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레고 테크', 금보다 쏠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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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누구나 장난감을 갖고 논다. 부모도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아이 생일 등 기념일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로 사준다. 이마트는 올해 어린이날을 앞두고 ‘터닝메카드’의 그리폰&스핑크스가 장난감 판매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3위는 레고제품인 ‘포트렉스’와 국내 애니메이션 ‘헬로카봇 K캅스’가 각각 차지했다.

롯데마트는 ‘레고 포트렉스’가 1위였고 ‘헬로카봇 K캅스’와 ‘터닝메카드 그리폰&스핑크스’가 뒤를 이었다. 매장에 따라 장난감 매출액 순위가 약간 다르지만 큰 차이가 없다.


터닝메카드.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터닝메카드.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터닝메카드는 국내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장난감이다. 지난해 메가드래곤 시리즈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올해는 새로운 시리즈 그리폰&스핑크스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터닝메카드의 판매 급증으로 판매회사 손오공의 실적이 대폭 늘었고 주가도 2배 이상 올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필자의 지인은 아이 선물로 터닝메카드를 구입한 후 손오공의 주식을 샀다.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노는 동안 아버지는 그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의 주식으로 돈을 벌어 장난감 사주는 데 들어간 돈 이상을 번 것이다.

◆어른 선물, 이젠 ‘장난감’ 어때요

장난감은 아이들만 갖고 싶어하는 걸까. G9이 성인남녀 14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아이용 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2%에 달했다.

‘아이·조카 선물을 핑계로 본인이 갖고 싶은 장난감을 구입한 적이 있다’는 질문에 44%가 ‘그렇다’고 답했다. 성인이 된 후 갖고 싶은 용품으로 남성은 ‘한정판 레고’(29%)를 선호했고 ‘무선조종자동차’(RC카·20%), ‘드론’(19%) 등 무선조종이 가능한 스마트 토이가 뒤를 이었다. 필자도 아이가 어릴 때 레고·RC카 등을 사주고 함께 놀곤 했다. 지금은 드론이 탐나는데 가격이 만만찮아 아직 사지 못했다.

성인여성은 ‘한정판 레고’(29%), ‘인형’(25%), ‘조립식 장난감’(17%) 등의 순서로 갖고 싶어했다. 어릴 때 인형을 선호하던 성향이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함을 알 수 있다. 남녀 구분 없이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은 ‘한정판 레고’다.

응답자들은 아이·조카를 위한 장난감을 구매할 때보다 자신을 위한 장난감을 구매할 때 기꺼이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조카 선물로 10만원이 넘는 가격의 제품을 구입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5.8%인 반면 자신을 위한 장난감 구입 시엔 2배인 32%나 됐다. 어른에게 선물할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스타워즈 피규어 상품. /사진=뉴시스 장세영 기자
스타워즈 피규어 상품. /사진=뉴시스 장세영 기자

◆마니아로 뭉친 ‘키덜트’의 부상

아이란 뜻의 키즈(kids)와 어른이란 뜻의 어덜트(adults)를 합성한 용어인 키덜트(kidult)족이 장난감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아이들만의 장난감보다 가격대가 높아 마진도 크다. 레고 역시 아이용 블록제품에 비해 성인이 좋아하는 레고제품의 가격이 상당한 편이다.

비용을 아끼면서 새로운 레고제품을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도 있다. 하루종일 1000원, 월 2만9000원을 내면 레고를 비롯한 여러 블록과 보드게임 등을 무제한 대여해주는 세계 블록대여전문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장에 직접 방문해 조립하면서 노는 것도 가능하다.

키덜트족 사이에서 레고가 마니아층을 형성하게 된 배경에는 레고회사의 노력이 있다. 레고회사는 90년대 말 이후부터 ‘레고 스타워즈’, ‘레고 마인드스톰’ 등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연령대가 높은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레고놀이 경험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1999년 북미지역에 11개의 레고 사용자그룹이 생겨 전세계로 퍼지면서 성인용 취미생활로 자리 잡았다. 2012년 전세계의 레고 사용자그룹은 150개로 늘었고 열렬한 성인 팬이 10만명을 넘었다.

‘레고’는 ‘잘 놀다’(Play well)의 의미를 가진 덴마크 단어 ‘Leg godt’를 줄인 말인데 라틴어로는 ‘I put together’라는 뜻이 있다. 고객이 조립하며 잘 놀게 하자는 회사의 정신이 아이 대상에서 어른 대상으로 확장돼 시대에 따라 발전한 셈이다. 사물인터넷(IoT)시대가 열리면서 최근에는 레고블록에 가속도 센서와 통신 칩을 넣은 ‘레고X’가 출시됐다.
경제력 있는 키덜트족의 등장으로 레고의 수요가 늘어나 레고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레고회사가 신제품을 계속 출시하다 보니 기존 상품 중 인기있는 제품의 중고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자연스레 가격도 치솟은 것이다.

회사가 더 이상 출시하지 않아 단종된 제품은 온라인 레고커뮤니티와 중고거래장터, 해외구매대행 등을 통해 한정적으로 구할 수밖에 없어 프리미엄 가치가 엄청나게 오르기도 했다. 레고를 모아두면 언젠간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도 퍼졌다. 레고 미니 피규어는 작아도 가치가 매우 높다.

영국의 텔레그라프는 레고세트를 출시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해 수익을 얻는 투자행위를 ‘레테크’라 칭했다. 레테크의 투자수익률이 금이나 주식보다 높다는 분석도 내놨다. 범유럽지수인 FTSE100지수가 2000년 2월 이후 배당까지 감안한 수익률이 연평균 4.1%를 기록하는 동안 저축성계좌는 연 2.8%. 금은 연 9.6%를 나타냈다. 반면 같은 기간 완벽하게 보관된 상태의 레고세트 가격은 연평균 12%나 올랐다.

◆1조원 시대 활짝… 유통가 ‘키덜트’족 잡아라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스타워즈 시리즈다. 그중에서도 ‘얼티밋 컬렉터스 밀레니엄 팰컨’은 거래가격이 2007년 342.49파운드(59만7000원)에서 지난해 말 2712파운드(472만5000원)로 8배 가까이 올랐다.

생산기간이 짧은 한정판과 시즌 상품은 훗날 중고시장에서 특별대우를 받아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두세트를 사서 한세트는 갖고 놀고 다른 한세트는 박스와 설명서까지 깨끗한 상태로 잘 보관하면 장난감으로 즐기기도 하고 투자효과도 크게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성인완구동호회가 온·오프라인을 합쳐 수백개가 넘는다. 회원들은 장난감 정보교환과 정기모임은 물론 대리점을 통해 신제품을 공동구매한다. 플라스틱모델의 일본식 줄임 말인 ‘프라모델’로 불리는 조립완구를 수집하는 데 매달 평균 100만원 이상 쓰는 사람도 있다.

‘피규어 대통령’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피규어 수집가 조웅씨는 스타워즈 시리즈, 터미네이터, 아이언맨 등 만화 및 영화 관련 피규어를 5만여점이나 모아 갤러리까지 오픈했다.

KBS2TV의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에는 장난감에 몰입하는 남편 때문에 고민하는 주부가 출연했다. 2014년 2월에는 개그맨 권오관의 부인이 출연, 남편이 고가의 무선조종 장난감자동차를 100여대 갖고 애지중지한다고 밝혔다. 대출금도 있는데 사들인 RC카 총 가격이 5000만원이나 되고 방에 RC카가 많아 막상 아이 장난감을 놓을 공간이 없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당시 남편이 권오관은 자신이 골프도 안치고 다른 소비를 잘 하지 않는 만큼 아내가 자신의 취미를 이해해주기 바랐다.

2012년 11월 출연한 한 주부는 건담로봇 600개에 총 6000만원 이상 쓴 남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아이 돌반지 10개 중 8개를 아내 모르게 팔아서 건담 사는데 쓰고 아이를 낳을 때 시아버지가 준 200만원 중 180만원도 건담을 사는 데 썼다. 퇴근하면 아내와 대화하지 않고 건담 방에 들어가 건담과 대화하고 건담에게 노래를 불러준다는 얘기에 많은 사람이 공감해 고민왕으로 선정됐다.

‘아이 같은 어른’을 추구하는 키덜트시장의 규모가 미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14조원과 6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연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매년 20~30%씩 성장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키덜트 대상 전문매장을 강화하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해 오픈한 일산 킨텍스점의 ‘일렉트로마트’ 1호점은 고객이 각종 첨단장난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놀이를 판매에 접목한 결과 목표매출을 초과달성했다. 업계에서는 정용진 부회장 본인이 키덜트라서 키덜트 취향을 마트에 잘 반영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롯데마트는 구로에 ‘키덜트매니아’ 1호점을 낸 이후 잠실점, 판교점으로 확대했다. 구로점 키덜트매니아는 건담·스타워즈 등 캐릭터 상품매장 ‘피규어 존’과 드론·RC카 등 전자완구매장 ‘드론·RC 존’으로 구성했다.

또 온라인 완구쇼핑몰 ‘토이저러스몰’에서도 올해 초 ‘키덜트존’을 오픈했다. 편의점업계에서는 CU가 최초로 ‘PB 블록 장난감’을 선보이며 키덜트용 장난감을 출시했다. GS25는 피규어상품을 비롯한 완구의 매대를 강화한 점포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앞으로 키덜트족을 위한 완구제품의 인기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키덜트를 괴짜 취급하거나 피터팬 콤플렉스 또는 어린 시절 향수에 빠진 어른으로 보면 안된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삶이 각박해지면서 정서적 안정을 찾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키덜트 문화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 술, 담배, 유흥문화로 건강을 해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경기가 불투명한 시기에 능력 있는 소비주체로 떠오른 키덜트족은 유통업계에 확장 가능한 새로운 영역을 제공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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