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우리도 몰랐던 이야기… 독실한 가톨릭 신자, '시복'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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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사진을 유명 연예인들이 못알아봐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 기념관. /자료사진=뉴시스
안중근 의사 사진을 유명 연예인들이 못알아봐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 기념관. /자료사진=뉴시스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유명 연예인들이 알아보지 못해 어린 세대의 ‘역사인식’ 논란이 일고 있다. 걸그룹 'AOA' 멤버 설현과 지민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하고 '긴또깡'이라고 말하는 등 역사에 대한 무지로 논란을 샀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에 태어나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한 대한제국 말기의 독립운동가다. 무엇보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실력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의거로 잘 알려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젊은 시절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 일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데다 서학을 지지했던 편이라 동학 조직이 주도하는 농민군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안중근 의사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16살의 나이로 부대를 이끌어 박석골 전투 등에서 농민군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했다.

또 안중근 의사는 ‘도마’라는 세례명을 가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순국하기 전 장남 안분도를 신부로 키우라고 부인에게 부탁했을 정도였다. 아들 이름 ‘분도’ 역시 가톨릭 성인 ‘베네딕토’를 한자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이후 일제에 순응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역시 "암살자가 천주교 신자일 수 없다"며 사형수 안중근에 대한 고해성사 요청을 거부했다.

한국 천주교는 1993년이 돼서야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복권했으며, 2010년에는 순국 100주년 미사를 명동성당에서 봉헌했다. 2011년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안중근 의사의 '시복'을 추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안중근 의사가 목적을 갖고 살인한 것은 맞지만 그가 '동양평화론'을 창안하는 등 가톨릭의 정신을 구현해 공경할 만한 근거가 있다고 본 것이다.
 

장영락
장영락 ped19@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온라인팀 장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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