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해부] ‘거지’라 놀림 받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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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머니위크>가 서민들의 꿈인 임대주택의 현황과 문제점을 집중 분석했다. 임대주택의 종류와 신청기준을 소개하고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뉴스테이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나아가 국민이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모색했다.

#1. 3명의 아이를 키우는 주부 이경원씨(가명·34)는 경기 부천의 한 국민임대아파트 예비입주자다. 치열한 경쟁률 탓에 신청을 해놓고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고 이제는 2년마다 철새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기쁨에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이 다른 의미의 눈물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이들 사이에서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말이 돌 정도로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가 무시받거나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어서다. 입주를 포기하고 빚을 내서라도 민간아파트로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이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2. 서울 강남의 한 국민임대아파트에 3년째 거주 중인 30대 초반의 주부 최미선씨(가명)는 최근 경기도 외곽의 공공임대아파트에 당첨돼 이사를 갈 예정이다. 주거비 부담이 3~4배 더 늘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이웃사촌으로부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놀림을 당해 많이 위축됐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다. 2년 뒤에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최씨는 남편과 상의 끝에 국민임대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최씨의 결정에는 윗집에서 소변 보는 소리, 아랫집의 웃음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심각한 층간소음도 한몫했다.

#3. 인천의 한 국민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30대 후반의 주부 정미경씨(가명)는 얼마 전 초등학생인 큰 아이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가 “우리가 거지야?”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아이는 “친구들이 임대아파트에 살면 다 거지 아니냐”고 말해 물어본 것이라고 답했다. 순간 말문이 막힌 이씨는 겉으로는 태연하게 그런 게 아니라고 아이에게 얘기했지만 내심 대출을 많이 받더라도 고급브랜드의 민간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64대1. 지난해 10월 부천옥길 A1블록의 국민임대 입주자모집 일반공급(55형) 경쟁률이다. 근래에 수도권에서 신규공급된 국민임대주택 중 가장 평수가 크고 지리적으로도 서울과 가깝다는 장점이 있어 입주희망자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타 수도권지역 국민임대도 큰 평수대는 청약률이 1000%가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임대주택에 당첨된 자들을 로또에 당첨됐다고 비유하는 이유다.


경기 의왕의 한 국민임대아파트.
경기 의왕의 한 국민임대아파트.

◆찾아온 행운 포기하는 사람들

하지만 찾아온 행운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포기를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임대주택에 대한 주위의 불편한 시선과 차별이다. 임대아파트 거주자는 수준이 낮고 범죄자가 많다는 그릇된 인식을 가진 일부 민간아파트 거주자들이 자녀에게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와 어울리지 말 것을 종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소셜믹스(Social Mix) 아파트의 경우 분양받은 입주자들이 임대로 들어온 이들에게 편의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엘리베이터를 따로 이용케 하는 등 차별행위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SH공사에 따르면 소셜믹스 아파트단지는 2003년 처음으로 도입된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 1월 기준 서울에만 183개 단지, 11만9239가구에 달한다.

둘째, 민간아파트에 비해 부실한 주택환경도 어렵게 얻은 기회를 날리는 데 일조한다. 결로현상으로 인한 곰팡이 문제, 심각한 층간소음 등은 임대주택 입주자들의 단골 지적사항이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표준건축비가 수년째 동결되다 보니 공사의 적자폭이 상당하다”며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원가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아무래도 아파트의 품질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주차된 외제차. /사진=허주열 기자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주차된 외제차. /사진=허주열 기자

◆고가차량 타는 꼼수 입주자

임대주택 입주자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입주희망자에게는 기회를 빼앗는 고가의 차량을 소유한 이들의 편법 입주문제도 심각하다.

LH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 LH 영구임대 118개 단지 차량등록대장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영구임대 단지에 BMW·아우디·벤츠·렉서스 등 외제차가 113대로 나타났다. 또 에쿠스·제네시스·오피러스·체어맨 등 국산 중·대형차도 197대가 등록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외제차와 국산 고가차량을 합친 차량 중 65.5%(203대)가 소득·자산 증가 등을 이유로 수급자격에서 탈락한 이들의 소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가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해 소득·자산기준 등 입주자격을 초과하는 부적격 입주자에 대한 퇴거근거를 마련했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 지난달 30일 기자가 찾은 강남의 한 국민·영구임대아파트단지 주차장에서도 외제차와 고가차량을 다수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한 입주자는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다 고물차만 타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저렴하다는 임대아파트 보증금도 대출을 받아서 들어오는 이들이 허다해 이런 차들을 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며 “임대주택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등록된 외제차가 꽤 있는 편인데 개인사업자가 리스로 차량을 구입하거나 다른 사람 명의로 된 차량을 이용하면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편법으로 들어온 비양심적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허주열
허주열 sense83@mt.co.kr

<머니S> 산업1팀에서 유통·제약·의료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취재원, 독자와 신의를 지키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많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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