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불황 비웃는 '사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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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과거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사치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만연해졌다.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 소비자 중에서도 고가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이 같은 사치행태는 불황의 한파도 비껴가고 있다. <머니위크>는 소비자들이 사치를 쫓는 이유와 사치행태를 부채질하는 럭셔리마케팅 등 사치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했다.

지속된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 당시 수준까지 위축됐다. 하지만 소비자의 사치행태는 불황의 한파를 비껴가는 모습이다. ‘프리미엄’이라는 명분을 내건 고가상품을 찾는 소비자 행렬이 줄을 잇는다. 오히려 경기침체가 불을 지펴 소비자의 사치행태를 더욱 부추기는 분위기다.

◆불황에 탄력받는 사치심리… 명품 매출 급증

한국은행은 2월 소비자심리지수가 98로 전달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는 메르스사태가 불거졌던 지난해 6월과 같은 수치로 8개월 만의 최저치다. 소비자들의 6개월 후 경기전망을 보여주는 향후경기전망지수도 75로 전달에 비해 3포인트 떨어졌다. 역시 2009년 3월 64를 기록한 이후 6년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재경기판단지수도 전달보다 3포인트 하락한 65로 집계돼 7개월 만에 최저를 나타냈다.

흔히 소비심리가 하락하면 저가상품이 인기를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소비침체 초기엔 저가상품이 잘 팔린다. 그러나 소비침체가 가속화되면 이마저도 안 팔린다. 실제로 불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중저가시장마저 얼어붙었다. 일시적으로 소비가 살아나는 명절에도 커피믹스나 참치캔, 식용유, 햄세트 등이 조금 팔렸을 뿐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불황이 오래될수록 고가품 소비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대체로 과시적 성향의 고가품들로 명품시계와 보석류가 대표적이다. 최근 백화점 명품 매출 중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것도 명품시계와 보석류의 제품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의 시계와 고급주얼리 매출은 전년 대비 32.4% 증가했다. 백화점 1층에 있는 명품브랜드의 매출 증가율도 15.3%를 나타냈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시계 매출 역시 매년 10%씩 성장 중이다.

고가품 소비는 부유층과 중산층 이상이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주도한다. 욕구와 연관되는 상품은 불황에도 잘 팔린다. 그 제품이 고가라면 더욱 그렇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의 김용섭 소장은 “불황이라고 무조건 싼 것이 잘 팔린다는 발상은 잘못됐다”며 “싼 것이 필요한 소비자도 있지만 일상에서 사치를 누리려는 니즈도 크다”고 설명했다.

◆립스틱 효과?… 사라지지 않는 소비욕구

이처럼 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일부 소비자의 사치행태는 사그라질 기색이 안 보인다. 소비자들은 팍팍한 일상에도 고가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저성장 기조 속에서 자신에 대한 보상을 더욱 확대하는 소비성향이 짙다.

그렇다면 소비심리가 약해지면 지출을 줄이는 게 보편적인데 왜 일부 소비자는 여전히 사치에 열광하는 것일까. ‘불황에는 미니스커트’라는 속설과 불황일수록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립스틱 효과’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우선 불황으로 가라앉은 기분을 띄우거나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주장이다. 올 겨울 역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밑단이 퍼진 형태의 A라인 스커트와 타이트한 형식의 H라인 미니스커트 모두 불티나게 팔렸다.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심각한 불황에는 소비심리가 움츠러들지만 화장품업체들의 립스틱 매출이 급증한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품위를 유지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다수의 소비자가 여유롭지 않은 지갑 사정으로 화장품 중 립스틱 구매에 더 신경쓰는 경우가 많다. 슬픔,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구매하는 화장품류에서 립스틱이 가장 만족감을 줘서다.

그러나 이 같은 소비행태는 ‘작은 사치’로 표현된다. 불황 속에서도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행태가 계속되는 현상은 미니스커트와 립스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소비심리가 위축되더라도 소비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점에서 해답을 찾는 게 빠르다. 트렌드전문가들은 개인적인 감정이 이끄는 과시와 동조, 질시 등의 요인이 소비자의 사치행태를 부추긴다고 강조한다.

◆사치 부추기는 ‘과시·동조·질시’

불황임에도 소비자의 사치행태가 지속되는 이유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과시적 측면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과시란 ‘(아무리 불황이라도) 나는 그럴 만한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싼 명품을 소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인디언부족들의 풍속 중에 포틀라치(Potlach)라는 관행이 있다. 부족원들이 한해 동안 수확한 곡물을 추장에게 바치면 추장은 그 곡물을 부족원에게 재분배하고 남은 곡물은 다른 부족들을 초청해 큰 잔치를 벌이는 데 사용한다. 그 후 접대하고 남은 곡물과 그 곡물로 구매한 물품을 전부 부수거나 불태운다. 이때 파괴한 자기재산이 많을수록 그 부족과 부족장은 그만큼의 권위를 인정받는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과시형 사치’는 현대판 포틀라치로 해석된다.

동조 측면에서 소비자의 사치행태를 해석할 수도 있다. 김치냉장고나 스팀청소기는 단독주택보다 아파트에서 훨씬 잘 팔린다. 한집이 사면 금방 소문이 나고 머지않아 아파트 한동의 주민 대부분이 해당제품을 산다. ‘동조형 사치’는 이 같은 맥락에서 정리된다. 열망의 근원이 상품 자체라기보다는 준거집단의 행동 여부에 있다. 이 경우 소비자는 구매를 선택하기 전 상품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남들이 다 갖고 있는데 나만 갖지 못하면 왠지 모르게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사치행태로 이어지는 격이다.

현재 우리사회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중하위층에서도 사치열풍이 뜨겁다. 이는 추종이나 모방의 동기로 분석되는 형태로 ‘질시형 사치’로 불린다. 질시형 사치는 가짜부자들의 대표적인 사치유형이다. 이들은 지위상승의 수단으로 사치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차별화되려는 부유층과 흉내 내려는 중산층의 쫓고 쫓기는 소비순환과정은 사회의 사치품 선호풍조를 키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심리와 같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시대다. 사람이 질시를 느낄 때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사치다.

한편 불황 속에서 탄력받는 사치행태의 기세가 점차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사치가 현대사회에서는 소비의 평등화라는 허울을 쓰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됐다”며 “하지만 머지않아 가격과 성능의 대비를 의미하는 ‘가성비’가 부상하면서 결국 ‘절대가치’를 추구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성필
박성필 feelps@mt.co.kr

산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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