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피플] '유리천장' 깬 중졸 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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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갓집 맏며느리, 누구 엄마, 누구 아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랜 세월 누구의 무엇으로 불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이 갖고 싶어졌다. 집 밖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로부터 23년. 수줍음 많던 한 시골소녀가 국내 보험업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손해보험업계 최초로 여성 정규임원 자리에 오른 김남옥 한화손해보험 상무(61)의 이야기다. 지난달 27일 양재역 부근 한화손보빌딩 5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각계에서 보내온 각종 승진축하 난과 화환으로 가득했다. 사무실 진열대에는 김 상무의 이력이 담긴 기념패들이 놓여 있었다.

“아직도 꿈인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봐요.” 김 상무가 웃으며 말했다. 중졸 학력, 나이, 성별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으며 끊임없이 유리천장을 두드려온 김 상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37세 늦깎이 설계사의 인생2막

“제 고향은 경남 하동군입니다.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곳이죠.” 김 상무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꺼냈다. 그 무렵엔 ‘여자가 무슨 공부야’, ‘제 나이에 시집가서 애 낳고 잘 살면 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어김없이 그는 22세에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며 두 아들을 키웠다.

“그땐 그러려니 하며 그냥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사촌언니가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늦게라도 제 이름을 찾고 싶어서 보험영업을 시작했죠.”

김 상무와 한화손보의 인연은 꽤 길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다 사촌언니의 권유로 1992년 보험영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신동아화재(한화손보의 전신)의 일원이 됐다. 그때 그의 나이 37세였다.

“당시 경남 하동의 군민이 5만명이 채 안 됐는데 직원을 30명이나 뽑아 관리했어요. 하동의 시장점유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데 정말 죽기 살기로 일했죠. 그러다 94년에 정식 직원이 됐고 영업소장을 맡았어요. 생각해보면 학벌·나이·성별을 따지지 않고 현장과 성과 중심으로 인사하는 회사 덕분에 정규직도 되고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탄탄대로는 거침없었다. 한화손보에서 설계사로 시작한 김 상무는 정규직 영업소장으로 발탁돼 대리부터 과장, 차장, 부장까지 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동안 지점장 12년, 지역단장 8년, 지역본부장 2년을 역임하며 한번 타기도 어렵다는 ‘연도대상’을 11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모든 게 수월했을 리 없다. 관리자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중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중졸 학력을 교묘히 무시하는 발언을 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홀로 지리산 산행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학력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조건일 뿐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자’. 수없이 되새기며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었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끈기의 원동력은 ‘모성애’


“남들이 볼 때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성이 1%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특히 관리자가 되면서 어머니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아무리 못난 자식도 포기하지 않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후배들이 잘할 때까지 기다리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독려했어요.”

사람을 움직이는 리더십이 궁극적으로는 모성애와 유사하다는 해석이다. 2013년 이뤄낸 창원지역단 분할은 그의 용기와 끈기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김 상무는 2012년 1월 창원지역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지역단 분할을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창원지역단 직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직원을 모아 놓고 목표를 밝혔지만 다들 ‘그러다 말겠지’식의 반응이었다. 이미 같은 지역을 거쳐간 단장들이 의례적으로 도전해온 묵은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보험설계사, 지점장, 총무 등 같이 일하는 전직원과 목표과제를 공유하며 각각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정하고 “함께 이뤄내자”고 설득했다.

특히 보험설계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1년 만에 지역단 분할규정을 충족했고 실무과정을 거쳐 2013년 5월1일자로 마산지역단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는 한화손보 최초의 지역단 분할이었다.

올해 소망은 ‘제2의 김남옥’ 탄생

김 상무의 올해 소망은 금융권에서 ‘제2의 김남옥’을 많이 보는 것이다. 그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 후배들이 정말 많았는데 스스로 한계를 긋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꾸준히 가던 길을 갔더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텐데 그들을 떠나 보낼 때마다 무척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기혼 여성들은 가정을 돌봐야 해서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유리천장’이 없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스스로 본인의 한계를 정하는 게 더 큰 ‘유리 천장’이 아닐까요?”

특히 여성이기 때문에 원칙과 균형을 유지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녀의 입학이나 대학입시 등 인생의 어느 대목에선 가정이 더 중요해질 때가 있는데 그때 잘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다.

“늦은 나이에 20여년간 정신없이 일하면서 희로애락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인지 은퇴 이후 또 다른 직업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은퇴 후에는 저를 지지해주고 많이 도와준 가족의 조력자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김남옥 상무의 조언 세 가지
1.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말라.
2. 목표를 세웠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려라.
3. 1%의 가능성만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


☞ 프로필
▲1955년 경남 하동 출생 ▲1977년 양보중학교 졸업 ▲1992년 신동아화재(현 한화손보) FP ▲1994년 지점장 ▲2006년 경남·부산·창원·마산지역단 단장 ▲2013년 12월 부산지역본부장 ▲2014년 4월 한화손보 상무보 승진 ▲2015년 1월 경인지역본부장 ▲2015년 12월 강남지역본부장 ▲2016년 1월 한화손보 상무 승진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421호·제4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효선
박효선 rahs1351@mt.co.kr  | twitter facebook

안녕하세요. 증권팀 박효선입니다. 많은 격려와 질책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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