날 때, 주방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일 등 그때그때 내면에 떠오른 정서와 생각들을 건져 올렸다. 그렇게 빼곡히 기록한 글들이 200여 편이 넘는다. 그가 묵묵히 끓여낸 것은 국물이 아니라 어쩌면 짭조름한 그의 48년 니가다 인생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강동완
강동완 enterfn@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머니S' 편집국 선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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