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명소] '뚜벅뚜벅' 소도 목동 없이 오를 민둥산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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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소금강길 계곡물. 지난주 내린 눈으로 겨울 같지 않게 물이 많이 불어나 있다.
정선 소금강길 계곡물. 지난주 내린 눈으로 겨울 같지 않게 물이 많이 불어나 있다.
전국에 많은 눈이 내린 12월 첫 주, 불현듯 강원도의 설산이 보고 싶었습니다. 겨울 산행에 비교적 많은 준비가 필요치 않은 정선 민둥산 일대를 트레킹하기로 하고, 가장 완만한 증산초교코스를 택했습니다.

강원 정선의 민둥산은 1100여 미터의 낮지 않은 산이지만 무척 오르기 쉬운 산입니다. 정상까지의 등산로는 대부분 흙길일 뿐만 아니라 산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져 있어 둘레 길처럼 여유 있게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정상에는 산의 이름처럼 나무가 없고, 일대에는 억새만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이처럼 억새가 많은 것은 오래전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이 산나물이 많이 나게 하려고 매년 한 번씩 불을 질러왔고, 화전이 금지된 이후로 나무 한그루 없는 억새천국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눈길을 붙잡는 것은 나뭇가지에 휘감겨있는 원색의 헝겊들입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눈길을 붙잡는 것은 나뭇가지에 휘감겨있는 원색의 헝겊들입니다.
산길을 오르다 저는 그만 아연하였습니다. 오르는 내내 길옆 나뭇가지에는 산악회를 알리는 헝겊리본들이 걸음걸음마다 매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같은 일행들이 혹 옆길로 새지 않을까 염려되어 안내표식을 해둔 것인 듯합니다. 민둥산은 억새축제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답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곳입니다. 돌투성이의 험한 악산과 달리 부드러운 흙길의 연속입니다. 아무리 초보 산행일지라도 완만한 산길을 뚜벅뚜벅 걷다보면 소(牛)도 목동 없이 정상에 오를 만한 평이한 산길입니다. 이렇듯 각 산악회마다 등산길 안내표식을 주렁주렁 가지에 매어놓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또 매어놓고 다시 회수하지 않은 행태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마저 일었습니다.

백년 이백년 누군가 떼어내 줄때까지 썩지도 않을 비닐조각을 매달고 있어야 하는 나무의 입장은?
백년 이백년 누군가 떼어내 줄때까지 썩지도 않을 비닐조각을 매달고 있어야 하는 나무의 입장은?
도시인은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도회에서 머리와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고 비우려고 자연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 비닐헝겊 조각들은 눈에 잘 띄는 원색입니다. 눈을 감고 오르내리지 않는 한 원색의 헝겊과 거기에 새겨진 글씨가 뇌리에 박히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헝겊조각들은 마치 도시의 광고물과 같이 지나치는 모든 이에게 그 이름을 알립니다. 이렇듯 만인에게 자기들의 후안무치하고 무지함을 드러내놓고 광고하는 일부 산악회단체의 대범함은 이곳에서만이 아닙니다.

전국의 등산로마다 나뭇가지에 널린, 회수되지 못한, 유기물 쓰레기처럼 썩는 것도 아닌, 그 엄청난 비닐조각들이 언제까지 어디에 가서 쌓일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백년 이백년 누군가가 떼어내 줄 때까지 제 몸 같지 않는 썩지 않는 헝겊을 가지에 붙이고 있어야 하는 나무들은 또 무슨 죄입니까.

1930년대 노다지시대의 상징과 같은 화암동굴
1930년대 노다지시대의 상징과 같은 화암동굴
민둥산을 서둘러 내려온 덕분에 근처의 화암동굴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역사책에는 자세히 등장하지 않지만 1850년대 미대륙의 골드러시시대를 방불케 하는 시기가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시대에 황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기에 식민정부는 대대적인 산금(産金) 정책을 펼쳤고. 한반도의 골드러시, 금광광풍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금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세집건너 한집이 노다지를 찾아 금광으로 떠났다 합니다. 식민지에서의 금광열풍, 일확천금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는지는 당시의 김유정, 채만식 등의 소설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금을 캐다가 발견한 화암동굴내의 종유석
금을 캐다가 발견한 화암동굴내의 종유석
정선화암동굴은 우리 할아버지세대를 광산으로 몰아갔던 노다지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을 채굴하던 천포광산과 천연동굴로 이뤄져 있는데, 지금은 당시 금을 캐던 모습을 잘 재현해 놓았습니다. 다만 그때의 광부들에게는 지옥과 같았을 그 곳을 관광하듯 스쳐보면서 현대의 노다지를 쫓는 우리의 모습과 중첩되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누런 노다지는 우리를 외면하고 일확천금의 꿈은 항상 백일몽으로 끝을 맺으니까요.

☞ 글 및 사진 제공: 석은주씨
충북 단양 출생. 경기 고양시에서 생활하며 주말이면 트레킹 동호인들과 전국을 누빈다.
충북 단양 출생. 경기 고양시에서 생활하며 주말이면 트레킹 동호인들과 전국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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