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서른살 백화점VIP 그녀의 쇼핑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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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과거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사치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만연해졌다.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 소비자 중에서도 고가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이 같은 사치행태는 불황의 한파도 비껴가고 있다. <머니위크>는 소비자들이 사치를 쫓는 이유와 사치행태를 부채질하는 럭셔리마케팅 등 사치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했다.

그는 어지간해선 가격표를 보지 않았다. 한병에 30만원이 넘는 향수를 사면서도 점원에게 가격을 물어보지 않았고 ‘내일 입을’ 92만원짜리 스웨터를 사면서도 가격표보다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는 데 몰두했다.

상위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명품관의 ‘20대80 법칙’. 상위 20%의 소비는 경기불황과 관계없기 때문에 명품시장에 불황이란 없다. 한때 ‘명품쇼핑족의 성지’로 불리던 서울 압구정동 A백화점의 VIP고객을 만나 그의 쇼핑에 동행했다.

◆30세 VIP 그가 쇼핑하는 법

지인을 통해 어렵사리 한사람을 소개받았다. 개인사업을 하는 이소윤씨(30·가명)는 중견기업 오너의 딸이다.이씨는 현재 A백화점의 VIP로, 백화점이 마련한 기준상 네번째 등급인 ‘파크제이드화이트’에 해당한다. 연간 3500만원 이상을 쓰는 사람이 속하는 등급인데 종전에는 두번째 등급인 PSR화이트(연간 7000만원 이상 사용)와 3번째 등급인 파크제이드블랙(연간 5000만원 이상 사용)을 오갔으나 지난해 개인사업을 준비하며 해외에 자주 나가다보니 쇼핑할 시간이 없어 처음으로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평일 오후 2시, A백화점 앞에서 그를 만났다. 세련됐지만 생각보다 수수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아는 분 부탁으로 나오긴 했는데 뭐 특별히 살 건 없다”며 “요즘 날씨가 추워 내일 입을 스웨터나 하나 사려고 하는데 이런 걸 가지고 기사를 쓸 수 있겠냐”고 말했다.

스웨터 하나를 산다던 그는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에스컬레이터로 직행하지 않고 1층의 뷰티매장 사이를 걸어간다. 그는 기자에게 “취재한다고 해서 기존에 사용하는 제품들을 좀 사보려고 한다”며 자신이 이용하는 기초화장품 S브랜드의 매장으로 향했다.

매장에 가까워지자 점원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더니 스킨케어제품을 이것저것 꺼내놓는다. 이씨와 점원은 제품이 아닌 개인적인 대화를 하면서 결제과정을 마쳤다. 4개 종류의 기초화장품을 구매하고 지불한 가격은 80만원선. 샘플제품을 몇개 챙기는 의외의 소박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커버스토리] 서른살 백화점VIP 그녀의 쇼핑 동행기

화장품에 이어 방문한 매장은 향수매장. C매장으로 향하자 역시 점원이 그를 알아본다. 평소 자주 사용한다는 향수를 1병 달라고 하더니 이어 내친김에 남자친구 선물도 하나 사야겠다며 점원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몇가지 제품을 시향하더니 이내 결정하고는 향수 두병을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가격을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가격은 상관 없냐고 물었더니 “향수는 브랜드마다 가격이 어느 정도 선에서 정해져 있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가 구매한 향수는 두병 모두 30만원 초반대였다. 이어 쇼핑의 목적인 스웨터를 사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는 “4개 정도의 브랜드를 둘러볼 계획”이라며 “친구들과 같이 다니면 이 브랜드 저 브랜드 흉도 보고 비교도 하며 즐겁게 쇼핑하는데 남자분이랑 다니니 확실히 별로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3층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망설임 없이 Z매장으로 향해 점원에게 스웨터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점원은 옆에 서서 친절히 제품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옷 저옷 들어보다가 이내 내려놓더니 점원에게 목례를 하고는 매장을 떠난다. 그는 다른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Z브랜드가 캐시미어니트로 유명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렇게 매장 세군데를 둘러보더니 두번째로 들렀던 V브랜드의 매장에서 스웨터를 구매했다. 쇼핑의 전과정에서 단 한번도 가격표를 보거나 점원에게 가격을 물어본 일이 없었다. 결제 전 점원이 “92만원 결제해드릴게요”라고 말하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가격혜택보다 차별화 원해

쇼핑을 마친 후 지하 식품관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평일 오후임에도 꽤나 사람들이 몰려 번잡한 분위기였다. 이씨는 “라운지로 가면 조용한데 VIP등급이 떨어져서 이용을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A백화점의 VIP전용 라운지는 압구정점의 경우 세번째 등급인 ‘파크제이드블랙’ 회원까지 이용할 수 있는데 지난해 돈을 덜 써(?) 올해 네번째 등급으로 분류된 그는 압구정점을 제외한 다른 지점의 VIP라운지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내심 A백화점의 이 같은 제도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VIP 혜택이 여러 가지가 있어도 실제로 사용하는 건 라운지밖에 없거든요. 2등급까지 가면 개인 방을 마련해놓고 보고싶은 제품을 보여주는 서비스도 있는데 그건 오히려 불편하고요. 5% 할인도 사실 큰 의미가 없고 VIP라운지나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등급을 유지했죠. 그런데 지난해 해외에서 지내며 등급이 떨어져 라운지 사용이 제한되고 보니 이 백화점에 오기가 싫어지네요.”

이 백화점이 진행하는 VIP 초청행사에도 불만이 많다. A백화점 압구정점은 1년에 두차례 백화점 문을 닫고 한정된 시간동안 VIP만을 초청해 신상품을 미리 할인해 판매하는 행사를 여는데 이 행사도 최근에는 초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큰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요즘 이 백화점에서 일상적인 제품 외에 특별한 쇼핑을 할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그는 “집에서 가까워 급하거나 일상적인 용품을 살 때 자주 오지만 ‘큰마음’ 먹고 쇼핑 할 때는 해외로 가거나 다른 백화점, 혹은 프리미엄숍을 이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간 이 백화점을 이용했던 것은 ‘차별화’된 VIP마케팅 때문인데 더 이상 이런 점에서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연간 실적이 부족하면 연말에 수백만원의 쇼핑을 채워서라도 최소 3등급을 유지하던 그가 지난해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VIP마케팅뿐 아니라 제품의 차별화가 사라졌다는 것도 그가 털어놓는 불만 중 하나다. 특히 중국인관광객이 부쩍 늘면서 들어보지도 못한 브랜드들이 많이 입점했다는 것. 실제 몇몇 브랜드 매장에는 중국인만 바글바글하다. 따라서 한때 다른 백화점과 차별화된 브랜드를 배치하며 명품쇼핑족의 ‘성지’처럼 여겨졌던 이곳이 이제는 그저 그런 백화점으로 전락했다고 그는 푸념했다.

그는 “요즘엔 쇼핑을 하며 기분 내고 싶을 때면 청담동 일대의 편집숍을 주로 이용한다”며 “전반적인 가격대가 A백화점보다 비싸지만 최신 트렌드를 다양하게 볼 수 있고 그곳만의 독특한 서비스가 있어 차별화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윤신
최윤신 chldbstls@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 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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