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네 고객님, 저는 감정노동자입니다"

 
 
기사공유
  • 카카오톡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네이버 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공유
  • url 공유

# 서울의 한 대형할인마트. 한 고객이 물건을 들고 유유히 계산대 옆 출입문으로 빠져나온다. 이를 지켜본 직원이 물건에 스티커가 붙어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계산을 마친 물건은 마트 직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스티커를 부착한다. 그러자 고객은 자신을 도둑으로 몰았다며 직원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물건에 스티커가 부착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소동은 1시간가량 계속되다가 결국 직원이 사과를 한 후에야 일단락됐다.

#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근무 중인 A씨(45)는 평소 고객과 농담을 잘 주고받는다. 때마침 단골고객이 쇼핑을 끝낸 후 A씨에게 다가와 계산을 요구했다. 평소 농담을 주고받아온 터라 A씨는 아무렇지 않게 고객의 말투를 흉내내며 계산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고객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A씨에게 고함을 쳤다. 2시간 동안 이어진 호통소리에 A씨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 사과를 했고 회사로부터 경고까지 받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고객이 왕인 세상, 웃음 뒤에 숨겨진 눈물을 흘리는 이들.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이른바 ‘감정노동자’들이다. 블랙컨슈머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종사하는 직원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 일부러 꼬투리를 잡아 직원들을 괴롭히거나 상상할 수 없는 폭언도 일삼는다. 때론 직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전화로 업무를 보는 텔레마케터 직원들은 더 심각하다. 각종 폭언과 성희롱에 노출돼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730개 직업 종사자 2만5550명의 감정노동 강도를 비교·분석한 결과 화난 고객을 상대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텔레마케터가 꼽혔다.

또 안전보건공단이 올해 발간한 감정노동자의 직무 스트레스 보고서를 보면 서비스직 종사자 3065명 중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26.6%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감정노동자들이 하소연 할 곳은 마땅치 않다. 스트레스로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면 본인 스스로 일을 그만두는 게 유일한 탈출구다.

◆블랙컨슈머에 종업원만 ‘울상’

블랙컨슈머의 갑질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의 스와로브스키 매장 직원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객에게 사과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상엔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점원 2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모습이 담겼다. 맞은편 의자엔 한 여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 서비스 문제를 이야기하며 점원들을 다그치고 있다. 당시 고객은 귀금속 무상수리를 요구했지만 업체 측이 규정상 유상수리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고객 갑질논란 영상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고객 갑질논란 영상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갑질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칫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는 해당기업이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기업이미지 역시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소비자 민원이 들어오면 기업들은 숨기기에 급급하다. 실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가 블랙컨슈머에 거는 소송 건수는 연간 한두건에 불과하다.

문제는 악질 고객의 폭언과 폭력을 매장 점원이 모두 뒤집어쓴다는 점이다. 기업은 가급적 고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직원들을 교육시킨다. 상습적으로 폭언을 퍼붓는 소비자의 경우 여러 증거물을 확보, 응대를 거절하도록 직원에게 안내하는데 실제로 이를 지키는 사례는 미미하다는 게 내부직원들의 전언이다.

백화점의 한 직원은 “고객이 폭언과 협박을 하면 직원이 잘못하지 않았어도 사과하는 등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며 “우리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커지면 그때서야 상급부서에 보고한다”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고객과 마찰이 생기면 매장관리자 등 본사 직원으로부터 경고를 받는다. 설사 경고를 받지 않는다 해도 마찰발생 자체만으로 상급부서에 찍힌다”며 “고객의 폭언은 참으면 그만이지만 회사에 찍히면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대형마트 한 직원도 “일부 고객이 다른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우리에게 푸는 경우가 많다”며 “고객과 마찰이 생길 때 말 한마디라도 실수했다가는 오히려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이다. 이는 암묵적으로 회사가 직원에게 내린 블랙컨슈머 대응 가이드라인”이라고 씁쓸해했다.

◆폭언·협박해도 처벌기준 모호

블랙컨슈머에 대한 처벌기준은 어떨까. 먼저 일본으로 넘어가보자. 일본의 한 볼링장에서 고등학생들이 여직원의 서비스가 불쾌하다며 직원을 윽박질러 무릎을 꿇게 한 후 사진까지 찍어 트위터에 올린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트위터에 “너무 재미있다. 결국 볼링을 치지 못했다”며 사진과 무개념 글까지 남겼다.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일본 법원은 강요죄와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27만엔(27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처벌기준이 모호하다. 폭행이나 업무방해죄가 성립되면 형사처벌이 가능한데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처벌기준은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사태의 경우 매장 직원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었기에 법적 대응을 하려고 해도 폭행이나 협박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업무방해죄도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진 변호사(법무법인 이인 대표)는 “담당 수사관에 확인한 결과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며 “폭행이 없었고 (점원이)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는 점에서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굳이 처벌을 원한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위자료도 기껏해야 100만원 안팎일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 입장에선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지만 서비스를 받을 만한 자세나 인격을 갖추지 못한 일부 고객이 문제”라며 “폭행과 폭언 등 갑질문화를 조장하는 성숙지 못한 소비자에게는 좀 더 엄격한 법적 잣대를 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성승제
성승제 bank@mt.co.kr

금융을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금융 출입 기자입니다. 독자님들의 아낌없는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 코스피 : 2476.86상승 23.718:05 03/31
  • 코스닥 : 847.52하락 2.9618:05 03/31
  • 원달러 : 1301.90상승 2.918:05 03/31
  • 두바이유 : 78.08상승 0.318:05 03/31
  • 금 : 1986.20하락 11.518:05 03/31
  • [머니S포토] 금융위원장?금감원장, 5대 지주회장과 만나…
  • [머니S포토] 박보검·리사·뷔, MZ세대 핫 아이콘 한자리에…
  • [머니S포토] 국내 최대 모터쇼 '서울모빌리티쇼'…2년만에 재
  • [머니S포토] 역대 최대... 163개 기업 참여 '2023 서울모빌리티쇼'
  • [머니S포토] 금융위원장?금감원장, 5대 지주회장과 만나…

칼럼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