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약전은 왜, 그 섬으로 갔나

송세진의 On the Road - 흑산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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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자신을 고립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여행을 떠난다면 흑산도가 어떨까. 옛날엔 악명 높은 유배지였지만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기 좋은 곳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곳에 왔던 유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칠형제바위

◆정약전과 자산문화전시도서관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다. 흑산이란 이름은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으므로 집안 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흑산을 번번히 현산(慈山)이라고 쓰곤 했다. 慈 자는 黑 자와 같은 뜻이어서다….' - 손암 정약전의 <자산어보> 중에서 -

짧은 글 속에 두려움과 쓸쓸함이 절절하다. 글을 쓴 손암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썼다. 여기서 ‘자산’은 손암선생이 유배왔던 이곳, 흑산도를 말한다. 그는 신유사화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총 16년간 우이도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 근해에 있는 물고기와 해산물 등 227종을 채집하고 연구해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당시 보기 드문 자연과학서적으로, 세밀한 관찰과 묘사와 추론은 200년 전 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듯 묘사한 것을 보면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느껴진다. 원래는 <자산어보>를 해양생물도감 형태, 즉 그림으로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자산문화도서관에 가보면 손암 선생이 그림에도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진에 유배 중이었던 동생 정약용이 ‘필사가 어려운 그림보다는 글로 쓰면 좋겠다’는 편지를 썼다. 손암 선생은 그 충고를 받아 글로 저술했다. 덕분에 총 3권의 필사본 네 질이 전해온다.

흔히 ‘자산문화관’이라 부르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자산문화전시도서관’이다. 흑산항 근처 예리에 있어 뱃시간을 기다리며 둘러보거나 여행 시작에 앞서 계획과 예습의 개념으로 관람하면 좋다. 250평 규모로 자산어보 전시실, 해양도서실, 관광정보실, 영상문화실 등으로 나뉘었고 <자산어보>에 대한 자료와 함께 정약전 선생이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 그림, 흑산도 민속 유품, 어민생활 유품 등이 전시됐다. 손암 선생의 뛰어난 그림 솜씨도 확인하고 <자산어보>의 디테일에 감탄하고 유배자 정약전의 절절했던 심정과 마음을 다스려 후학을 양성했던 선비정신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한편 입구에서 고래 사진을 보고 전시실에서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고래뼈까지 보면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과연 고래파시가 열리던 곳이 맞구나!’ 싶다. 관광지의 화려한 박물관과 비교하면 소박한 규모지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그 속에 있는 콘텐츠가 무척 흥미롭다. 북적이는 예리항에서 가깝지만 이곳은 조용하기 때문에 차분히 여행을 정리하기에 좋은 장소다.


자산문화전시도서관
유배문화공원

◆모래미 유배문화공원

사리는 정약전 선생이 서당을 짓고 머물던 곳이다. 이곳은 흑산도의 다른 마을들과 느낌이 조금 다르다. ‘밭’ 때문이다. 돌담 사이로 밭이 있고, 햇빛이 좋은 곳에서는 미역을 말린다. 반농반어가 가능한 몇 안되는 마을 중 하나다. 앞바다에서 멸치가 잘 잡히고, 섬에서는 귀한 농작물을 직접 재배할 수 있으니 40년 전까지만 해도 흑산도의 대표적인 부촌이었다.

그래서 손암 정약전 선생도 비옥한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선생이 머물던 집의 이름은 ‘복성재’이고 그 서당이 ‘사촌서당’이다. 마을에 모래가 많아서 ‘모래미’라 불렀는데 사촌서당의 '사촌'은 이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지금은 마을 이름을 ‘촌’이 아닌 ‘리’로 바꿔 사리라 부른다. 이곳에는 유배문화공원이 있다.

전통의 유배지였던 흑산도의 특징이 잘 표현된 흥미로운 장소다. 흑산도는 거리가 멀고 뱃길이 험해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 힘든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일주일 이상 걸려 흑산에 도착했는데 바다의 사정에 따라 배가 뜨기 때문에 한번 들어오려면 보름은 잡아야 했다고 한다. 문헌상으로는 고려 의종 2년에 정수개가 최초로 흑산도 유배자가 됐다. 이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까지 130여명의 유배자가 섬 여러 곳에 머물렀다.

유배문화공원에는 이곳에 유배 왔던 특징적인 인물들의 시대, 직업, 죄목이 나열됐고 정약전, 최익현, 김홍록, 김귀주 등 17명의 개별 비석도 있다. 유배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왕자에서 나인, 사간, 유생, 환노, 재상 등 신분도 다양하고 사학죄인, 상소, 모살죄, 간언, 당론 등 유배 이유도 다양하다. 유배인들의 생활상도 달랐다. 학문에 정진하며 모범적인 유배생활을 했던 선비가 있었던 반면 횡포를 부리고 민초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켰던 사람도 있다.

그 중 정약전 선생은 서당을 짓고 글공부까지 가르쳤으니 존경받을 만하다. 따라서 손암 선생은 지역 주민들과 친분관계가 두터웠다고 한다. 덕분에 <자산어보>를 완성하는 데 주민 장창대 등의 도움을 받았다. 비슷한 예로 면암 최익현 선생 또한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유배문화공원 왼쪽에는 ‘손암정’이 있다. 손암 정약전 선생의 호를 딴 정자다. 사리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니 잠시 쉬면서 유배인들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반대편으로 길을 따라 오르면 ‘사촌서당’이 있다. 이는 정약전 선생의 복성재 터에 복원한 것이다. 사촌서당 오르는 길에는 1950년에 건립된 천주교 흑산성당의 사리공소가 있다. 천주교 신자로 박해를 받아 이곳까지 온 정약전 선생의 집터 앞에 성당이 세워졌으니 이 우연 또한 재미있다.


사리마을 풍경

◆칠형제바위

사리까지 온 김에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가 칠형제 바위다. 사리포구 앞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며 포구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범상치 않은 바위섬에 전설 하나쯤 있는 건 당연한 일, 옛날 사리에 홀어머니가 아들 7형제를 키웠는데 어느 해 큰 태풍이 불어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지 못하자 아들들이 바다에 들어가 두 팔을 벌려 파도를 막아줬다고 한다.

그렇게 7형제는 작은 섬으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실제로 7형제 바위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해서 어선들의 피난처가 되니 마을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흑산도의 대표적인 경관이 되기도 한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정답고 아늑하다. 이곳에 머물렀던 정약전 선생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효과는 지금의 여행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여행 정보]

흑산도 가는 법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 이용

터미널: 전라남도 목포시 해안로 182 목포항연안여객터미널
승선시간: 오전 7시50분, 8시10분, 오후 1시, 오후 4시
운항시간: 2시간
운임: 일반 3만4300원 / 중고생 3만1100원 / 경로 2만7800원 / 소아 9650원
문의: 061-243-2111~4 / 061-275-8111

예매·출항 해운사 사이트
가보고 싶은 섬(한국해운조합) http://island.haewoon.co.kr
남해고속훼리 http://www.namhaegosok.co.kr
동양고속훼리 http://www.ihongdo.co.kr
목포여객선터미널 1666-0910

 
주요 시설, 정보 연락처
흑산도 기상대(풍랑 정보 체크): 061-275-2754
목포선박운항관리실(풍랑 정보, 쾌속선 운행 여부 체크) 061-240-6031
목포여객선터미널 1666-0910
흑산면사무소: 061-240-4008
흑산면관광안내소: 061-240-8520
㈜ 전남렌트카(흑산도 렌터카 업체):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흑산일주로 23-2 / 061-261-0822
자산문화전시도서관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예리/ 문의: 1330

유배문화공원
가는 방법: 렌터카 / 택시 / 공영버스: 예리에서 탑승하여 사리 하차 (짝수날, 홀수날에 따라 3~4회)
문의: 1330

흑산도닷컴 
신안문화관광: http://tour.shinan.go.kr


일주관광
택시: (1대) 6만원 / 010-3747-9717
버스관광: (1인) 1만5000원 / 061-262-7888

● 숙박

사리 사촌민박: 남도민박 등록허가 집이다. 하루 머물면서 유배문화공원과 사촌서당을 둘러보고 칠형제바위의 아침저녁을 볼 수 있어 좋다.
예약문의: 061-246-3029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흑산일주로 1473
게스트하우스 흑산도: 흑산도 지킴이를 자처하는 주인장이 열정으로 손수 가꾼 숙소다. 조식이 무료로 제공되고 간단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어 개별여행자들에게 좋다.
예약문의: 010-7107-5252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흑산일주로 23-2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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