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퍼스트 무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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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대한민국 산업은 지난 60여년 동안 상상을 뛰어넘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선진국의 등만 보고 달려온 ‘패스트팔로어’ 전략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앞서 달리는 ‘퍼스트무버’가 돼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머니위크>는 ‘시장 선도자’로 변신을 요구하는 시대상과 퍼스트무버로 전향하는 기업들을 조명했다. 이와 함께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한 조건과 한계점을 짚어봤다.

한국전쟁 이후 약 60년 동안 한국은 세계경제에서 손꼽히는 패스트팔로어였다. 이 기간 패스트팔로어 역할에 충실하며 최빈국에서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한 패스트팔로어 전략은 한계에 도달했다.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빠르게 뒤쫓는 방식으로는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현 상황에서 더 나아가기 힘든 것. 이제는 ‘추격자’에서 ‘선도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혁신과 실패

“성공은 99%의 실패로 이뤄진다.” 날개 없는 선풍기, 주머니 없는 진공청소기 등의 제품을 처음으로 만든 퍼스트무버 기업 다이슨의 창업주 제임스 다이슨의 지론이다. 이 회사는 다른 가전업체나 소비자가 기존 제품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일 때 생각지도 못했던 혁신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80년대 다이슨이 진공청소기 먼지 주머니를 없애기 전까지 진공청소기 형태는 20년 넘게 그대로였다. 특히 선풍기는 날개가 없어지기까지 무려 127년이나 걸렸다. 고정관념이 만연한 가전업계에 다이슨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이슨 ‘에어 멀티플라이어’. /사진=뉴시스 DB
다이슨 ‘에어 멀티플라이어’. /사진=뉴시스 DB

다이슨이 혁신적 제품을 잇달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업주 다이슨이 먼지 주머니가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하기까지는 5년간 5126번의 실패가 있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다이슨의 혁신은 놀라운 실적 성장세를 통해 성공으로 가는 옳은 길임이 증명됐다. 1993년 직원 4명으로 시작한 다이슨은 지난해 기준 매출 17억4000만파운드(약 2조9000억원), 영업이익 4억4800만파운드(약 7400억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다만 수많은 난관을 딛고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혁신을 게을리 한다면 후발주자에게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 아이리버(구 레인콤), 싸이월드의 몰락이 좋은 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힘든 과정을 거쳐 퍼스트무버가 됐더라도 그 이점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게 요즘 현실”이라며 “퍼스트무버도 방심하거나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 변화와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다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효율적 비용관리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비용 관리도 중요하다. 소비자의 니즈를 분석해 기존 시장에 없는 제품을 발명해야 하고 유통시스템 구축, 마케팅 등에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퍼스트무버는 새로운 시장의 위험뿐만 아니라 기술적 불확실성과 관련된 모든 사항도 처음부터 기획하고 홀로 감당해야 한다. 보고 배울 롤모델이 없어서 위험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반면 후발주자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R&D) 비용이나 마케팅 비용 등의 투자 부담이 없다. 또한 퍼스트무버 기업의 모든 것을 답습하면서 시장 진출을 준비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사실상의 무임승차도 가능하다.


만약 퍼스트무버 기업이 초기 시장 진출을 위해 많은 R&D 비용과 마케팅 비용을 지출했다면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쫓아오는 후발기업에게 시장 선두 자리를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퍼스트무버는 비용적 측면에서도 지속적인 내부 혁신을 통해 경쟁의 격화에 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마케팅적 측면에서 효율적 비용관리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구글 모회사) 회장. /사진=뉴스1 DB
에릭 슈미트 알파벳(구글 모회사) 회장. /사진=뉴스1 DB

◆창의성

1990~2000년대 초반 세계 휴대폰시장은 모토로라, 노키아, 삼성 등이 주도권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이 시장을 석권한 기업은 정작 이들이 아니다. 매킨토시 컴퓨터로 컴퓨터 제조업계에서 만년 2위에 머물던 애플이 깜짝 등장해 순식간에 1위를 차지한 것. 애플의 등장은 기존 제조업체 중심의 세계 경제구조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애플의 성공 이전까지는 가격과 제품의 품질로 시장 우위가 결정됐지만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등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제품으로 기존 경제질서를 바꿨다.


새로운 틈새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퍼스트 무버는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기존 시장 내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도 한다. 1998년 등장한 검색엔진 구글은 야후의 뒤를 잇는 후발주자였지만 세계 최대 동영상서비스 유튜브, 증강현실(AR)을 실현하는 구글글라스 제품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또한 스마트폰시장에서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를 통해 모바일 생태계의 리더로 자리매김 했다.


피터 알렉산더 언더우드는 자신의 저서 <퍼스트 무버>에서 “애플이 한국 경제계에 던진 화두는 품질·가격문제가 아니라 창의력”이라며 “지금까지 앞서 지나간 이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을 따라왔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앞서나가 남보다 먼저 발자국을 찍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강조했다. 

퍼스트무버 유형

퍼스트무버 유형은 시장확대 속도와 기술발전 속도라는 두 변수에 따라 ‘전통적 혁신형’, ‘시장기반형’, ‘기술추종형’, ‘창조적 파괴형’ 등 4가지로 나뉜다. 

◆전통적 혁신형
시장확대가 점진적이고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퍼스트무버는 다른 유형의 퍼스트무버들에 비해 기술력이나 시장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초기 시장의 느린 성장으로 인해 퍼스트무버는 새로운 시장 세그먼트를 충족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제공받을 수 있어서다. 이 유형은 단계적 진화를 이룬 진공청소기, 자동차 제품 등의 카테고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장기반형
기술발전 속도는 느리지만 시장확대가 빠른 경우 나타나는 유형이다. 기본적·기술적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소비자의 니즈 변화에 따라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경우 퍼스트무버의 경쟁력은 기업의 마케팅력 및 강력한 브랜드에 의존하게 된다. 대표적 예가 코카콜라다. 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후 펩시라는 경쟁자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도자의 브랜드 영향력과 강력한 마케팅력을 앞세워 지난해 전세계 200개 이상의 나라에서 매일 19억병 이상을 판매했다.  

◆기술추종형 

기술발전 속도는 빠르지만 시장 확대는 느린 경우 나타나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 속한 퍼스트무버는 지속적 R&D 관련 투자를 해야 하지만 시장확대 속도는 현저히 낮기 때문에 충분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는 디지털카메라, 전기자동차 제품 카테고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조적 파괴형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고 시장확대 역시 빠른 경우 나타나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선 퍼스트무버 기업이라고 안심할 수 없으며 후발주자라고 낙담할 필요가 없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검색엔진, 게임 등 IT시장 영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허주열
허주열 sense83@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1팀에서 유통·제약·의료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취재원, 독자와 신의를 지키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많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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