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3년 전 발급 과거 합격증 '최광지 홍패', 29일까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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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지 홍패'

고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직전인 1389년 창왕이 과거 급제자인 최광지에게 발급한 합격 문서인 '홍패'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문서는 전북 부안에 위치한 전주 최씨 문중의 재실인 유절암에 조선 시대 고문서들과 함께 보관돼 있다 최근에 발견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 시대 홍패는 1205년 4월 발급된 장양수 홍패(국보 제181호)와 1305년 5월 발행된 장계 홍패(보물 제501호)를 비롯해 모두 6점뿐이다.

최광지 홍패는 가로 세로 각 64㎝인 정사각형으로 '성균생원 최광지 병과 제삼인 급제자'와 '홍무 이십이 년 구월 일'이라는 문장이 두 줄로 적혀 있으며 '고려국왕지인'인장이 찍혀 있다.

박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실 연구원이 작성한 발제문에 따르면 최광지는 1377년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시대에도 집현전 제학을 지낸 최담(1346~1434)의 장남으로 생몰 연도는 알 수 없으며, 1389년 '병과 제3인'으로 과거에 합격했다. 당시 문과 등제는 을과, 병과, 동진사로 구분돼 있었으며 최광지의 성적은 전체 6등에 해당된다.

박 연구원은 "최광지 홍패는 고려 시대 문서 가운데 '고려국왕지인'이라는 인장이 찍힌 유일한 사례"라면서 "고려국왕지인 어보는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선 후 초대 황제인 홍무제가 1370년 공민왕에게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나온 고려시대 홍패는 왕명을 받은 관사가 발급한 데 반해, 최광지 홍패는 왕명을 직접 시행한 문서로서 완결된 형태를 갖췄다"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상단에 '왕지'라는 문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광지 홍패가 여말선초의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지만, 사회 체제를 급격히 바꾸지 않고 고려의 제도를 상당 부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세종 이전에 발급된 조선 초기의 홍패에는 교지 대신 왕지라는 용어가 사용됐다"면서 "경국대전이 반포되기 전까지는 고려시대의 문서 양식을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광지 홍패는 오는 29일까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연구원 장서각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시권' 특별전에서 실물을 볼 수 있다.

/자료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김수정
김수정 superb@mt.co.kr  | twitt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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