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PD의 톡쏘는 이야기] 눈감고 맛봐도 1등 맥주

탁재형 PD의 톡쏘는 이야기 / 체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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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바야흐로 물 건너온 맥주의 전성시대다. 해외 여행이 대중화되었듯 외국 맥주 역시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신토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는데는 이유가 있을터. 외국 물 좀 먹어본 여행다큐PD가 이들 맥주를 국적 별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남자, 여행 책보다 술에 대한 책을 먼저 쓴, 고수였다.
지난해 7월, MBC의 소비자 프로그램 불만제로에서는 국내·외 맥주 12종에 대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결과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뉘었다. 한국 맥주가 최하위 인근에 탄착점을 형성하는 사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이었다.

독일 맥주, 일본 맥주에는 익숙해도 체코 맥주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할 만한 사람도 이 맥주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필스너 우르켈은 체코어로 '오리지널 필스너'라는 뜻이다.

1930년대 이래 70여년간 한반도에서 '맥주' 하면 노랗고 투명하고 탄산감이 강한 액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액체의 본디 이름은 '필스너'(Pilsner)였다. 필스너는 이 맥주가 태어난 고장 즉 플젠(Plzen 독일어로는 필젠 Pilsen) 지역의 맥주를 가리킨다.

[탁PD의 톡쏘는 이야기] 눈감고 맛봐도 1등 맥주

◆ 맥주의 성지 '플젠'

이 플젠이 있는 곳이 바로 체코다. 하지만 체코의 플젠이 처음부터 맥주의 성지였던 것은 아니다. 영세한 지역 주민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맥주를 만들어 팔다 보니, 원료의 함량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맛도 들쭉날쭉했다.

이를 참다 못한 시민들은 1838년 저질 맥주가 들어있는 나무통 36개를 시청 광장에서 쏟아버리는 시위에 나선다. 이는 지역의 양조업자들에겐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들지 않으면 너희도 저런 꼴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플젠의 양조업자들은 독일의 양조 기술자 요제프 그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당시선 남부 독일에서 인기를 끌던 냉장 상태의 하면발효법을 맥주 양조에 적용했다. 원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플젠 인근에서 자라나는 보리와 홉은 맥주 양조에 최적인 것으로 진작부터 알려져 있었으니까. 이렇게 해서 탄생한 '필스너' 맥주는 전 유럽을, 더 나아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현재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맥주의 3분의 2가 '필스너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원조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필스너' 뒤에 '우르켈'(오리지널)을 붙여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코의 프라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플젠에는 1842년 처음 문을 연 이래 요제프 그롤의 레시피 그대로 생산을 계속해 온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가 있다. 제품 라벨에 묘사된 두개의 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지하 창고의 나무통에서 갓 생산된 맥주를 따라 마실 수 있어 여행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투어의 다른 부분은 여타 브루어리에서 진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하 셀러(술 저장고)로 내려갈 때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맥주 맛이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페이스북에 <마포술꾼의 유럽성지술례> 시리즈를 연재하는 신동호씨의 이야기다.

"오랜 세월 브루어리에서 일한 듯한 할아버지가 직접 따라 주는데…. 정말 당시의 여행에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한장면이었어요. 맥주의 맛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곳에서 맛보게 되는 것은 방금 숙성을 마친 맥주다. 일반적으로 맥주를 장기 유통하기 위해선 필터로 맥주 안에 남아있는 맥아 성분을 걸러내고 열처리해 효모균의 활동을 멈춘다.

어느 정도는 맥주의 풍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더기가 듬뿍 들어있는 상태의 찌개와 그렇지 않은 찌개를 생각해 보면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플젠 양조장의 지하에선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필스너 맥주를 마셔볼 수 있다.

이 맥주의 유통기간은 5일에 불과하다. 맥주 안에 살아있는 효모가 활동을 계속해 시간이 지나면 맥주 맛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은 체코 플젠 현지를 방문한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탁PD의 톡쏘는 이야기] 눈감고 맛봐도 1등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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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쓴 맥주와 단 맥주 사이 '균형의 미학'

지난 6월3일, 서울 신사역 인근에선 이 특별한 맥주를 마셔볼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유럽 이외의 지역에선 최초로, 체코 현지로부터 맥주가 담긴 나무통 다섯개를 공수한 것이다. 체코 대사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내에서 맥주통이 터질 염려가 있어서 일반 항공기로는 운송할 수 없어요. 주한 체코대사가 외교 채널을 통해 맥주가 운송될 수 있도록 힘을 써줬죠. 미국의 필스너 우르켈 브랜드에서도 저희가 이 행사를 치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부러워하고 있어요"

필스너 우르켈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브밀러브랜드코리아 최원지씨의 말이다.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행사를 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진행했을 정도로, 현재 한국시장에서 필스너 우르켈의 성장세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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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체코 현지에서 궁금해 하더라고요. 체코 미디어에서 취재 요청이 왔었어요. 한국시장에서 이렇게 잘 팔리는 이유가 뭔지." 여기에 대한 답을 최원지씨는 어느 정도는 아는 눈치다.

"체코 맥주는 '라이프'라는 단어로 표현을 많이 해요. 체코의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 1위인 걸 아시나요? 그 정도로 사람들의 삶에 맥주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요."
실제로 프라하의 펍에서는 영수증에, 우리로 치면 '바를 정'자 같은 기호로 표시한다고 한다.

앉은 자리에서 7~8잔은 쉽게 비우는 문화이다 보니, 계속 고쳐 써야 하는 숫자보다는 기호로 표기하는 쪽이 더 편해서다. 그 정도로 '물처럼' 마시는 맥주이다 보니 쉽게 질리는 맛이어서는 안 된다.

품질도 당연히 높게 유지돼야 한다. 늘 입에 달고 사는 음식일수록 작은 변화에도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기에. 그래서 체코 맥주는 '균형'이 잘 맞다.

발효되지 않고 남아있는 몰트의 단맛. 체코 홉 특유의 쓴맛. 그리고 발효 과정에서 생겨난 빵과 과일의 향기까지. 이 정도면 '삶의 맛'이라 불러도 상관없지 않을까.

맥주 행사장에서 마주친 페터 드보락 필스너 우르켈 글로벌 브랜드 디렉터는 "사람들은
보통 첫 모금이나 두 번째 모금에서 이 맥주를 다 마실지, 반만 마실지,다음 잔을 주문할지 결정하죠. '질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맥주 양조자들이 추구하는 '성배'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균형의 문제죠. 사실 아주 쓴 맥주나 아주 단 맥주를 만드는 건 쉽습니다. 그 사이의 균형이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라고 말했다.

강렬한 에일 맥주와 어딘지 좀 부족한 느낌의 일반 맥주. 그 사이에 체코 맥주가 어느샌가 물처럼 스며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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